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너지는 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답을 찾았다.
작성자 바신작
음악으로 세운 나
2. 무너지는 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답을 찾았다.

“오래된 나의 친구 바이올린을 다시 잡다.”
결론적으로 힘든 상황이거나, 할 일이 없어 심심하거나, 자존감을 높이고 싶을 때마다 나는 바이올린을 찾는 것 같다.
그래서 코로나 시기에도 본능적으로 바이올린에 눈이 갔고, 오래된 케이스를 열어 튜닝을 시작했다. 10년만에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처음보는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은 신기해했고, 이것저것 연주해달라며 요청했다. 악보도 없는 동요들을 연주하며 아이들과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힘들거나 심심 할 때, 마음이 지칠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바이올린 이었다. 그러나 반전은 그런 바이올린을 나는 너무나도 자주 쉽게 버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TV에서 나오는 바이올린을 보고 배우고 싶어 부모님께 수없이 사달라고 졸랐었다. 피아노는 흔해서 싫었고 바이올린이 특이해 배우고 싶었지만 1980년대 고향 제천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1992년
초등학교 6년 동안 저축해 모은 돈 20만원으로 풀사이즈 바이올린을 사서 독학을 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동네에 바이올린 학원이 생겨 엄마를 졸라 2달 정도 레슨을 받았다. 활잡는 법, 보잉, 음정 연습 등 기본적인 것을 배워 바이올린 연주하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곧 나는 학업에 집중해야 했기에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을 이어갈 수 없었다. (첫번째 버림)
1998년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내가 다니던 대학에는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위계와 질서가 뚜렸했던 오케스트라 활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신입생이었던 나는 오케스트라를 버리고 ‘연애’와 ‘놀기’를 선택했다. 자연스레 악기와 멀어지게 되었다. (두번째 버림)
2000년
2년의 연애를 마친 후,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다시 악기를 찾아 들었다. 3학년이지만 1학년 신입생들과 같은 기수로 활동할 수 있다면 오케스트라에 입단해도 좋다는 선배의 말에 신이 나, 바로 용돈을 모아 새 바이올린을 구(약 45만원)입하고 연습에 매진했다. 2002년까지 세번의 정기연주회를 가진 후, 대학을 졸업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하이든 교향곡 94번 “놀람”, 베토벤 서곡 에그몬트, 엘가 위풍당당 등 다수의 곡 연주)

사회에 진출 한 이후, 나는 또 바이올린을 놓았다. 월급이 주는 단맛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 후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족으로 살던 시기에는 이런 저런 일들로 바빠 바이올린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었다.(세번째 버림)
2010년
한 번의 이직과 LG전자 3년차, 결혼 3년차에 접어들자 나의 생활이 어느정도 안정되었다. 이 시기 나는 여러 것에 권태로움을 느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회사 게시판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LG필하모닉오케스트라 창단! 단원 모집!
남편의 동의를 얻고 주말 연습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다시 연주하니 행복했다. 클래식 음악 이야기로 밤을 샐 수 있는 열정적인 동료들을 만나게 된 것 역시 나에게 큰 행복감을 주었다. 바이올린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 일상에서 활력소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LG 필하모닉오케스라의 첫번 째 정기연주회곡은 베토벤 교향곡5번 운명이었다. 다음 연주회곡인 베토벤 교향곡 6번을 연습하던 중,나는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네번째로 바이올린을 버리게 되었다.
2021년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운명처럼 다시 바이올린을 잡은 것이 코로나가 한창이던 해, 5월 이었다.

바이올린을 좋아했지만 내 인생의 1순위가 아니었기에 수많은 결정을 내릴때마다 나는 바이올린을 쉽게 내려 놓았다.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바이올린을 잡으면 나는 조금씩 일상의 활력과 자존감을 되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곡 하나 정해 연습 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이올린이었다.
중요하지 않다 생각해 늘 버려지는 존재지만 나에게 늘 힘이되는 바이올린을 나는 매일 하기로 결심했다. 퇴근 후,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정도. 주말에는 더 길게 연습했다. 그렇게 코로나 시기를 조금씩 버텨낼 힘을 나는 얻고 있었다.
독박육아를 하거나, 남편의 차가운 태도 혹은 회사에서 겪는 불합리함도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도 아이들을 향한 짜증도 정말 조금씩 줄어들었다.
두번째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