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_"전국의 덕후들이여, 단결하라!"
작성자 사서가옥
5만 도시에서 뭐 하고 지내?
#02_"전국의 덕후들이여, 단결하라!"
들어가기 전에
제가 사는 옥천은 대한민국 국토 딱 가운데에 있는 도시예요. 그 중에서도 진짜 찐 가운데라는 배꼽마을도 있고요. 그래서 팔도 사방 어딜가나 차 타면 2시간 반 안에 갈 수 있어요.
이런 지리적 특징 때문에 온갖 물류회사의 허브가 있는 곳이기도 해요. 악명 높은 옥천HUB, 다들 당해보셨죠? 그 옥천이 바로 여기 옥천입니다.
"교통의 요지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자가용이 있다면 전국 여행 다니기 정말 좋은 곳인데요. 없다면 교통의 오지 그 자체입니다. 고속버스로는 인근 도시 3개 정도만 갈 수 있고요. (서울, 부산 가는 버스? 없어요. 그냥 없어요.) 기차는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있는데요. 가장 수요가 많은 서울행은 하루에 10편이 안 돼요. 원하는 시간에 서울역에 가려면 옥천에서 가장 가까운 KTX역인 대전역에 가서 갈아타야 하는 거죠.
대전역 가는 기차도 배차 간격이 길면 2시간 가까이 되니, 여행 일정 짜는 게 쉽지 않아요. 첫차는 늦게 있고 막차는 빨리 끊기니 강제로 바른생활 해야하는 건 덤. 아, 그리고 시내 버스는 도착 알림 서비스가 없어서 시간표를 외워야 합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농촌 소도시, 참 좋다" 하다가도 한숨 푹푹 나오는 순간이 생겨요.
특히 '덕질'하는 사람으로서 "이따우 대중교통, 이제 못 참는다! 투쟁이다 투쟁!" 하는 친구가 있는데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그 친구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주로 재택근무를 하지만, 1주일에 한 번씩은 서울 회사로 출근하는 저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닌데요. 친구의 투쟁을 응원하며, 글 시작할게요!
환승은 있어도 하차는 없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덕질도 그렇다. 뵤의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보이그룹 엑소(EXO)가 혜성처럼 등장한 때였다. 전국민이 엑소의 노래에 맞춰 ‘으르렁’거리던 시절이다.
사실 뵤는 엑소 이전에 비원에이포(B1A4)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때, 저녁식사 전 무심하게 TV 채널을 돌리다 리모컨이 멈췄다. 비원에이포의 음악방송 무대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도 좋고 춤도 멋졌다. 특히 멤버 산들의 귀엽고 센스 있는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렇게 빠순이가 되는 건가” 싶었다. 엑소가 온 나라를 ‘으르렁’으로 도배할 때도 처음엔 “대형 소속사의 횡포다. 저렇게 돈을 쏟아 부으면 우리애들 같은 중소기업은 뭐 먹고 사냐”며 조용히 투덜거렸다.
그런데 왜 덕질의 시작이 엑소냐고? 친구 따라 강남 간 케이스라고 할까. 학교 친구들이 전부 엑소 덕후가 된 것이다. 만나면 엑소 얘기에 맴버 사진 교환하고, 누가 엑소 앨범이라도 사오면 난리가 났다. 애들이랑 대화를 하려면 엑소를 알아야만 했다. 뵤는 원만한 교우관계를 위해 엑소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빠져들었다. 누군 이래서 좋고 누군 저래서 멋지고 모이면 끝내주고. 돌아보니 뵤는 친구들 중 제일 깊숙이 엑소를 사랑하고 있었다. B1A4는 좋은 노래 따라 부르고 가끔 TV 채널 돌리다가 나오면 보는 수준이었다면, 엑소는 어떤 노래가 좋은 이유를 육하원칙으로 설명하고 멤버 누구가 무슨 프로그램에 나오는지 한 주 시간표를 꿰고 있을 정도였다. 옛말(?)로 빠순이, 요즘 말로 덕후가 된 것이다.
그러고 나니 친구들과 엑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덕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보다 더 엑소를 사랑하는 이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뵤는 엑소의 팬클럽과 각종 관련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했다. 그곳엔 덕후들의 덕후, 홈마(홈페이지 마스터의 준말로 아이돌의 일정을 따라다니면서 이들의 사진과 영상을 찍는 이들)가 있었다.
