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표면 아래의 불편한 진실

<존 오브 인터레스트>|표면 아래의 불편한 진실

작성자 미아

🎬영화/시리즈 리뷰

<존 오브 인터레스트>|표면 아래의 불편한 진실

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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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언더 더 스킨’(2014) 이후로 10년 만에 발표한 장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기존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와는 구조적으로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보여주며,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의 모습 역시도 성찰하게 한다.

📌보이는 것 이상의 진실

영화가 시작된 이후 관객들은 3분가량 검은 스크린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다. 어딘가 불안한 기분이 드는 음악이 흘러나오다 이내 조금 더 밝은 분위기의 음악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제야 회스 가족이 강가에서 피크닉을 하는 목가적인 장면이 스크린에 나타난다. 이는 영화가 관객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답안지이다. ‘스크린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들려오는 소리에도 집중할 것.’

영화는 미디어에서 수없이 재생산된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를 재생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습을 이미지로 보여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관객은 수용소 건물의 지붕과 굴뚝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 수용자들을 싣고 오는 기차의 하얀 증기, 강물과 정원에 흩뿌려지는 하얀 재와 같은 간접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벽 너머의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시각적으로 접한다. 하지만 영화의 음향은 다르다. 회스 가족의 짐짓 평온해 보이는 일상이 보여지는 동안에도 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총소리, 고통받는 이들이 내는 비명과 신음소리, 쉬지 않고 가동되는 소각로의 웅웅대는 소리-는 영화의 구석구석을 잠식한다.

이미 유대인 수용소의 잔혹한 진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 ‘소리의 지옥도’는 머릿속에 연출된 어떤 이미지보다도 더 끔찍한 이미지를 그려내게 한다. 그렇기에 회스 가족의 화목한 모습과, 아름다운 정원을 볼 때 극명하고, 불쾌한 대비감을 선사한다.

정원에 핀 다양한 꽃의 아름다운 모습과, 수용소 내부의 소리가 오버랩 되는 장면. 폭력적인 이미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지만 마치 끔찍한 장면을 본 듯한 기분을 남긴다.

영화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보여주지 않은 채 들려주기만’ 하기도 하고, ‘쉽게 보여주지 않기’도 하는데, 영화의 중간마다 나오는 폴란드 소녀의 씬이 그 예다.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이 장면들에서 소녀는 수용수들이 노역하는 장소에 과일을 몰래 놔두곤 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식별하기 어려운 적외선 카메라 이미지의 특징으로 인해 처음에는 이 장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영화는 고의적으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선행’을 베푸는 소녀의 이미지를  읽기 어렵게 만든다. 호스 가족이 보여지는 다른 장면들이 고해상도의 이미지로 선명하게 보여지는 것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선택이다. 그뿐 아니라 소녀가 남기고 간 사과로 인해 시작된 싸움이 수감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대사를 영화 후반부에 위치시켜 (그것도 수감자들의 화장한 재가 회스가의 정원에 퇴비로 뿌려지고 있는 그 순간에) 수용소 내부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또 다른 메세지는 회스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유, 그리고 그 방식이 전하는 의도이다.영화의 대부분은 회스 중령과 그의 가족이 수용소에 인접한 집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할애된다. 글레이저 감독은 인터뷰에서 회스 가족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영화적이며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최대한 지양했다고 밝혔다. 그랬기에 영화의 대부분은 마치 다큐멘터리, 그것도 마치 리얼리티 쇼를 연상시키는 샷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공적인 조명은 없다시피 하고, 배우들의 얼굴은 줄곧 집 안의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이거나, 창밖의 풍경은 노출 과다로 하얗게 보이곤 한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에서는 절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마치 관객은 다큐멘터리를 보듯 회스 가족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들이 '보통의 인간'으로서의 모습 역시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의 논리적 귀결은 나치들을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군상으로 생각했을 때보다 더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만약 그들이 관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끔찍한 범죄에 가담 했다면, 우리 모두도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기분 나쁜 감각은 역사적인 비극을 간접적으로 다시 체험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은 항상 존재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