의미의 폐허 위에서: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의미의 폐허 위에서: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작성자 에포크

시네마의 미학

의미의 폐허 위에서: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에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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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ygttiob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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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미셸은 파리의 거리에서 떠도는 잔혹한 시인 같다. 그는 범죄자이며 반항아, 동시에 사랑에 빠진 사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미셸이라는 이름을 구성하는 기표들일 뿐, 그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그의 행위는 하나의 서사로 묶이지 않으며 그저 겹겹이 쌓인 충동과 즉흥의 산물일 뿐이다. 그는 목적 없이 흘러가던 중 우연히 패트리샤를 만나고 또다시 우연히 그녀에게 배신당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립된 주체가 겪는 실존적 위기를 고다르가 표현해낸 한 형태일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필연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다르는 미셸과 패트리샤의 관계를 통해 서사적 필연성과 도덕적 판단을 모두 거부하고, 관객에게 진리를 찾아 헤매는 대신 파편들을 바라보라고 요구한다.

패트리샤는 영화 속에서 단지 미셸의 연인이라는 역할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녀는 파리의 풍경이자, 미셸의 거울이자, 영화라는 기표의 일부다. 그녀의 행동 또한 의미를 규정짓기 어렵다. 미셸을 사랑하지만 배신하는 그녀의 모습은 혼란스럽고 일관되지 않으며, 고다르는 이를 통해 인물의 일관성이라는 허상을 깨뜨린다. 패트리샤는 미셸의 마지막을 목격하며 그와 함께 쓰러지는 벽돌더미 속에서 마지막으로 미소 짓는다. 그녀의 미소는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의미를 해체한 이 폐허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패트리샤의 미소는 우리의 해석을 기다리는 기호이며, 그 속에는 명확한 답이 없다. 오직 불확실성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사용된 점프 컷과 불연속적 편집은 마치 시간과 공간의 일관성을 산산이 부숴버린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영화 속 장면들은 마치 서로 다른 영화에서 가져온 파편들을 붙여놓은 듯, 하나의 서사적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파편들은 영화의 진정한 심장, 즉 영화가 지닌 불완전함과 불안정성을 상징한다. 고다르는 점프 컷을 통해 관객에게 스크린 속의 재현이 의미와 무의미가 얽힌 기호적 구성물임을 상기시킨다. 이는 고다르가 창조한 영화적 언어의 일종의 "시"와도 같다. 우리는 이 시 속에서 논리적 서사나 일관된 의미를 찾을 수 없지만, 그 불규칙한 운율과 이미지들은 우리를 새로운 감각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고다르의 파리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는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여 인물들이 떠도는 모습을 그리며, 파리를 하나의 정서적 공간으로 만들기보다는 단지 무의미한 공간의 연속으로 묘사한다. 파리의 거리와 카페는 단절과 소외, 그리고 불확실성의 상징이 된다. 이 도시 속에서 미셸과 패트리샤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결코 완전하지 않으며 항상 파괴와 혼돈 속에 머문다. 고다르는 이 도시를 떠도는 인물들을 통해 도시의 근대적 풍경 속에서 인간이 겪는 혼란과 분열을 표현한다. 파리는 인물들을 담고 있는 그릇이자, 의미 없는 무대에 불과하다. 고다르의 카메라는 파리의 거리를 집요하게 응시하며, 이 도시가 인물들에게 아무런 연관성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이 영화는 끝나고 난 뒤 관객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스크린 위에서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가? 의미의 집인가, 아니면 그 집을 부수고 난 뒤의 폐허인가. 고다르는 관객을 그 폐허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관객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야 한다. <네 멋대로 해라>는 그 자체로 완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오직 불확실성과 해체의 과정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는 고다르가 영화라는 매체에 던진 가장 과감하고도 예술적인 도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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