뵤는 홈마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그들이 올리는 콘텐츠를 즐겼다. 하지만 직접 콘서트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콘서트를 보려면 서울을 가야만 해서다. 서울에서는 눈 뜨고 코 베인다는데 그 무시무시한 곳을 어떻게 어른도 없이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뵤에게 꿈속에 그리던 엑소 콘서트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함께 덕질을 하던 친구 하나가 엑소 단독 콘서트 티켓을 구해 온 것이다. 우리끼리 서울 갔다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너무 두려웠지만, 안 갔다간 다녀온 친구로부터 자랑을 듣고 열 받을 게 게 더 무서웠다.
그렇게 뵤는 친구와 단 둘이 서울행 무궁화호에 올랐다. 두 시간여 뒤, 서울역에서 내린 뵤와 친구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가방을 꼭 안고 두리번거렸다. 콘서트가 장소인 고척돔까지 가는 내내 가방을 털리진 않을지, 시골에서 온 걸 들키진 않을지 전전긍긍. 그래도 고척돔이 있는 1호선 구일역부터는 마음이 놓였다. 응원봉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가니 금방 고척돔 앞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으니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무대에서 가장 먼 3층 끝자리였다. 엑소는 면봉처럼 보였다. 누가 누군지 확인하려면 무대가 아니라 스크린을 봐야 했다. 그래도 뵤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회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 나와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들이 수만 명 모여 있다는 것. 그것이 주는 위안과 소속감은 학교 쉬는 시간 엑소 토크나 커뮤니티 서핑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무언가였다. 코는 멀쩡이 붙어 있었지만 심장을 통째로 뺐긴 기분.
콘서트 직관 후 뵤는 정기적으로 콘서트에 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직관형 덕후’가 됐다. 내 심장이 고척돔에 있으니 자주 가는 수밖에.
뵤는 더 이상 엑소의 덕후가 아니다. 멤버들의 각종 사건사고에 신물이 나 탈덕을 선언했다고. 하지만 덕질열차에 환승은 있어도 하차는 없다는 유구한 격언이 있다. 지금 뵤는 엔시티 드림(NCT DREAM)의 덕후다. 물론 엔시티 드림을 좋아하고 응원하며 위로 받고 또 위로하는 행복이 가장 크겠지만, 팬덤이라는 공동체 역시 쉽게 놔 줄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기에 덕질을 지속하고 있다.
강준만 교수와 그의 딸 강지원씨가 함께 쓴 아이돌 여성 팬덤 연구 저서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를 보면 실제로 팬덤이 어떻게 ‘소통 공동체’를 형성하고 또 활동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덕질’을 단순히 개인의 취미 혹은 (부정적 시선으로 볼 경우) 일탈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내부 공동체가 만드는 맥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덕질열차에 환승은 있어도 하차는 없는 이유를 찾는다면 소통의 부재가 낳은 공동체 해체, 공동체 간 갈등 등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강한 소속감과 결속력을 지닌 팬덤 공동체 내부에는 사회문제를 직접 의제로 설정하고 투쟁에 나설 원동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팬덤의 깃발 아래 촛불집회에 참여하거나, 음악계의 각종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행동들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고.
뵤의 덕질 연대기에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들고 온 이유가 있다. 뵤가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전국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콘서트, n 번의 티켓팅
뵤의 덕질 연대기에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들고 온 이유가 있다. 뵤가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전국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다시 뵤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엑소에서 엔시티 드림으로 최애 그룹이 바뀌는 사이, 코 베일까 두려움에 떨던 뵤는 이제 성인이 됐다. 혼자 서울행 기차를 타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콘서트도 벌써 수차례 다녀왔고 아이돌 기념품을 사러가거나 생일카페(아이돌 멤버 혹은 그룹 데뷔일에 팬들이 카페를 대관해 이를 기념하는 문화가 있다)에 가고자 서울을 간 것 까지 하면 셀 수도 없이 서울과 옥천을 오갔다.
하지만 어른 뵤는 지금도 코레일 앱을 여는 게 무섭다. 이젠 기차를 타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기차를 타지 못할까 무섭다. 주말 옥천-서울 왕복 무궁화호 자리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무궁화호는 자가용이 없는 뵤가 서울을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포공항행 항공편은 당연하고 옥천엔 서울행 고속버스 노선도 없다. 때문에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했다면, 다음으로 무궁화호 티켓팅에도 성공해야만 한다.
