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_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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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서가옥

5만 도시에서 뭐 하고 지내?

#03_자기만의 방

사서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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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궁금했어요. "지역에 청년이 없다! 있던 청년도 다 나간다!" 하는데, "왜 나가는 걸까?" 하고요. 일자리가 없다(이게 제일 중요한 건 맞습니다), 인프라가 없다(이것도 엄청 중요한 게 맞고요) 이런 얘기는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다 하고 있는데, 정작 '지역에 살고 있지만, 지역을 떠나고 싶어하는 청년'의 목소리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누구보다 옥천에서 재밌게 사는 것 같은데, "나 옥천 떠날 거야" 항상 얘기하고 다니는 친구에게 "왜?" 하고 물어봤어요. 나는 여기 오래 살고 싶은데, 내 친구들 다 떠나면 어쩌나 전전긍긍 마음과 함께,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남을 건지 해법이 알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답을 들었는데요. 특히 시티펄슨으로서 도시의 익명성을 사랑했던 저에게 정말 공감 가는 이야기였어요. 그치만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쉬운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 고향에 사는 이 지역 슈퍼인싸 친구가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 뉴니커도 만나보고, 함께 생각도 나눠요!

 

슈퍼 대문자 E

이쏘는 자타공인 왕발이다. 인싸도 이런 인싸를 본 적이 없다. 자타공인 고사리발 내 기준에서 이쏘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약속 잡기 힘든 사람이다. 오늘은 누구랑 약속이 있고, 내일은 저래서 안 되고. 

뭐가 그렇게 바쁘냐 물어보면 이쏘는 알록달록 일정이 가득한 다이어리를 보여준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시간대별로 쪼개 수많은 약속들이 적혀있다. 이 작은 동네에 뭐 그리 만날 사람이 많나 싶다. 읍내 지나가는 청년 붙잡고 이쏘 아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셋 중 하나는 “나 걔 만나기로 했는데!” 할 거다.

그의 왕발은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야 에너지가 채워지는 성격 덕에 만들어졌다. 이쏘는 MBTI 검사를 해보면 대문짝만한 ‘E’가 나올 사람이다. 학창시절 매 학년 시작할 때 첫 목표가 ‘1주일 안에 반 친구들 모두와 수다떨기’였다니 말 다했다. 수다가 쌓여갈수록 이쏘의 발도 십구문 반은 더 되리만치 커져갔다.

이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문득 옥천이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이라고 느꼈다. 인구 5만 옥천이 그에게는 너무 좁게만 느껴졌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봐야 어차피 다른 친구의 친구였고, 어른을 만나도 누구네 아빠요 저기네 엄마였다. 새로운 사람인데 전혀 새롭지 않은 이 느낌.

대학을 가면 갈증이 해소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쏘에겐 대학을 진학하며 새롭게 터를 잡게 됐던 P시도, 대학친구들과 이따금 놀러가던 서울도 작은 것 같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지 않나. 이쏘는 발이 어디까지 커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쏘는 세계를 봤다. 세계는 넓고 사람은 많다!

“여행을 가야겠어. 그것도 아주 길게. 정말 멀리. 너무 많은 나라를.”

대학생 이쏘는 돈을 열심히 벌었고 또 열심히 아꼈다. 통장에 1천만원이 찍혔다. 그리고는 발 사이즈가 맞는 대학동기 한명과 함께 한 학기 휴학계를 제출했다.

6개월 동안 유럽, 북미, 중미, 남미를 돌았다. 아주 길게, 정말 멀리, 너무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돈 좀 아껴보자고 대중교통 안에서 자는 날이 허다했고 한 끼 쯤 거르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이쏘는 행복했다. 유럽 어딜 가도 한 번씩 겪었던 인종차별(중국인 아니라고 일본인도 아니라고 그래 내 눈 작다 이 코쟁이야), 북미의 자본주의 냄새(행복은 당연하고 여기서는 불행도 돈 주고 사야하는 것 같았다), 남미의 멀미제조기 고물 버스(한국이었으면 근대 문화재로 지정됐을 엄마아빠보다 나이 많은 게 현역버스랍시고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이런 것들마저 행복했다. ‘봐, 옥천은 나한테 맞지 않는 신발이었다고!’ 증명하는 것 같은 거침없는 행보였다.

