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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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서가옥

5만 도시에서 뭐 하고 지내?

#04_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서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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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제품 좋아하세요? 아이폰·에어팟은 기본이고, 애플워치·아이패드·맥북까지 저는 애플 생태계를 벗어날 수 없는 몸이 됐는데요 😂. 얼마 전에 맥북 키보드가 고장나서 수리를 받으러 먼 길을 떠난 적이 있어요. 제가 사는 곳에는 애플 제품 공식 AS센터는 물론이고, 사설 수리점도 없거든요. 동네 PC 수리점에 연락했지만 돌아온 답은 "맥이요? 허허 20년 전에 마지막으로 쓴 것 같은데..."

그래서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제일 가까운 수리점에 갔어요. 당일 수리는 또 어렵다고 해서 3일 뒤에 다시 왕복 2시간... 강제로 디지털 디톡스를 했네요.

이래서 이 동네 사람들 다 삼성·LG 쓰는구나 싶다가도, 수리 맡기고 오랜만에 윈도우 PC를 썼더니 아름답고 편리한 macOS가 당장 그리워져서 "진짜 나는 애플의 노예가 맞구나" 싶었어요. 아마 지금 맥북이 수명을 다하면 또 맥북을 사겠죠? "원정 수리도 여행이다. 완전 러키비키다 🍀" 원영적 사고를 돌려봅니다.

갑자기 왠 애플 얘기냐고요? 오늘 주인공이 진짜 애플 팬 끝판왕인 친구거든요. 애플 제품이 좋아서 iOS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된 친구예요. 지금 이 친구는 옥천을 떠나 살고 있어요. 그치만 이 친구가 했던 말이 '5만 도시에서 뭐 하고 지내?' 라는 질문에 묵직한 재질문인 것 같아서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애플스토어가 없는 곳에서 애플 개발자가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인생은 미로, 이제 나는 Miiiro

“인생은 미로야.”

미로가 달고 사는 말이다. 미로에 따르면 인생이란 미로처럼 이 길이 맞는 길인지 끝까지 가본 다음에야 비로소 그 길이 막다른 길인지 출구인지 알 수 있는 거란다.

미로의 이력을 알고 나면 납득이 된다. 미로의 인생, 진짜 미로 그 자체다. 옥천에 온 것부터가 ‘그럴 수도 있지’ 싶은 게 하나 없다.

출생지이자 성장지는 경남의 모 도시. 대학교 전공은 독일어. 충청북도 옥천에서 가진 직업은 한국어로 기사를 쓰는 지역 월간지 기자. 옥천에 사는 친구나 친척이 있던 것도 아니다. ‘옥천’이라는 지명 자체를 입사 원서 쓸 때 처음 들었다고. 그냥 ‘시골에서 글 쓰는 삶, 멋진데?’ 하며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데 선택한 길 끝은 막다른 골목이었던 걸까? 어느 날 갑자기 미로가 퇴사를 했다. 퇴사만 한 게 아니라 옥천을 떠날 거라고 선언했다. 미로가 소집한 퇴사 기자회견 자리에 모인 모두가 “네가? 집은?” 당황했다. 전셋집 계약이 1년이나 남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 누구보다 빨리 전셋집을 구하고, 동네 풋살팀에도 가입하길래 “와, 얘는 여기 뿌리 내리겠구나” 싶었는데.

미로는 하고 싶은 게 생겨서 공부를 하러 떠난다고 했다. 미로의 다음 미로는 iOS 개발자. 미로의 이사선언 기자회견에 모인 친구들 모두 입으로는 "정말 잘 어울린다!" 말했지만, "집은 어쩌고?", "갑자기 개발자?" 같은 걱정 섞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iOS를 공부하려면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인강을 들으며 독학을 할 수도 있지만, 미로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모여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로는 옥천을 떠나, 한 대도시 대학교에 있는 애플 개발자 아카데미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계약이 1년이나 남은 전셋집과 대회를 앞둔 동네 풋살팀을 뒤로하고 미로는 떠났다. 몇 주 뒤, 미로는 'Miiiro'라고 적힌 아카데미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엥? 왜 i가 세 개나 있지? 미로는 "그동안 나는 너무 내 주관 없이 살았던 것 같아. 그래서 '나(I)'를 강조하려고 세 개를 넣은 미로가 되기로 했어" 한다. 얼마나 더 강력한 주관으로 살 생각이길래...

배꼽: 흔적과 이름만 남고 기능은 없어진 신체 부위

미로는 공부를 마치면 다시 옥천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강남이나 판교에 있는 번쩍번쩍한 회사에 입사하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로가 개발자의 길을 택한 배경에는 옥천이 있었다. 옥천에서 보고 들은 일들이 미로가 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미로가 보기에 IT 기술의 도움이 정말 필요한 곳은 농촌이었다. 인간의 노동력을 덜어주고 생산성을 높여주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온갖 목표를 가진 첨단 기술 기업들이 넘쳐나지만, 저출생 고령화에 이촌향도의 직격탄을 맞아 정작 진짜 노동력이 부족하고 생산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삶이 힘들어지는 농촌 어르신에게 주목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AI가 세상을 바꾼다지만 여전히 농촌 어르신들은 잘 들리지 않는 귀, 잘 보이지 않는 눈, 움직이기 불편한 팔과 다리에 의존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갔다. 하지만 IT 기술 활용법을 알려주는 곳은 없었고, 어르신 혼자 사용법을 익히기에 앱은 불친절했다.