대전역에서 KTX를 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옥천-대전-서울 루트로 기차를 타 본 사람이라면 안다. 대전역까지 가는 시간에 환승대기까지 고려하면 시간은 시간대로 더 걸리고 무궁화호보다 거의 두배는 비싼 KTX를 타야하니 돈도 돈대로 든다. 뵤도 옥천-서울 무궁화호 좌석을 구하지 못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대전-서울 KTX를 타지만 탈 때마다 “코레일 놈들”하면서 욕을 삼킨다.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울 가는 무궁화호 표를 구하는 게 ‘티케팅’이란 이름을 붙일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궁화호 티케팅이 시작된 건 해마다 옥천역에 정차하는 무궁화호가 시나브로 줄어들고 있어서다. 뵤가 처음 서울로 콘서트를 보러 가던 때만 해도 옥천역에 서울행 무궁화호가 옥천역에 하루 14대가 정차했다.
지금은 하루 9대가 정차한다. 참고로 대전에서 서울가는 KTX는 하루 서울행 승객 수요는 줄지 않았는데 열차는 줄었으니 좌석 구하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와 함께 서울에서 옥천으로 오는 막차 시간도 오후 7시30분에서 오후 5시30분으로 앞당겨지면서 팬미팅이나 생일카페만 다녀오더라도 서울서 하루 자고 와야 하나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번은 뵤가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콘서트 티켓을 구해 원정 덕질에 나선 적이 있다. 이때 뵤는 콘서트 티켓이랑 인천공항발 도쿄행 비행기표는 구했는데 인청공항까지 갈 교통편을 구하기 너무 힘들었다. 이론상 서울역까지 간 다음 공항철도를 타면 되는데 옥천-서울 무궁화호는 물론 대전-서울 KTX도 맞는 시간대 열차표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서울 친구 집에서 전날 하루 묵고 공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옥천으로 돌아오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콘서트, 기차, 비행기 총 세 번의 티케팅과 친구집-일본 호텔-친구집 세 번의 숙소 이동을 거쳐 옥천으로 돌아온 뵤는 다짐했다.
“못살겠다, 바꿔보자! 전국의 덕후들이여, 단결하라!”
고척돔 접근성 사수 투쟁
사라져가는 지역 철도를 지키기 위해 우리 덕후들의 요구를 외치자는 것이다. 대형 공연을 지역 소도시에서 열어달라고 하는 게 무리라는 건 잘 안다. 우리가 고척돔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가겠으니 갈 수 있는 교통편만큼은 사수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지역 주민의 발 무궁화호 감차에 맞서 ‘비수도권’ 덕후들이 뭉쳐 투쟁한다면 지역의 고립과 소멸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게 뵤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지역에서의 덕질이 지속가능한지 여부를 보면 그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이론을 덧붙였다.
“지역에서 덕질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곳의 청년 공동체가 살아 있다는 것, 대중교통 접근권이 보장 된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지역소멸 어쩌구 얘기할 때도 맨날 나오는 얘기 아니냐고. 거창하게 전문가 모셔서 얘기 듣기 전에 당신들의 아들과 딸들에게 ‘요즘 덕질은 좀 할만 하니’ 물어보면 답이 나올 걸?”
뵤는 다음 콘서트를 위해 또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 언제까지 엔시티 드림의 팬일지는 알 수 없지만 죽는 그날까지 아이돌 덕후로 살 것임은 분명하다는 뵤다. 덕질의 대상이 바뀔 수는 있어도 이 짜릿한 위로와 따뜻한 소속감을 주는 공동체를 벗어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뵤는 떠날 것이다. 고척돔과 도쿄돔 가는 길을. n번의 티케팅과 n번의 환승, n번의 숙소 이동을 거쳐야만 하는 그 험난한 여정을. 뵤는 자신이 덕질열차에서 내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따라서 옥천역에 정차하는 열차를 지켜야만 한다.
비수도권 거주 아이돌 팬덤의 콘서트 접근권 투쟁이 승리를 거두고 옥천-서울 직행 열차를 지키는 데 성공하길 바란다. 뵤의 덕질이 지속가능하길 기원한다. 동시에 연대의 손길을 건내고자 한다. 뵤와 아이돌 팬덤의 ‘고척돔 접근권 사수 투쟁’은 우리 모두가 누릴 달콤한 열매를 낳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