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개혁
작성자 toriteller
종이책을 ebook으로 만들기
종이책 개혁

단순한 일을 할 때의 명분
마라토너들은 42.195km를 달리는 도중 '내가 왜 이런 일을 하지? 뭐 때문에?'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멈추는 것은 상상도 못한 채 계속해서 앞으로 발을 내딛고, 감각이 없어진 발바닥으로 중력이 실린 몸무게를 견뎌야 하고, 손은 앞뒤로 흔들어야겠지. 숨은 가빠 오르면서 주위는 희미해지지만 목표는 잊지 못할 것이다. 달리기는 커녕 집에서 편의점이나 마트에 갈 때도 걷기보다 차를 타는 나같은 사람은 떠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만큼 본능이 거부하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몸이 내뿜는 고통의 신호를 애써 타이르면서 계속해서 달리는 마라토너가 된 냥 스스로에게 되 묻는 일을 지금 하는 중이다.
손목이 뻐근하고 시리게 반복적인 단순작업을 하고 있다. '단순 반복 작업'이라 부르면 가치 없어 보인다. 불편함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라면 대단한 사회적 기준에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일이 생각난다. 그럼에도, 쉽게 폄하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단순 반복 작업을 해 본 사람만 안다. 하지만, 작업을 끝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낮잡아 보는 일이기도 한다. 사회에서 흔히 낮춰 보는 일이 또 있다. 청소. 요즘이야 로봇청소기가 알아서 한다지만, 옛날에는 살림살이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잘해도 티가 나지 않고,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 밖에서 돈 벌어 온다는 명분으로 아버지들은 회사에서 당한 스트레스를 티 나지 않는 고생스러움을 기꺼이 감당하는 어머님들에게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올을 끄집어 내시비를 걸며 풀었다. 나이 들어 '돈 벌어 오는 막중한 일'을 끝내고 회사에서 쫓겨난 남성들이 집에서 구박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조그마한 티끌 하나 드러내며 시비를 걸고, 음식의 맛을 품평하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늙은 남자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버럭 소리 지르거나 화를 품은 채 입 다물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 없다.
새벽에 형광빛 안전 조끼에 의지해 거리를 청소하는 분들이 하는 일을 '새벽 길거리 청소'라 규정지으면 그냥 '청소일'이 된다. 남과의 비교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부 하지 않으면, 추운 날 새벽에 거리에서 청소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겁준다. 그 아이들에게 '청소'는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허드렛일이 되고, 경쟁에 뒤쳐진 사람들이 하는 하찮은 일로 마음에 새겨진다. 청소 되지 않은 거리나 주위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는 '쓰레기 대란'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 처럼 깨끗한 거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당연함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청소 노동자들의 새벽일은 아이들에게 겁주려 이야기하는 허드렛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기 싫은 억지 일이나, 허드렛 일이 아니라 주장하려면 적당한 포장이 필요하다. 흔하게 올려 치는 말로 '명분'이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일을, 아니 나를 낮잡아 보거나 무시하지 않으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 만들기란 포장에 능한 사람을 마케터라 부르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직업으로 기자가 있다. 누군가의 행동에 '명분이란 딱지'를 붙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있게 보이도록 전하는 일. 기자들이 하는 일은 높여 말하면 저널리즘이고 쉽게 말하면 남에게 딱지를 붙이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단순 반복 작업' 대신 '교정작업'이라 한 번 덧칠해 본다. 좀 약하다. '인류의 지적 유산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프로젝트'라 불러볼까 생각해봤다. 가치있어 뵈긴 하지만,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는 목적. '나는 월급 이상의 가치를 하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직장인 냄새만 난다.
책꽂이에 가득한 책
책이 가득한 책꽂이는 혼자 즐기는 허세다. 남에게 일부러 보여주거나 사진 찍어 보내지 않지만, 우연히 내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책이 가득한 책장을 보일 때 뿌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허세. 보물창고를 쓸적 열어 부를 자랑하는 것이 부자들의 허세라면, 책꽂이에 빼곡한 책을 슬쩍 구경시키는 일은 평범한 이들의 허세다. 돈 없으면서 어렸을 때 공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일수록 책을 많이 읽었다는 증거로 책꽂이의 책을 활용한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욕먹지 않을 자랑이며, 공부를 숭배하는 사회에서 고고한 존재임을 드러낼 수 있는 자격증이다. 머리속의 축적된 지식을 꺼내어 비교해 볼 수 없기에 쌓여 있는 책은 나의 지적 능력을 드러내는 물리적 증명서다. 게임 속 희귀 아이템을 모으듯 책을 사, 모셔뒀다.
