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두려운 사람들
작성자 라디아
책으로 읽는 사회개념
자유가 두려운 사람들
■참고도서 :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구토(장 폴 사르트르), 모순(양귀자)
👩🏫 : 여러분은 지금 진짜 자유로운가요?
🐣 : 에이 선생님! 지금이 일제강점기나 독재 정부 시대도 아닌데 그런걸 물으시다니요. 당연히 자유롭죠!
여러분도 같은 생각인가요?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생각해보면 주로 왕이나 독재정부로부터 벗어나려는 혁명, 민주운동에서부터 자유권이 시작되었죠?
우리 헌법에서도 제 12조 1항부터 자유에 관련된 구체적 조항이 시작됩니다. 역시 국가로부터 함부로 폭력이나 구금을 당하지 않는다는 선포를 담고 있습니다.
제 12조 ①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ㆍ구속ㆍ압수ㆍ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ㆍ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에도 분명히 못박아 두었으니 이제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그런데, 현대사회에는 오히려 자유가 두려운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자세히 살펴볼까요?
1. 자유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
여러분 혹시 지금 학교에서 고3 선배들을 보면 너무너무 부럽지 않나요? 수능만 끝나면 일상을 편안히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그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어리둥절하거나 나아가 조금 불안에 떠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선생님도 20살이 되어 자유를 맞이하자 정작 아 누가 나에게 '이렇게 해라!'고 지시해주는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에리히 프롬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유를 포기하고 본인의 선택으로 히틀러를 지지하며 그의 사상에 동조하는 상황에 의아함을 느끼고 이를 분석하기 위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썼어요.
고3들처럼 그 시대 사람들도 종교개혁과 자본주의, 민주주의라는 3콤보의 변화 앞에 전통사회의 속박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오히려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새로운 형태의 복종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죠.
개인은 경제적 및 정치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조직 속에서 활동적이며 독립적인 역할을 다함으로써 적극적인 자유를 획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일찍이 그에게 안전함과 소속감을 부여해 주기도 했던 속박들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는 '개인'이 되었으나 당황스럽고 불안한 개인이 되었을뿐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프롬) 54p, 104p
즉 오늘날에는 국가나 권력이라는 외부의 구속보다는 우리안의 불안이나 삶의 의미를 쫓아 헤매는 허무를 극복하는 것이 자유를 누리는 조건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수능이나 성공과 같은 사회적 목표를 위한 톱니바퀴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공허함을 느낀적은 없나요?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해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여러분을 오히려 자유로부터 도망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요?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도 히틀러와 같은 사람들이 그 틈을 노려 여러분에게 소속감과 성공을 약속하면서 자유를 야금야금 앗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 자유로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잘 활용하면서 타인에게 속박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자유에서 한 발 나아가 적극적인 자유를 추구해야합니다. 단순히 권력이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그러한 억압이 사라지면 또다시 불안에 시달리는 악순환을 낳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소유나 성취같은 '결과'로 자유를 획득하려는 목표를 내려놓고 삶의 '과정' 그자체를 만끽해야 합니다.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내며 사회에 참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 그 자체가 자유를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늘 행복하거나 기쁘거나 성공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인해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녹여내고 나의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르트르가 쓴 '구토'라는 책에서 주인공은 어느날 자신이 그저 주어진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임을 깨닫고 끊임없이 구토를 하게 됩니다. 구토를 함으로써 이제껏 자신의 살아왔던 일상이 '실재'라고 인식되고 만져지고 감각되는 것이죠. '모순'을 쓴 양귀자 작가도 인생이란 긍정과 부정을 모두 들여다보며 열심히 탐구해야하는 것이라고 일러주고 있어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유를 추구하고 있나요?
대학만 가면 끝이라는 소극적 자유인가요?
오늘의 내 삶도 자유롭게 누리려는 적극적 자유인가요?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걸어야해. 꼭 그래야만해”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모순(양귀자) 18,22, 작가의 말
3. 다수에 의해 억압받는 소수의 자유
자유가 두려운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혐오나 타인에 대한 위해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죠. 또 다수의 이름으로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침해되어 소수의 입을 막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아니라 서로를 경계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혐오를 조장하는 용어들,
우리의 눈과 귀를 흐리는 가짜 뉴스들,
여기에 다수의 목소리가 알고리즘으로 반영되어 인공지능조차 소수의 의견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에 대해 이미 오래전 문제를 제기한 학자가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다양한 의견이 오고가는 공정한 토론의 장이 마련될때에만 진정한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실천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들과 관련된 진리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화해시키고 결합시키는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충분히 큰 포용력을 지니고서 모든 것들을 다 고려하여 공정하고 정확하게 그러한 조정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 진영이 서로를 반대하는 기치를 높이 세우고서 그 기치 아래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는 거칠고 험악한 과정을 거쳐서 그런 조정 작업이 완성된다. 방금 위에서 열거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두 의견 중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나은 주장이어서, 단지 용납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장려되고 지지되어야 한다고 다수가 생각하더라도, 또 다른 때와 장소에서 그 의견은 얼마든지 소수의 생각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둘 중의 어느 의견이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서 인간의 이해관계와 복리에서 소홀히 되고 결핍된 부분이 생기게 되면, 그 부분을 대변하는 그 의견이 한동안 지배적인 의견으로 출현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생각할거리🌟]
-오늘 내가 내리는 결정은 진짜 자유로운가요? 사회적 가치나 다수의 의견에 따라가는것은 아닌가요?
-자유의 이름으로 타인을 혐오하거나 배제하는것은 용인될 수 있을까요?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지지하고 인정해주는 공동체를 만들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