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환학생 시절이 나에게 남기고 간 것들
작성자 유쟈링
네덜란드 표류기
1. 교환학생 시절이 나에게 남기고 간 것들
"어서 오세요"
인천공항에 써있는 저 인사말이 낯설게 느껴질 줄이야.
네덜란드 교환학생을 마치고 6개월만에 돌아온 한국 땅은 마치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 같았다. 반갑고 정다우면서도 약간은 서먹한. 그간 온갖 나라의 언어를 본 탓에, 한국어로 써진 "어서오세요" 라는 표지판이 생경할 지경이다.
공항 게이트를 나왔다. 무거운 캐리어를 양 손에 가득 쥐고 마중 나온다고 했던 엄마 아빠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엄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렇게 장기간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있었던 것이 처음인지라 걱정을 한껏 하셨던 부모님. 비로소 품에 돌아온 자식을 보는 엄마 아빠의 눈에는 안도의 눈빛이 서려 있었다.
공항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의 상봉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한 숨 푹 자며 14시간 비행의 피로를 씻어내었다.
자고 일어나니 밥 먹을 시간이다. 엄마가 나를 위해 이것저것 많은 음식을 해 놓았다. 한식 러버인 내가 타지에서 먹고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불고기며 김치찌개며 파전이며... 아주 상다리가 휘어지게 밥을 차려 주셨다.
엄마가 해준 뜨끈한 김치찌개 국물은 다시 한국의 감각을 일깨웠다. 비로소 나는 한국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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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귀국한 지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난 한국의 여느 평범한 대학생의 삶으로 완벽히 되돌아왔다. 끊임없는 과제, 과제가 끝난 이후엔 시험, 시험이 끝난 후엔 과제... 그렇게 과제-시험의 사이클이 두 차례 돌아가면 한 학기가 끝난다. 거기에 알바와 틈틈히 영어공부. 그리고 방학 땐 인턴을 하고, 영어 자격증을 딸 것이다. 내년부터는 취업 준비를 하겠지...
그러다 문득 교환학생 시절을 떠올려 본다. 겨우 몇 개월 되었다고 벌써 기억이 아득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이 모두 한낮에 꾼 꿈 같았다. 현실성이 없었다. 진짜 내가 겪었는지 볼을 꼬집고 볼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라우브와 찰리푸스 노래를 틀고 자전거로 푸릇한 녹음을 가로질러 달리고,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하며 물멍을 하고,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며, 옆 사람들과 시시껄렁한 스몰토크를 하던 그 모든 여유롭고 자유로운 순간들.
내가 어떻게 그렇게 아무 불안 없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는지, 나를 자유롭게 있는 그대로 세상에 노출 시켰는지, 누구에게나 거리낌 없이 영어로 스몰토크를 할 수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참 신기하기도 했다.
그 시절은 나에게 눈이 시리도록 빛나는 추억을 남겼다. 하지만 추억보다 좀 더 큰 변화는 내 사고의 확장이었다.
' 아,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
다른 문화권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과 말로 듣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다시 한국에서 내 삶의 익숙한 선형적 궤도 안으로 돌아왔지만, 유럽에서 그려나갔던 나의 새로운, 비선형적 궤도는 그 궤적을 남겼다. 나 혼자 만든 것은 아니고 주변 여러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며 생겨난 것들이다.
그 궤적은 내가 점점 좁은 시야로 내 삶의 범위를 한정하고, 내가 고수했던 익숙한 방식(강박적이고 대책 없는 성실함, 모두가 하는 '갓생'과 같은 것들에 나 또한 합류해야 할 것 같다는 불안감) 의 실패가 나를 옥죄어 올 때, 내게 다른 관점을 보여주며 '숨 쉴 구멍'을 선사했다.
유럽에서의 궤적은 단지 추억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익숙함에 갇힐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나침반처럼 내 삶에 자리 잡았다.
결국, 네가 살고자 하는 삶은 어떤 삶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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