이런 허세 때문에 책을 없애는 행동은 뇌를 잘라내는 것으로 믿는다. 같이 사는 가족들은 책의 분량이 나의 성품이나 지식에 비례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고고함은 커녕, 신경질적이고 옹졸한 사람이 먼지 나는 종이 뭉치들을 궁상맞게 끌어안고 사는 진상일 뿐이다. 다시 읽을 리 없어 보이는 책들을 버리려 해도 싫다고 버티는 사람과 말싸움 하는 것은 남의 문 앞에 차를 세워두고선 차를 건드려 흠집이라도 생기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윽박지르는 무례한 이와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읽지 않을 책은 좀 치우라는 압박에 잠시만 시간을 주면 해결하겠다는 약자의 얼굴도 했다가, 가만있지 않겠다며 소리 지르는 무뢰한도 되었다가 그저 필사적이 된다.
온라인에는 이미 한 사람의 뇌에 담을 수 없을 만큼의 정보가 넘치고 있다. 바꿀 수 없는 책과 달리 새로운 내용으로 업데이트도 된다. 지식이 필요하다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통신과 콘텐츠를 읽을 수 있는 디바이스 하나면 된다. 그냥 책을 버리기 싫어 떼를 쓸 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전, 구닥다리 라는, 이라는 주장하는 것이 최후의 논리적 보루다. 죽기 전에 다시 읽어볼 책이 몇 권이나 될까마는 낡은 인형을 버리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온갖 핑계를 대며 버틸 뿐이다.
그랬던 것 같다. 익숙한 것을 유지하려는 것. 아이가 오래된 이불, 낡은 장난감을 다시 쓰지 않더라도 남에게 주기 싫어했던 마음. 딱 거기까지인 듯하다. 이제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이 아니냐고 물으면 아이는 갑자기 먼지 쌓인 장난감을 마루에 쏟아내고는 얼마나 재밌게 가지고 노는지 증명하려 한다. 아이처럼 나도 그냥 싫었나 보다. 장난감이 없으면 추억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마음인지, 그저 눈에 보여야 내 것이라고 안심이 되는 DNA에 새겨진 본능인지 모르겠지만 주기 싫어하고 버리기 싫어한다.
구한말 지식인의 마음으로
옛날 철도를 놓는 기계가 발명되었을 때 기계보다 철도 노동자의 근육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기계와 경쟁해 승리했으나 장렬히 산화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산업혁명 시대 '양이 사람을 먹는다'는 주제의 같은 이야기를 수백 년이 지나 반복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계와 다툰 위의 이야기들이 진짜로 그 당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전설인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구름 속 전자기의 충돌 때문에 발생하는 천둥소리와 번개를 여전히 '신이 만들어 낸 신호' 라 쓰인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것처럼, 사람과 기계가 싸우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중요하지 않다. 기계에 밀리는 인간의 노동력을 신성시하고 지켜야 할 거룩한 것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 역시 기계와 인간의 다툼의 한 모퉁이라 말하더라도 속내는 내가 가진 것을 버리기 싫은 아이의 마음일지 모른다.
결국 현실과 타협했다. 적절한 명분도 찾았다. '나는 구한말의 지식인처럼 과거와 현대를 잇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명분에 따라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역사적 사명이 되었다. 역사 책 한 귀퉁이 한 줄이라도 남길 만큼의 가치는 아니더라도 그 한줄을 쓰기 위한 참고자료 한 귀퉁이엔 쓰이지 않을까. 이미 이 역사적인 일은 서버라는 물리적 공간에 몇 K바이트의 흔적을 남겼다. 수많은 세대가 피고 진 후에라도 광대한 서버에서 흔적을 발견한 지적생명체가 있다면 지구라는 행성의 호모사피엔스 중 하나의 개체가 숭고한 사명을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를 위해 지금 허리에 힘을 주고 고개를 꼿꼿이 세워본다.
시대적 사명을 다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종이책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넣어주는 일. 요즘의 언어로 바꾸면 아날로그 유물을 현대 디지털로 혁신하는 일. 수세기 세월로 빛 바랜 명화를 복원하듯 한 땀 한 땀 시린 눈을 비비고, 시큰한 손목을 주물러가며 만들어내는 일. 종이책을 e-book으로 바꾸는 작업은 이제야 부끄럽지 않은 이름을 얻게 되었다.
e-book 단말기를 사면서 부터
왜 사게 됐을까? 아이패드나 갤럭시 탭 같은 태블릿 PC도 아닌, e-book 전용 단말기를 덜컥 샀다. 늙을수록 쓸모가 떨어지는 사회법칙에 조금이나마 버티고 싶었던 것일지, 아니면 고루한 활자 읽기를 새삥한 취미 형태로 바꾸고 싶었는지, 아니면 회사 업무와 관련되어 있어 직장인 수명을 연장시키고 싶은 발악이었는지, 거친 세상에서 날 찾아오는 '택배'를 받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인터넷서점의 고위 간부가 자랑스레 흘린 말에 홀딱 넘어간 것일수도 있다. "이번에 나오는 제품은 그동안의 실패에서 배운 노하우가 집약된 제품으로 가격경쟁력도 충분합니다"
술을 마실 때도 업무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였지만 그와 술을 마시는 것이 '일'때문만은 아니다. 유명한 대학을 나왔고 집이 가깝고, 주로 그가 계산을 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가 쏟아내는 예상밖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시간이 흘러 빈병이 쌓인다. 거의 매번 계산을 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당신네 회사 제품을 샀다고!'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물건을 사던 안사던 그는 원래 하던대로 '추측하지 못할 대화'로 나를 끌어들인다.