미로는 그런 농촌을 바꾸고 싶었다. 필요한 곳에 적정 기술을 도입하는 것. 농촌에서 일하는 첨단 산업 노동자가 되는 것. 그게 개발자 미로의 꿈이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미로가 살던 곳 옥천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기술이 넘치는 곳이 아니라,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게 미로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미로는 아카데미를 마친 뒤에도 남방한계선 위에 있는 회사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아카데미에서 미로와 뜻이 맞는 사람을 구하기로 했다. 그렇게 브레멘 음악대처럼 iOS 어벤저스를 꾸려 옥천으로 금의환향 하는 것. 그게 미로의 계획이었다. 왜 하필 iOS 냐고? 그건 미로가 애플을 좋아해서.

하지만 금의환향은 없었다. 미로는 분당선 라인 어디 즈음에 새 터전을 잡을 것 같다고 했다. 이 물음 하나가 미로의 발길을 강남과 판교로 돌렸다. I가 세 개나 들어간 Miiiro가 'I' 몇 개를 접는 선택을 하게 만든 물음이 있었다.

"애플스토어가 없는 곳에서 애플 개발자가 일할 수 있을까?"

'애플스토어'로 비유됐지만, 옥천으로 돌아오고 싶다던 미로의 발목을 잡은 건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노동시장에는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있다. 경향신문의 '절반의 한국' 기획 중 '팽창 가속 수도권 소멸 직전 지방, 두 번째 분단'을 보면 사무직의 남방한계선은 판교 라인에서 그어진다. 기술직은 반도체 관련 업체들이 있는 수원·화성·기흥이 남방한계선이다. 그 아래로 내려가면 해당 직군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중화학공업에는 북방한계선이 있다. 부산·울산·포항 위로는 '좋은' 관련 일자리를 만나기 쉽지 않다. 일자리가 없으니 한계선 너머에서는 인재를 찾을 수도 없다. 인재는 이미 한계선 위로 아래로 모여 있기 때문이다.

옥천은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정확히 그 사이에 끼어있다. 국토의 중심, 대한민국의 배꼽이 바로 옥천이기 때문이다. 미로에게 옥천은 정말 배꼽 같은 곳이었다. 흔적과 이름만 남고 기능은 없어진 신체 부위. 산업계의 비무장지대 같은 곳이었다.

애플스토어의 남방한계선은 서울에서 그어진다. 애플스토어가 없다는 건 곧, 애플 개발자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들은 전부 남방한계선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을 한들, 5만 도시 옥천에서 동료를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다고 미로는 직감했다.

일 하고 노는 곳 말고 일 하고 사는 곳

미로와 뜻이 맞는 동료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농촌 소도시에 살면서 개발자로 일하는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소도시에서 일한다는 건 일+휴가=워케이션의 개념이었다. 일+삶의 공간으로서 농촌 소도시를 상상하는 건 어려웠다. 아침 일찍 서핑 좀 즐기고 멋진 풍경 보면서 코드를 치다가 로컬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건 본 적도 있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지만, 소도시에서 은행이나 병원을 가고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하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딱히 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카데미 생활이 길어질수록 농촌 소도시에 사는 개발자에 대한 그림은 옅어졌다. 내 코드를 봐 줄 업계 사람이 주변에 있을까? 기획 아이디어를 얻을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랑 같이 일할 동료를 구할 수 있을까? 꿈꾼 적 없던 남방한계선 위로의 상경은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현실이 되어갔다.

결국 미로도 현실과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걱정이 됐다. 자고 일어나면 다니던 카페가 탕후루집이 되는 도시의 시계에 맞춰 살 수 있을까. 모두가 뛰고 있어서 잠깐이라도 걸으면 뒤처지는, 그리고 뒤처진 이들을 쏙쏙 골라내는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로는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고 오랜만에 옥천을 찾았다. 몇 달 만에 왔지만 좋아하던 카페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주 자전거를 타던 호숫가 길도 그대로였다. 애플스토어가 없는 것도, 같이 일할 동료 개발자가 없는 것도 그대로였다.

애플스토어가 여기 생기길 바라는 건 아니다. 빅테크 기업 본사가 이전했으면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로는 옥천이 남방한계선 위에 있는 도시를 닮아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곳의 공기에 맞는 새로운 테크 기업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기다림을 모르는 도시의 시계와 보이지 않는 손만큼은 남방한계선을 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개발자 중 누구도 이곳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게 되는 건 두려웠다. 필요가 발명의 아버지라는데, 도시 밖의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이 곧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도시 밖, 좀 더 구체적으로 남방한계선 아래 사람들은 고려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이었다. "네카라쿠는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거 알까?"

미로가 선택한 이번 길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출구? 또 다른 막다른 길? 미로는 다짐한다. 어디에서 어떤 개발자가 되든 내 삶터 밖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잊지 않기로. "거기는 어떻게 지내?" 물어보는 작은 여유를 잃지 않기로. 그리고 나의 주관을 잊지 않기로. 그리고 언젠간 일 하고 사는 곳으로서 옥천을 다시 선택하기로.

"다음 닉네임은 I가 네 개 달린 Miiiiro로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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