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레인디어>| 스토킹과 자기혐오의 불편한 만남

<베이비 레인디어>| 스토킹과 자기혐오의 불편한 만남

작성자 미아

🎬영화/시리즈 리뷰

<베이비 레인디어>| 스토킹과 자기혐오의 불편한 만남

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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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의 문이 열리고, 한 뚱뚱한 중년의 여자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들어와 바텐더 앞에 앉는다.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차를 한잔 건네는 바텐더. 이 작은 호의를 기점으로 마사와 도니의 쫓고 쫓기는 관계가 시작된다.

감독 리처드 개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시리즈는 일견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일반적인 서사를 따를 것처럼 보인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다분한 마사라는 여자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불운한 주인공 도니를 스토킹할 것이며 우리는 ‘왜’ 마사가 그런 사람이 됐는지 알게 된 뒤 주인공이 스토킹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마사와 도니의 관계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평면적인 가해자-피해자의 관계로 단순히 치부할 수 없다는 게 밝혀진다.

“ 나는 인간의 다면성을 보여주려고 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 어떤 사람도 완벽한 성인 또는 악마가 아니다.”

-리차드 개드의 넷플릭스 인터뷰 중

📌“지금 스토킹 당하고 있어요”

마사는 도니와 처음 만나게 된 뒤, 거의 매일 도니가 일하는 바에 찾아온다. 그뿐 아니라 하루에도 몇십 개가 넘어가는 이메일(처참한 맞춤법으로 쓰여진)을 보고, 그의 스탠드업 코미디 경연 대회에 찾아가며, 그가 사는 집 앞의 버스 정류장에 하염없이 앉아 있기도 한다.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마사의 도니를 향한 집착은 점점 심해져 도니의 가족을 괴롭히는 지경까지 이르는데... 하지만 도니의 행동 역시 관객의 입장에서 조금 의아한 지점이 있다. 그는 때때로 마사의 제안을 완벽히 거절하지 못하며, 마사가 처벌을 받은 뒤에 그녀가 보낸 수백 개의 보이스메일을 일일이 들은 뒤 감정별로 분류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다. 이 시리즈가 결국 집중하는 것은 도니의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그 이유이다.

📌도니의 뿌리 깊은 자기혐오

도니는 극심한 자기혐오를 겪고 있다. 과거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자리를 잡으려 노력하던 시절, 일을 제안하며 다가온 대리언이라는 작가에게 그루밍과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주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에도 그는 대리언을 바로 떠나지 못하고 한동안 곁에 머물며 고통받기까지 한다. 게다가 현재에도 일과 사랑에서 연패를 맛보고 있다는 사실 역시 도니의 자기혐오에 불을 지피는 또 다른 요소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니의 자기혐오는 그가 마사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마사의 집착적인 행동 중에는 도니 자신이 받고 싶었던 찬사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어쩌면 극의 대사처럼 ‘마사가 정말로 도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봐 줄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베이비 레인디어>에서 나타난 피해자성에 대한 고찰

정말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은 시리즈지만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바로 엔딩이다. 마사가 처벌을 받은 후 다시 리즈의(전 여자 친구의 어머니) 집에 돌아간 도니는, 예전에 쓴 시나리오와 그 겉표지에 적힌 대리언의 코멘트를 본다. 그리고 도니는 이유 없이 대리언을 찾아간다. 그를 방문한 뒤 감정적 혼란을 느끼는 도니는 안정감을 찾기 위해 길에서 마사가 남긴 음성 메세지(’칭찬‘카테고리의)를 듣기 시작한다. 잠시 후, 한 바에 앉아 있는 도니, 그의 귓가에 마사가 자신을 왜 ‘아기 순록’으로 불렀는지 밝히는 메세지가 들려온다.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인 그의 앞으로 주문한 맥주가 나오고, 그는 그제서야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이 모습을 본 바텐더는 마치 3년 전 도니가 겪은 모습을 재연하기라도 하는 듯 ’계산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엔딩에서 여실히 드러난 도니의 감정적 트라우마와 결핍에서 나타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정확히 <베이비 레인디어>가 피해자성을 다루는 결이 어떻게 달랐는지 보여준다. 마사가 스토킹 범죄의 가해자고, 도니가 피해자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도니의 자기혐오가 마치 자해와도 같은 파괴적인 행동을 하도록 이끈다는 것 역시도 부정할 수 없다. 이 시리즈는 이러한 사실을 짚어내며 어떤 심리적 기전이 이런 유해한 관계(toxic relationship)에 더 쉽게, 그리고 깊게 빠지게 만드는지 이해해야 이러한 피해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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