정신 차려보니 아이가 태어나 식구가 늘듯 , e-book단말기가 들어와 있다. 책을 좋아하는 척 하면서도 책을 살 때 인색한 나는 e-book을 구매하기 싫었다. 속 좁은 인간이 그렇듯 어떻게든 비싸게 산 기기를 써먹고 싶었다. 공짜인 PDF 파일부터 넣어봤지만 'PDF 파일도 단말기에서 보인다' 말고는 없다. PDF 파일을 띄울 수는 있지만 읽기 어렵다. A4 절반만한 화면 크기에선 PDF 글자가 시력 측정표의 2.0 크기만큼 잘아진다. e-book을 사면 될 일이건만 몇 푼 아끼려 어떻게든 샛길을 찾고, 개구멍을 파듯 비루하게 공짜로 해결하고 싶었다. 사기도 머리가 좋아야 친다고 머리가 아둔한 사람이 돈을 쓰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은 몸으로 때우는 것 밖에 없다.
좁은 방에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중고로 책을 많이 팔았지만 그래도 버리기,실제론 팔지 못한, 아까워 묵혀둔 책들이 책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저것들을 없애면 내게 얼마의 경제적 효용이 있을까?'라는 계산도 끝내기 전에 아이의 책이 밀려 들어왔다. 내 추억을 밀어내는 대신 아이의 미래를 담보하는 책이 들어온다는데 어설픈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거부할 수는 없다. 잠시 지나가는 말로 "방이 좁은데..."라 했지만, 부엌의 생선구이 냄새 빼내듯 사라져 버렸다. 배가 불러 목구멍에까지 찬 사람에게 억지로 남은 음식을 먹이듯 좁은 책꽂이에 책을 욱여넣었지만 여전히 모자른다. 게워낸 음식물처럼 책꽂이 옆에 아이의 책이 몇 무더기 쌓여있다. 책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을 들인 전세금으로 환산하면 터무니 없이 비쌌다. 집 주인이 누릴 면적보다 더 넓은 공간을 24시간 하루 종일 점유하고 있다. 갑자기 불쾌했다. 종이에 인쇄된 활자 주제에 사람이 머리에 집어 넣지 않고 찾지 않으면 종이와 잉크 밖에 안 되는 것이 나보다 더 비싼 공간을 안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의 동지
그래 '개혁'이다! 오랜 직장생활의 버릇인지 급변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생김새로 태어나 것인지 혁명은 너무 과격했다. 개혁은 적절한 타협이다. '갑오개혁'에 버금가는 과감한 방법이다. 조선의 쓰러져가는 왕실을 부활시킬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본에게 나라를 쉽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역사적으로 많은 개혁들이 거대한 흐름에 반짝 '놀라움'을 줄지언정 세상을 뒤엎은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혁명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사람들은 곧잘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나도 선택했다.
종이책의 시대를 빠르게 정리하고, 오래 묵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방 안의 공간을 확보하면서 책에 담긴 얼을 도도히 이어낼 수 있는 방법인 개혁을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나보다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이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런 류의 글을 읽고 있지 않을 테니까...
피가 날만큼, 눈알이 빠질 만큼, 손 모가지가 뽑혀 나올 만큼의 고통의 시간의 겸험이 만들어 낸 이 글을 읽고 나면
e-book 단말기에 대해서
북스캔에 대해서
PDF와 epub이라는 파일 형식에 대해서
OCR과 레티나라는 것에 대해서
sigil이란 오픈소스에 대해서
도서 저작권과 유통 시장에 대해서
전혀 전문적이지 않고 뚜렷한 한계를 지닌 나름의 잡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개혁이란 그런 것이다.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다면 혁명이지 개혁이 아니다. 개혁은 분명한 한계를 지닌 일이다. 개혁은 시도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나의 이어지는 개혁실행안을 보고 따라한다면 당신만의 멋진 디지털 책을 갖게 된다. 그리고 넓어진 공간도 갖게 된다. 아주 작은, 치명적일지 모르는 후유증으로 손목터널 증후군과 안구건조증과 수면부족, 부수적으로 자아성찰, 인생무상에 대한 깊이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될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e-book. 아니 '책'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절대 읽을 필요 없는 내용이다. 이 글은 활자와 옛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글이다. 이미 현대에 넘어왔지만 아직도 머릿속은 유구한 전통을 지키면서 이상을 꿈꾸는 구한말 지식인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글자(활자)를 좋아하나? 종이책을 버리기 싫은가? 집에 공간이 필요한가? 질문에 모두 '매우 절대적으로 그렇다!'라고 대답하지 않는 다면 사람이 할 짓 아니고 읽을 필요도 없는 글이다.
※ 꽤나 오래전에 쓴 글이라 2025년의 상황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었다면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여기서 멈출지 다음 글을 읽을지 신중히 선택하면 좋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