 

신발이 아니라 방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여행의 목표는 ‘신발’이 아니라 ‘방’이었던 게 아닌가 생각하는 날이 잦아졌다. 모두가 잠든 새벽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워 일기를 써내려갈 때의 고요함이었다. 옆에서 말 거는 사람 하나 없고(걸어도 뭔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백색소음과 거진 다를바 없다), 이어폰 속 음악을 방해하는 카톡 알림음도 없는 그 정적이 주는 희열. 6개월의 세계일주가 이쏘에게 ‘자기만의 방’을 선사한 것이다. 한국, 옥천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진정한 자유였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lf)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한 바 있다. 여성의 지적 자유를 위해서는 물질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돈은 경제적 독립을, 자기만의 방은 공간적 독립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공간적 독립이란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감 놔라 배 놔라 옆에서 첨언하는 사람 없는 고요한 상태, 즉 정신적 공간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쏘가 자기만의 방이 주는 행복을 그제야 깨달은 건 그의 왕발이 늘 그의 발목을 붙잡아서다. 이쏘는 여행을 통해 옥천 어디에도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카페를 갔더니 사장님이 친구 오빠고, 식당을 갔다가 아버지 친구를 만나고, 아무리 그래도 물속이라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하고 간 수영장에서는 면장님이랑 같은 강의에 배정됐다. 일부러 아는 사람 없을 법한 새벽 시간대를 골랐는데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아무도 편치 못한 수영복차림의 인사.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이 기분. 실제로도 반쯤 서로 벗겨져 있기도 하고. 무한도전에서 송은이 씨가 “난 제동이랑 뽀뽀하기 싫어!” 소리 지른 게 무슨 감정인지 알 것 같다. 다른 수영장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옥천에는 수영장이 하나 뿐이다.

그렇다고 “난 면장님 배꼽 보기 싫어!” 하고 소리 지를 대나무숲도 마땅치 않다. 그랬다간 동네방네 “지 좀 냅두랴”, “암두 안 건드렸는데 왜 저랴” 소리가 나올 거다. 이쏘에게 옥천은 그런 곳이었다. (모 면장님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다고 이쏘가 꼭 써 달라 해서 한 줄 덧붙인다. 면장님 미운 건 아니래요. 행복수영 하십쇼.)

신발을 찾아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온 이쏘는 곧장 다시 떠날 궁리에 빠졌다. 이번엔 방을 찾아 나설 참이다. 해외에서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기왕이면 아는 사람은커녕 한국어 듣기도 힘든 남미 오지에서. 그래서 알아본 게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이었다. 투철한 봉사정신이나 세계시민으로서의 의무 뭐 그런 게 아니었다. 국가가 공인하는 기관에 소속돼서 해외를 나가겠다고 하면 부모님 허락 받기 쉽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영혼을 갈아 넣은 지원서와 면접은 무사히 통과했고, 최종 부모님 면접도 “멀쩡하게만 돌아오라”는 답과 함께 통과했다. 그렇게 남미 볼리비아에 있을 이쏘만의 방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시작되는 줄로만 알았다.

 

돌아온 고향

하지만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쳤다. 이쏘의 출국 예정일은 2020년 4월이었다. 출국 예정 두 달 전 한국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을 했고, 그 다음 달에는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패닉에 빠졌다. 결국 코이카는 출국을 20여일 앞두고 사업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었음을 이쏘에게 알려왔다. 맙소사. 이미 대학도 졸업한지라 P시에 머물 명분도 여력도 없었다. 결국 이쏘는 옥천으로 돌아왔다. 자유를 위해서는 돈과 방이 필요하다는데 둘 다 없으니 귀향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최선이었겠어? 차악을 선택한 거지.”

