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도움'이 되려면.
작성자 새벽노래
시선에도 색이 있어요
'도움'이 '도움'이 되려면.
저의 2022년은 "추앙"의 해였어요. 16부작인 드라마를 32부, 48부가 넘어가도록 보면서, 힐링에 푹 잠겼던 해로 기억하고 있어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뽑은 저만의 명장면들은, 지금처럼 습하고 덥고 힘든 날들에 순간순간 이마에 차가운 수건을 놓은 듯 시원한 쉼을 누리게 하고 있어요. 오늘은 그 (개인적)명장면 중에서 사회복지사로서 시원했던 명장면을 나누려고 해요.
구씨 - "그냥 놔 두라고."
6화에서 구씨(손석구)의 집에서 방 하나를 가득채운 빈소주병을 발견한 창희(이민기)와 두환(한상조)은 구씨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구씨가 집을 비운 사이 소주병을 치우기 시작해요. 그런데 이 소주병이 너무 많아서 포대에 가득담는 일도 너무 힘들고, 포대에 담은 소주병의 무게는 어마어마해서 둘이서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게다가 날씨는 한여름 폭염이었죠. 그렇지만 창희와 두환은 구씨를 위하는 일이었기에 땀을 흘리고, 숨을 턱에 걸면서도 소주병을 치워나가죠. 그러던 중에 집으로 돌아와서 이 광경을 본 구씨의 반응은 해피엔딩이 아니었어요. "이 더운 날에 두 사람이 날 위해 치워주고 있구나"가 아니었죠. 오히려 정반대의, 창희와 두환을 당황하게 또 화나게 만드는 말을 해요. "그냥 놔 두라고." 그것도 화가 잔뜩 난 표정과, 당장 나가라는 눈빛으로.
미정 - "도와달라고 했어?"
나중에 창희, 두환, 미정은 저녁을 같이 먹다가 창희가 이 얘기를 미정(김지원)에게 해요. 아주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고. 본인을 위해서 엄청 애쓰고 있었는데, 욕만 얻어먹었다고. 그래서 쫓겨 나왔다고. 창희는 그렇게 아직도 화가 나고 어이가 없는 기분을 미정에게 말해요. 그러자 창희의 생각과 달리 미정에게서 돌아온 말은 구씨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죠. "도와달라고 했어?" 결국, 창희는 미정에게 (구씨에게 내지 못했던)화를 내고, 미정은 자리를 피해버려요. 그렇게 그 일이 지나가죠.
창희가 정말 잘못을 한 걸까?
그 장면의 미정의 "도와달라고 했어?"라는 말 이전과 이후에 대화 내용은 지금 제가 하려는 이야기와 좀 다른 느낌이라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 미정의 그 대사가 저의 명장면이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장애인을 도와주고 싶어하거든요.
'도움'에 대하여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장애인을 배려하고 도와주라면서요. 그게 좋은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면서요. 그런데, 저게 왜 명장면이에요?라는 의문이 드신다면, 맞습니다. 배려와 도움은 필요하고 또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생각의 시작은 어디일까요? 장애인을 돕는다는 생각은 무엇을 전제로 하나요?
학부에서 봉사 활동을 나가면 선배들이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휠체어를 함부로 밀어주지 마라. 장애인의 보장구에 손대지 마라. 갑작스럽게 시각장애인의 팔을 잡거나, 허락없이 흰 지팡이에 손대지 마라.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물어봐라. 도움보다 우선 도와줘도 되는지 먼저 물어봐야 한다. 네가 함부로 도와줄 지 말지 판단하지 마라.
삶의 의지
여러분은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 본 적이 있나요? 혹은 지인에게 도움을 부탁할 일이 있을 때 망설여지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도움이란 내가 할 때는 좋은 일이고 뿌듯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내가 도움을 받는 혹은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면 '도움'은 아주 복잡한 의미를 가지게 되요. 선배들의 조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리에 장애가 있는 장애인이 길에서 넘어진 것을 봤다면, 달려가서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달려가서(여기까진 같네요) 물어보라는 것이었어요.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그리고 의외로 많은 장애인이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니요, 저 혼자 일어날 수 있어요."라고 답하는 경험을 했어요.
우린 모두 '서로'
세상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있어도, '도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일상에게 주인이고 싶어하기 때문이에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그 마음이 달라지진 않아요. 오히려 더 강해져요. '나는 장애인이지만,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거야'라는 강한 의지로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 의지를 스킵할 수는 없어요. 우린 장애인을 '도움'을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람으로, 비장애인을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세상에 위로를 꼭 받아야 하는 사람과 꼭 줘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는 서로 때로는 도움을 주고, 때로는 도움을 받으며 그렇게 서로 도우며 살아가니까요.
Tip
발달장애인이 의사 표현에 제약이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면, 상대방의 장애가 아닌 실제 나이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세요. 물론 이 방법이 모든 것을 해결 해 줄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생각의 전환을 일으킬 수 있어요. 관계란, 참... 쉽지는 않죠?^^ 그래도 노력하는 여러분을 응원할께요. 관계의 따스함을 생각하며, 저는 오늘 [나의 해방 일지]를 다시 정주행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