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작은 성공을 맛보다
작성자 바신작
음악으로 세운 나
3. 작은 성공을 맛보다

"친구를 찾아가 도와달라했고, 친구의 친구까지 함께 연주하게 되었다"
10년만에 연습하는 바이올린은 너무 좋았지만 실력은 형편없었다. 예전에 연습하던 교본을 찾아 하나씩 다시 익혀 나갔다. 정확하지 않은 음정은 지판에 스티커를 붙여가며 귀로 다시 익혀야만 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사람도 매일 음정(스케일) 연습을 한다는데, 난 10년째 하지 않았으니 모든 곡의 음정이 정확하지 않았다.
다운 보잉을 할 때, 활떨림이 심했다. 물론 활의 나무나 활 털의 탄성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문제는 내 팔이었다. 다운 보잉 할 때, 속도, 힘, 손목 사용등의 발란스가 무너졌다. 팔근육들이 보잉을 기억해내길 바랄 뿐이었다.
레슨을 받고 싶었으나, 그 당시 남편의 사업이 코로나로 인해 어려웠던 때라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21년 12월 친구를 찾아갔다.
나의 소개로 LG 필하모닉오케스트라에서 첼로 연주자로 활동하는 나의 멋진 친구이자 동생 미쉘. 미쉘은 클래식 매니아로서 공연보기, 음반듣기, 연주하기 세 분야를 게을리 하지 않는 찐 매니아이다. 그런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혼자 연습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함께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드디어 처음 같이 연습하기로 한 날, 나는 미쉘의 피아노 잘 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주고받은 문자의 오해로 미쉘없이 아침 일찍 나를 만나게 된 언니는 많이 놀랐었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언니를 리애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애나 였다)
미쉘이 도착하기 전, 나와 언니는 가볍게 아침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용기가 났었던 것인지 오늘 이곳에 오기까지 내게 있었던 배경과 힘들었던 점에 대해 리애나 언니에게 쏟아내고 있었고 언니는 처음 만난 내가 뱉어낸 수많은 이야기를 소화하고 있었다.
몇 해가 지난 후, 그날 우리의 오해를 만들었던 문자, 어색했지만 나를 알 수 있었다는 둘만의 시간에 대해 웃으며 기억을 걷는다.
첫 연습 날, 리애나의 손은 건반위를 날아다녔고 미쉘의 첼로는 묵묵히 나를 믿어 주고 있었다. 트리오의 바이올린, 즉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았다.

체르니 트리오
우리는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했다. 피아노를 가진 리애나가 거주하던 아파트 이름이 체르니여서 우리는 자연스레 체르니 트리오가 되었다.
체르니 트리오의 첫 번째 과제곡은 사티의 Je te veux였다. (결혼식 축주 단골 연주곡)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연습했다. 첫 연습은 우왕좌왕 끝나버렸다. 부족했던 실력은 들통났고, 혼자만의 연습으로는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친구 미쉘에게 손 내밀고, 리애나 언니를 만난 것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할 마음을 먹고 용기내여 문을 두드린 나, 자신을 칭찬했다.

이렇게 시작한 체르니 트리오는 지금까지 3년 째 이어오고 있으면 LG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삼삼오오 모여 하는 향상 연주회에서 2023년 데뷔 무데를 가 지기도 했었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1악장) 아티클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년 향상 연주회에 연주할 곡 드보르작 현을 위한 세레나데 1악장 연주연습을 위해 바이올린 멤버를 구하고 있다.
트리오는 악기마다 다른 음색을 맞춰가며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그 과정에 매력이 있다.
물론 파트 소리를 책임지는 1인으로서 그 책임감뿐만 아니라 쉽게 들통날 수 있는 실력을 갈고 닦는 동기로서도 충분히 작용한다.
체르니 트리오를 통해 자신감과 해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생겼다. 그런데 나는 더 큰 도전을 원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