라고 이쏘는 말하지만, 이쏘의 왕발이 다시 한 번 그를 ‘이쏘스러운(?)’ 일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옥천의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어 해외로 나가려던 선택의 차악이 마을공동체 관련 업무라니. 인사이더여도 너무 인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는 직무 아닌가. 업무 특성상 지역 곳곳을 살펴야 하고 주민들을 매일 같이 만나야하니 아는 동네 사람이 더 많아지는 건 당연하고, 이전엔 인사만 하는 사이였던 어른들이 지금은 일로 만나는 사이가 됐다.

마을공동체 일이 어떻게 해외봉사를 대신하는 일이 될 수 있냐, 세계시민 정신은 없어도 로컬주민 정신은 있는 거냐 놀리듯 물으니 이쏘는 “아웃사이더가 될 수 없다면 최강 인사이더가 돼야지”하고 헤헤 웃는다. 이쏘답다. 

이쏘는 마을공동체 관련 일을 하면서 ‘내가 알던 옥천은 정말 요만큼이었구나’ 깨달아가는 게 재밌다고 했다. 고향인데도 옥천에 읍이 몇 개고, 면이 면 개인지 모르고 살았다는 걸 일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고, 예산이 어디에 얼마나 쓰이고 어디 마을에 누가 무슨 일 하고 이런 걸 알아가면서 옥천이라는 신발도 내 발에 충분히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요리조리 수선하고 있다고. 

그렇다고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옥천에서는 자기만의 방을 꾸리는 게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명징해졌기 때문이다. 일로 만난 사람을 쉬는 날 또 만나고, 쉬는 날 만나던 사이가 일로도 만나야 하는 사이가 되어 버리며 일과 삶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어서다. 노동이 쉼의 영역을 침범할 때마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 절실해진다. 

부모님 집에 이쏘만 쓰는 방이 있긴 하다지만 방 밖엔 부모님이 있고, 동네 친구 누가 연락하면 안 나갈 핑계를 만들어야 하는 게 어디 자기만의 방이라 할 수 있겠나. 대도시인간의 “시골 살면 한적하고 좋겠어요” 같은 속 모르는 소리를 이젠 그냥 웃어넘기기가 힘들다. 야, 니가 시골 살아봐 얼마나 속 시끄러운데.

 

면장님 없는 카리브해를 꿈꾸며

그래서 이쏘는 주말이면 자기만의 방을 찾아 옥천을 떠나며 왕발 이쏘와 버지니아 이쏘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일이 없는 때면 대학을 다녔던 P시에 가서 친구를 만나거나, 서울에 가서 한강변을 거닌다. 여력이 안 되면 적어도 행정구역상 ‘옥천’이 아닌 곳에 있는 카페에 간다. 토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그의 자가용에 시동을 건다. 운전석에 앉아 “옥천만 아니면 돼!”라며 스마트폰 지도를 슥슥 옮겨본다. “아, 제가 지금 옥천이 아니라서요”라고 말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래저래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넘나드는 이쏘는 지금도 옥천을, 한국을 떠날 생각을 품고 산다. 그의 왕발을 만들어 준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또 행복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이 세상에 홀로 선 단독자로서 자기만의 방에 누워 고요와 정적을 곱씹고 싶다.

이쏘는 꿈꾼다. 쿠바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려 수시로 카톡 알림이 울리는 나라가 되기 전에 아바나(Havana, 쿠바의 수도)에 갈 수 있기를. 면장님 없는 카리브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누구네 아버지 저기네 어머니 없는 바에 앉아 상큼한 모히또 한 잔 하면서 진한 시가 한 대 곁들일 수 있기를.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기를.

시리즈5개의 아티클

5만 도시에서 뭐 하고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