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서울증후군
작성자 사서가옥
5만 도시에서 뭐 하고 지내?
#01_서울증후군
들어가기 전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독일 녹색당 창당자 중 한 명으로 직업정치인이자 여성·환경·사회운동가인 페트라 켈리(Petra Kelly)가 했던 말이에요. 한 사람이 사회와 맺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담론들이야말로 과거를 톺아보는 가장 정확한 역사이자 현재를 설명하는 가장 명징한 현상이며, 그 안에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확실한 청사진이 있다는 선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지역에 청년이 없다! 소멸, 조만간이다!" 하는 위기를 해결할 방안을 찾는 일에 있어서도 그의 명제는 유효해요. 지역의 공간적 맥락 속에서 쓰인 청년들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 다시 말해 제가 살고 있는 인구 5만 명 작은 농촌 소도시와 이곳과 관계를 맺는 청년들은 '뭐 하고 지내는지' 알아보는 게 지역 소멸 해결법을 찾는 일에 중요한 과정일 거라는 것.
이러한 맥락도 이번 '5만 도시에서 뭐 하고 지내?' 아티클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고요. 저와 제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의 가장 정치적인 힘'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첫 이야기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제 친구의 스토리로 시작합니다. 뉴니커들과 함께 "그래서, 지역에 산다는 건 뭐고 또 서울에 산다는 건 뭐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뭔가 짜릿한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누구나 살고 싶은 곳에서 살맛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진 않을까 기대하며 첫 아티클 시작할게요.
이번 기획은 ‘자취방’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수도권 청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들여다 본 에세이집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남경지, 오모리, 2021년)>로부터 이어지는 작업이기도 해요. (남경지 작가도 제 친구입니다 ㅎㅎ. 책 많관부 🤗)
"어른은 다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어"
지옥철. 출근시간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찬 수도권 지하철을 일컫는 말. 니키에게 지옥철은 꿈의 공간이었다. ‘꿈’보단 차라리 운명이나 의무 같은 단어가 더 어울릴지 모른다. 고등학생 시절 니키에게 노동자가 된다는 건 출퇴근길 지하철 속 콩나물 n개 중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니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어른은 다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고.
삶이요 꿈인데 로망이 없었을 리가.
출근시간 1시간30분 전에 집을 나와 지하철에 몸을 우겨 넣고, 정장 입은 아저씨는 어디서 내릴지, 체크 남방에 백팩을 멘 청년은 저기서 내릴지 앉을 자리를 찾아 눈치게임을 하다보면 어느새 인파에 떠밀려 회사 앞 역에서 내린다. 그리곤 표정 없는 얼굴로 한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사원증을 근태관리기에 ‘띡’ 찍는다. 다음으론 무채색 파티션으로 뚝뚝 나눈 똑같이 생긴 수십 개 자리 중 내 자리를 찾아가 털썩 몸을 던지고는 “하, 퇴사하고 싶다” 외친다.
오후 6시 퇴근길. 이어폰을 꼽고 지하철에 다시 몸을 맡긴다. 역시나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지곤 환한 조명이 꺼지지 않는 잠들지 않는 도시를 뒤로한 채 내일을 준비한다. 중요한 건 마치 수면등을 켜 놓은 듯 집 창문너머 일렁이는 꺼지지 않는 불빛들이다.
이걸 매주 다섯 번 반복한다. 그게 니키의 로망이었다. 어른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고, 고등학생 니키는 어른이 되고 싶었고 또 어른이 될 거였으니까.
그런데 여기 옥천에는 지하철이 없다. 그러니까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는다는 건 서울, 아니면 적어도 지하철이 있는 수도권이나 광역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을 잠깐 빌려오겠다.
[대전제] 모든 사람은 죽는다. (A = B)
[소전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C = A)
[결론]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B = C)
이걸로 니키의 지옥철 이론(?)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대전제] 모든 지하철은 도시에 있다.
[소전제] 어른은 지하철을 탄다.
[결론] 어른은 도시에 있다.
니키의 지옥철 이론을 만들어준 건 드라마와 영화였다. 영화 속 일하는 여성은 늘 도시에 살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의 시계를 따라 지하철을 타고 고층 빌딩으로 출근했다.
미디어에 니키의 옥천 같은 작은 농촌도시는 잘 등장하지 않았다. 가끔 나오더라도 그곳엔 니키가 원하는 삶이 없었다. 농촌은 늘 바쁜 도시의 삶에 지쳤을 때 영혼을 달래러 가는 곳이지 삶터는 아니었다. 삶터로 등장할 때도 어린시절 추억의 공간이었다. 등장인물은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를 살았다. 혹은 의문이 사건이 터지는 미스터리하고 으스스한 곳이거나. (실제로 옥천은 스릴러의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곤 했다.)
미디어 속 농촌 소도시 어른들은 선생님이거나, 공무원이거나, 인심 좋은 식당 사장님 아니면 농부였다. 학창시절 니키는 광고홍보 직군에서 일하는 걸 꿈꿨다. 농촌에 사는 광고제작자는 듣도 보도 못했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 니키는 반드시 도시로 나가야했다. 그것도 지하철이 있는 도시로.
꿈에 그리던 지옥철, "이게 서울이지"
고등학교 졸업한 니키는 지하철이 없는 지역의 대학에 진학했다. 나름 고향 옥천보다 훨씬 큰 도시였지만 지하철이 없다는 건 치명적이었다. 지하철이 없으면 어른이 될 수 없으니까. 니키의 로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지옥철에 대한 로망이 커질수록 고향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커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했을 때 그곳에서의 삶을 ‘상상조차’할 수 없었다. 옥천에는 지하철이 없으니까. 지하철이 없으면 어른이 될 수 없으니까.
