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한나, 나의 하나님이 나만큼 고통스럽게 발버둥치고 있다면...
작성자 성민이
숨은 영화 찾기
디어 한나, 나의 하나님이 나만큼 고통스럽게 발버둥치고 있다면...
1
‘디어 한나’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영국영화였는데, 무거운 삶의 얘기를 기교 부리지 않고 차분하게 해나가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영국의 어느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조셉이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가난하게 혼자 살아가는 그 남자는 도박을 하고 나서 돈을 잃자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서 소중하게 기르던 개를 발로 차서 죽여 버릴 정도로 성질도 더럽습니다.
그렇게 밑바닥에서 거칠게 살아가던 조셉이 어느 날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급하게 어느 옷가게로 들어가서 숨게 됩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옷가게 여주인(그 여자의 이름이 한나입니다)은 잠시 당황하다가 차분하게 조셉을 살피면서 진정시키려고 합니다.
한나의 따뜻한 배려에도 조셉은 거칠게 대꾸를 하지만, 한나는 그가 매우 불안해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한나는 “제가 기도해 드릴까요?” 얘기를 하고는 조셉 곁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노인을 보살펴 달라고 진심 어린 기도를 합니다.
가만히 한나의 기도를 듣던 조셉은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런 호의에 대해 조셉은 다시 배부른 것들의 위선적인 호의라고 거칠게 쏘아붙이면서 그 가게를 나와 버립니다.
다음날 조셉은 다시 그 가게를 찾아가서 전날 자신이 거칠게 얘기했던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한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사과를 받아줍니다.
그렇게 잠시 서로 얘기를 나누지만 한나의 따뜻한 배려가 좋으면서도 불편해진 조셉은 마음에 없는 거친 말을 해서 한나를 울게 만들어버리지요.
그러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조셉은 다시 한나의 가게 앞에 쓰러지게 되고, 조셉을 발견한 한나는 조셉을 다시 위로해줍니다.
그런 한나의 위로와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조셉은 거친 말과 행동을 이어가면서 한나를 또 불편하게 합니다.
밑바닥에서 온갖 상처를 받아가면서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그랬습니다.
불안하고 거친 영혼을 따뜻하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쓰다듬어줬던 한나는 부유한 동네에서 깊은 신앙심을 갖고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 달리 한나는 남편의 병적인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지요.
남들은 알지 못하는 그런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착하고 밝게 살아가려고 했던 한나는 자신의 아픔을 오직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용서와 화해로 모든 이들을 품으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픔을 가슴 속에 묻고 있었기 때문에 노인의 불안한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한나의 아픔을 알지 못했던 조셉이 점점 한나에게 의지하게 되던 어느 날 남편이 두 사람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병적인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날 밤 남편의 폭력이 무서운 한나는 혼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오해하지 말아요. 제발 때리지 말아줘요”라고 애원을 하지만, 착하게 생긴 남편은 그런 그녀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런 남편 앞에서 처음으로 거칠게 대항했던 한나에게 남편은 무자비한 폭행과 강간으로 대응합니다.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온 한나는 조셉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얘기합니다.
그제야 여자의 아픔을 알게 된 조셉은 그동안 자신에게 베풀었던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한나를 자신의 집에서 보살펴줍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겨움과 과거의 말 못할 상처를 갖고 있던 조셉은 한나를 오래 보살펴주지 못하고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남의 고통까지 받아 안아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거지요.
이야기는 어떤 사건과 결합하면서 극적으로 전개되고
조셉이 한나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자신이 받았던 위안을 돌려주며 끝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노인의 삶이 내 삶과 너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더러운 성질까지 닮았더군요.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나중에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도 흘러나오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지...
2
독실한 신자였던 한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모든 고통을 참고 살아갑니다.
남편이 한나를 폭행한 다음날 울면서 사과하면 한나 역시 울면서 남편을 안아줍니다.
가식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게 남편이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변하기를 원했던 거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한나와 조셉이 같이 있는 장면을 보고 “있다가 집에서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자 한나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무서움과 힘겨움에 지친 한나는 가게에 걸려있던 예수님 사진을 향해 “뭘 봐!”라면서 고함을 지르고 맙니다.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하면서 버텨왔는데, 그런 한나를 보면서 침묵만 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원망스러웠던 것이지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또 울컥 했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위한 진심어린 한나의 기도에 눈물을 흘렸던 조셉은 한나의 사랑에 위안을 받습니다.
그래서 조셉은 한나를 찾았던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조셉은 한나에서 쓴 편지에서 “나를 위해 미소를 지어준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당신을 찾았지만, 당신의 고통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고 솔직히 예기합니다.
그런 조셉이 고통받는 한나의 손을 잡아주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조셉이 힘들 때 한나가 기댈 수 있는 하나님이 돼 주었던 것처럼, 한나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조셉이 한나의 하나님이 돼 주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렇게 상처받은 모습으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조셉처럼 저도 신을 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고통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 나만큼 고통스럽게 발버둥치고 있다면
그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 많이 힘들겠지만
내가 그의 하나님이 되어주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