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해피엔딩을 위하여.

또다른 해피엔딩을 위하여.

작성자 새벽노래

시선에도 색이 있어요

또다른 해피엔딩을 위하여.

새벽노래
새벽노래
@user_hg9qfn9bz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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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특수학교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강서구가 떠오릅니다. 2017년에 강서구에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되었었고, 주민들의 반대로 상당히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후 "서진학교"라는 이름으로 2020년 3월에 개교하였고, 2021년에서는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1979년 이 상이 제정된 이래 대학교가 아닌 학교 건물이 대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하죠. 장애를 위한 디자인, 설계는 결국 모두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증명해 준 듯 합니다. 제가 아는 해피엔딩 중에서 가장 극적이었어요.

잊혀지지 않는 사진 한 장

이 학교가 지어지기까지 과정이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장애인의 엄마들이 지역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그 사진을 다시 보고싶지는 않기에 여기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그 한 장의 사진에 분노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학교설립과 반대에 대해 연일 뉴스가 나오고,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낙연 총리가 “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를 필요한 만큼 지을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도와달라”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저는 그 기간 내내 화나고,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말고.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에 강서구에 살고 있다면? 만약에 내가 강서구에 내 집이 있다면? 그리고 그 집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아껴가며 살았고, 그렇게 모은 돈과 비싼 이자를 치러가며 대출을 받아서 겨우 내 집 하나를 장만했다면? 그런데 그 옆에 특수학교가 들어온다고 한다면? 그래서 (대출금을 갚으려면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내 집값이 떨어진다면? 그것으로 인해 어렵게 어렵게 장만한 나의 전재산이, 우리 가족의 전재산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나는 과연 찬성할 수 있을까? 내 가족이 나를 향해 저 학교가 들어오면 우리 집 값이 떨어질텐데 보고만 있을거냐고 묻는 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차마 답을 못했습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양심과 가치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치 중에 어느 것이 더 소중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사회복지사로서' 부끄럽게도 저는 찬성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반대를 하는 것도 부끄러워서 조용히 숨어지낼 것도 같습니다.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부끄러운 이 이상한 상황을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무릎을 꿇은 장애 엄마들 앞에 선 지역 주민들은 장애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가족이 소중하고, 집이 전재산일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학부 시절, 교수님들이 여러번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일본하고는 30년, 북유럽하고는 50년 정도 격차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무슨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저렇게 부정적인 말을 하나, 그리고 30년, 50년의 근거는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강서구 특수학교]가 이슈이던 2017년이면 제가 사회복지 현장에 있은지 11년쯤 될 때였으니, 저는 10년도 더 지나서야 그 말을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교수님들은 사회복지 학문이나, 사회복지 영역에 대해서만 얘기를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사회복지가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사회, 문화, 정치, 경제가 같이 성장에야 사회복지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사회복지는 보다 넓은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것을.

집이 전재산이 되지 않는 경제사회, 내 집 옆에 특수 학교가 들어와도 집 값이 떨어지지 않는 지역사회. 특수학교가 혐오 시설이 아닌 사회문화. 이 모든 것이 같이 성장해야 특수 학교 설립을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성향, 인격, 상황이 아닌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이 변화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국무총리의 "특수학교를 필요한 만큼 지을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도와달라”는 말이 고맙기는 했지만, 사실은 누가 무엇을 도와줘서 되는 일은 아닌 것이지요.

해피엔딩을 꿈꿔주세요.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 집 값이 떨어진다는 거의 확실한 상황이 전제된다면,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아무 선택도 못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뒤에 숨어서 반대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움이 가득한 자괴감에 괴로워하겠죠. 이렇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언젠가, 특수 학교가 세워지는 일이 마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같이 꿈꿔주세요. 같이 생각해주세요. [강서구 특수학교]가 해피엔딩인 것처럼,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