“내가 옥천에서 상상할 수 있는 삶은 우리 엄마 하나밖에 없었어. 내가 아는 옥천에 살면서 옥천에서 일하는 어른은 엄마 하나였거든. 이러니 옥천에서 살아가는 내 삶은 밑그림도 못 그리겠는 걸 어떻게 졸업하고 옥천으로 갈 용기가 생기겠어. 서울로 가는 것보다 더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지. 아니, 서울로 가는 건 당연한 거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니키가 대학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때, 그에게 한 광고대행사 서울 본사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정규직 전환 없는 단기 체험형 인턴이라지만 계약조건이 뭐 중요한가. 지하철을 탈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콩나물시루의 n번째 콩나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니키는 마냥 좋았다.
니키의 서울살이 시절 출퇴근길은 그야말로 강북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루트였다. 대학에서 마련해 준 숙소는 2호선 합정역과 홍대입구역 사이 상수동이었고, 회사는 뚝섬역과 건대입구역 사이 성수동에 있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둘을 오가려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신촌, 시청, 왕십리 같은 유동인구수 상위권을 겨루는 곳을 지나가야 한다. 그토록 꿈꾸던 지옥철을 타게 된 것이다.
첫 출근을 며칠 앞두고 상경한 니키는 강 건너 국회의사당이 내려다보이는 숙소에 짐을 풀고는 “아, 이게 서울이구나” 감탄하며 맥주를 홀짝였다. 침대랑 책상 자리를 빼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는 좁디좁은 방이었지만 이곳이야말로 내가 몸 누일자리라고 니키는 생각했다.
서울증후군, 그리고 꺼지지 않는 노트북
하지만, 니키의 로망은 첫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와장창 깨져버렸다.
파리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정신과의사 오타 히로아키가 처음 공식적으로 쓴 말로, 대중매체나 예술작품을 통해 프랑스 문화를 접하며 파리에 대한 긍정적인 환상을 가진 사람이 실제 파리에 갔을 때 느낀 환상과 현실사이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질환을 뜻한다. 현기증, 속쓰림, 구토 등 신체적 증상이 발현하기도 한다.
예컨대 멋드러진 옷을 입고 우아하게 크루아상을 씹으며 에펠탑이 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담배 하나 태우는 파리지엔느의 삶을 꿈꾸며 파리에 갔더니 웬걸, 거리는 개똥천지 카페에선 인종차별에 센강 주변에서는 지린내가 진동하는 것 아니겠나. 그럼 절로 머리가 아프고 구역질이 나오지.
니키는 서울증후군을 앓았다. 첫 출근부터 계약이 만료돼 학교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지옥철은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신촌, 시청, 왕십리를 지나며 밀물처럼 들어오고 썰물처럼 나가는 그야말로 ‘인파’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버텨야했다. 이어폰을 꽂았지만 음악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수천가지 체취가 섞인 공기가 숨을 조였고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짜증이 솓구쳤다. 표정은 저절로 사라졌다. 아메리카노는 생명수였다. 카페인이 없으면 출근도 전에 쓰러질 것만 같아 벌컥벌컥 카페인을 주유했다.
“퇴사하고 싶다”는 명대사 같은 게 아니었다. “살려주세요”의 다른 말이었다. 사내 최고 말단 체험형 인턴의 자리는 창문 없는 구석에 놓인 책상이었다. 앞뒤좌우 어디에도 도시의 멋진 풍경은 없었다. 앞은 벽이었고 뒤를 돌아도 벽이었다. 양 옆에는 니키와 같은 ‘체험형 인턴’들이 문서정리, 엑셀, 복사 같은 온갖 잡동사니를 정신없이 ‘체험’ 중이었다.
광고일도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달랐다. 치열한 토론이 오가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넘실거리는 작업실이 아니었다. 니키가 일한 곳은 돈과 시간에 쫒기며 광고를 찍어내는 광고공장이었다.
한강이라도 볼 참에 2호선을 반대 방향으로 타 보지만(서울 지하철 2호선은 순환형 노선이라 반대로 타도 시간이 더 걸릴 뿐 목적지에 갈 수 있다) 사람들에 치여 창밖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이의 백팩과 또 다른 이의 백팩과 다른 이의 스마트폰과 또 다른 이의 스마트폰이 보일 뿐이었다.
숙소에 돌아온 니키가 할 수 있는 일은 밥 먹고 씻는 거 말고 없었다. 다른 걸 할 정신도 체력도 없어서였다. 그냥 내일 살아서 출근하려면 해야 할 일을 간신히 해낼 뿐이었다.
니키는 인생 처음 고향이 그리웠다. 인파에 취해 어지러웠고, 그 수많은 사람 속에 내 얘기를 들어 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외로웠다. 서울에서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냐 안 되냐 전에 여기 더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
인턴계약이 끝나고 니키는 옥천으로 돌아왔다. 서울증후군을 치료하는 길은 그곳을 떠나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떠나서 머물 수 있는 곳은 고향집뿐이었다. 옥천에서 어른이 되는 길을 찾아야했다. 다신 지옥철 속 콩나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니키는 지금 고향집에 가족과 함께 살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했다. 지옥을 향해 달리는 서울 2호선 대신 침대에서 노트북 앞까지 도보로 10초 일터로 출근한다. 창문도 있다. 홍보직군이지만 비영리단체 소속이라 공장마냥 단가 맞춰 광고를 마구 찍어내지 않아 만족스럽다고. 내 얘기 들어줄 가족과 친구도 있다.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도 어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콩나물n번이 아닌 인간 니키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니키는 지금 행복하다.
니키는 말한다. “중요한 건 꺼지지 않는 노트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