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루프 17년, 말아톤에서 우영우까지.
작성자 새벽노래
시선에도 색이 있어요
타임루프 17년, 말아톤에서 우영우까지.

나도 타임루프!
최근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만큼 신나게 본 영화가 없다. 호평을 받은 많은 요소 중에서 나는 그저 타임루프 자체만으로 신이 났다. 어느 시대에, 어느 장소에, 어떤 모습으로 떨어져버릴지 모른 채 날아가는(?) 것이 왜 그렇게 재미가 있던지.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레임이나 동경과는 또 다른 미지의 무언가이면서 곧 몇 초후면 선명해질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기대감이랄까. 에에올이 좋았던 것은 그 어디에 떨어지든 사람들은 떨어진 그 순간 불평과 좌절도 없이 현실을 헤쳐 나간다는 것이었다. 마치 “인생은 원래 이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듯이.
추억의 영화
개봉 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많아져버린 옛날 영화 [말아톤]이 있다. 2005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그 이후 17년이란 시간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오직 주연인 조승우의 얼굴뿐인 듯하다.(아니, 좀 더 멋있어졌다.) 배형진이라는 발달장애인을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데. 당시에도 지금도 발달장애에 대해 상당히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배우 조승우의 연기와 영화 속 에피소드(얼룩말 무늬 가방 등), 어머니 역을 맡은 김미숙 배우의 장애인의 엄마로서 살아간다는 것 등 이 영화는 자폐성 장애인의 일상과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장애인과 어벤져스
이토록 좋은 영화임에도 영화가 흥행하고 마주한 현실은 꽤나 예상 밖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 ‘초원“은 달리기를 좋아해서 마라톤을 시작하고 실제 인물 배형진처럼 42.195km를 2시간 57분 7초에 완주한다. 자폐성 장애인의 ‘성공’을 다룬 멋진 영화였다. 문제는 2005년 이전에 발달장애 특히,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이렇다 할(흥행이 잘 된) 영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 [말아톤]의 흥행 이후 복지관에서 만나는 자원봉사자, 후원자들은 묻기 시작했다. “이 자폐성 장애인은 무엇을 잘하나요?”, “ 어떤 능력이 있나요?”, “(얼룩말 무늬 같은) 어떤 것에 관심을 보이나요?”
한번 생각해보자.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능력이 있나요?”라고 물어 본 적이 있는지. 이건 마치 어벤져스를 만난 대화같지 않은가.
그런데 또 하나의 예상못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건 바로 모든 자폐성 장애인은 어느 특출난 능력으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오해였다. 세상에 “성공”이라니. “성공”은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똑같이 어려운 일인데.
"안녕? 초원...아니 영우야"
[이상한 변호가 우영우]는 2022년의 드라마다. 이 드라마 역시 자폐성 장애인을 잘 표현하였고, 주변 인물의 긍정적인 면과 스펙트럼은 [말아톤]보다 훨씬 좋아지고 넓어졌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인 것이 좋았다. 장애인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꼭 어둡지 않다고 되니까.
그럼에도 우영우를 볼 때마다 타임루프가 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사람은 다 달라요. 장애인도 그렇고요
이 타임루프는 [에에올]과는 다르게 재미있지 않았다. 어느 시대에, 어느 장소에, 어떤 모습으로 떨어져버릴지 몰라야 재미있던 타임루프인데, 어디로 떨어지든지, 시대가 바뀌어도 모습은 왜 그리 똑같은지, 17년 시간이 무색하게, 타임루프하느라 한 고생이 헛되게, 달라진게 별로 없었다.
궁금하다. 사람들은 2024년 지금도 자폐성 장애인은 하나쯤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걸 잘 활용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성공한 마라토너 ‘초원’과 변호사 ‘영우‘말고 다른 자폐성 장애인을 떠올린 적이 있는지.
다양한 것이 아름다운 시대에 발달장애인은 다양성은 어디에 있을까. ‘초원’과 ‘영우’는 그저 다른 사람인데, 왜 이렇게 같은 사람 같을까. 나를 처음 본 누군가가 “잘하는게 뭐에요?”라고 물어오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