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형🙋) 재미있는 철학적 주제 28편 - (사고실험) 톰슨의 바이올리니스트 여러분들이 다음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가정해봐요.🤔 당신은 어느 날 깨어나보니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옆 침대의 의식이 없는 남자와 호스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 사람은 신장병을 앓고 있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같은 유전자 조직을 가진 당신과 호스를 연결하는 것이다. 너무 급한 나머지 음악애호가 협회에서 당신을 납치해서 연결 수술을 했던 것이다. 당신은 의사에게 연결한 것을 분리해달라고 요구하고 바로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분리한다면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죽을 것이다. 반면 당신이 그와 연결된 채로 9개월만 있게 되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일요일에 간단히 피드백을 하겠습니다!🙋 그림출처: SRF Kultur Sternstunden
고통
2023.12.19•
분리하겠습니다.
제가 그 남자를 신장병에 걸리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9개월은 너무나 길어서 살려볼법하단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또한 나는 그 남자와 동일한 유전자 조직을 가지길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것으로 인해 희생을 치러야하는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생각해보면 삶의 많은 부분들이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것들로 인해 책임을 지게되곤 합니다.
저는 우리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도덕적 실격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선한 의도였어도 결과는 무심할 정도로 나쁘며 선한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우연히 결과는 좋아서 칭찬을 받고 그걸 좋아하는 내 자신을 보면 이따금 스스로가 역겹다는 생각도 듭니다.
본문을 찾아보니 낙태에 관한 유명한 사고실험이더군요. 9개월은 임신기간이겠지요. 같은 유전자 조직을 가진건 태아일 것이구요.
낙태반대에 대한 흔한 근거로 태아의 생명권을 들지만 사실 그런 근거가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미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하고 자유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예견된 것이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태아가 이미 태어난 사람들과 감히 도덕적으로 대등한 지위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많은 반론을 견뎌내야하는데 결코 쉽지 않습니다.
쾌고감수능력 또한 임신의 상당기간 뒤에야 가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어차피 아이도 내가 낳고 싶어서 낳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낳기 싫을 땐 중간에 마음을 바꿀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내가 내 신체를 사용하는건데 감히 누가 태클을 한다는거죠?
저는 낙태에 관하여 통상의 태도와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낙태는 안할 수 있으면 안하는게 아니라 할 수 있으면 하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세대가 태어남으로서 겪을 삶의 무수한 나쁨들을 피하도록 배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낙태에 관한 주류의 친선택적 태도는 제가 취하는 그것과는 모양새가 다릅니다.
현재세대가 더 중요하다는 모양새는 그런 견해의 튼튼함과는 별개로 미래세대의 정의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낙태가 친선택적일 수 있다면 이런저런 근거들을 갖다 붙여 태아의 특성도 그 생물학적 부모에 의해 친선택적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하나의 생각은 그와 유사한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키, 지능, 외모, 피부 등 태아의 유전자조작이 점차 가능해짐에 따라 이전에는 고민할 필요없던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가령 내가 임신한 아이가 평균에 비해 지능이 상당히 낮을 것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에 반해 다른 특성은 꽤 평균근처입니다.
낙관에 기대어 다른 특성으로 충분히 좋은 삶을 살거라 생각해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는다고 해봅시다.
근데 이런 생각은 한편으론 이상합니다. 지능도 높으면 좋은거 아닌가요? 이왕이면 하나라도 좋은 스텟을 가지고 후손의 삶을 시작시키는게 낫지 않나요? 왜 굳이 할 수 있는걸 안하는거죠?
당장에 우리들만 해도 키가 조금 더 크길, 외모적으로 더 낫게 태어났길 생각하곤 하지 않나요?
거시적으론 그런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는게 바람직할지라도 내 직계후손은 왜 그걸 받아들여야하죠?
만약 후손의 삶의 질을 생각하는 선한 의도라도 하나씩 손대기 시작해서 성별부터 피부, 키, 외모까지 이런식으로 번지면 우생학이랑 무엇이 다르지요?
좋은 특성의 애매함에 호소하여 이런 문제를 피하려는 사람들조차도 실천적으론 사회의 전형적인 기준을 충족하길 욕구합니다.
쫙 찢어진 눈, 들창코를 가지길 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이 우선이란 생각이 주류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미래세대를 연금수급용으로, 노동력으로 생각하는게 전혀 비윤리적이지 않은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란 말이 요즘들어 참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과학의 발달은 우리가 무지했어서 책임지지 않았어도 될 것들에 자꾸만 책임을 묻습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삶이 좋아질거란 낙관은 이제 일자리를 뺏겨 잉여인구가 될거란 우려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합니다.
종교는 그 매력을 잃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심갖지 않으며 세계의 본성에 관하여 철학에 기대지 않습니다. 철학 또한 이제는 과학의 많은 성과들에 의존합니다.
인간존재의 신비로움은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부수었습니다.
이전엔 금기였던 것들에 하나둘씩 손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인간성을 보전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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