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엘입니다. 이번 주제는 집단지성이었죠? 이 주제는 저번 주에 니부어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려다가 나온 거였어요. 니부어는 도덕적 개인들이 모이더라도 집단화가 된다면 부도덕할 수 있다는 걸 강하게 강조하였죠.😮‍💨 니부어의 사상에 동의하는 저는 집단지성에 대한 부분을 삐딱하게 보는 편이긴 해요. 사실 집단지성이라는 용어 자체도 엄밀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하나하나씩 생각해 보죠. 위에 김리디님께 말씀드렸듯이, 먼저 저는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고 싶어요. 우리가 지식(Knowledge)의 관점에서 집단지성을 본다면, 당연히 혼자 내는 결과물보다는 다른 사람과 보완하여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더 위대할 것입니다. 집단 안의 다양한 개개인들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사람들일 거고 그들의 현대적 지식들이 들어가면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겠죠.🫠 다만 지혜(Wisdom)의 측면은 어떨까요? 지혜는 지식의 활용적인 측면과 더욱 관련이 됩니다. 그리고 지혜에는 목적과 방향성이 필요하죠. 집단의 방향성이 과연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까요? 앞서 니부어 논의에 의하면 이 부분은 부정될 것입니다. 집단 이기주의적인 형태로 충분히 나올 수 있고, 우리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 맥락일 테고.. 더 나아가 파시즘, 전체주의라는 끔찍한 사례도 이 집단지성이랑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민주주의를 살고 있죠.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기 때문에 집단지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주목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집단지성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이 도덕적 개개인들이라는 걸 전제를 해야 하고 출발할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모두가 그렇지는 못하죠. 자신의 이익을 키우기 위한 지성은 집단지성이 분명 아닐 겁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라는 철학자가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했어요. 자유와 평등은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건 개개인의 판단 기준이 존중되는 상대주의적 측면이 있고 이에 대해서 의견 간의 우위가 사라지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죠. 여기서 지적으로 권위가 있는 사람이 대다수의 무지한 사람들(대중)에 의해서 부정되고 끌어내려집니다. 유별나고 차별화된 개개인들 또한 대중에 의해 정해진 표준에 맞추길 강요받는 거죠. 이를 토크빌은 "천박한 평등에 대한 열정"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방식의 평등은 하향평준화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죠. 이에 대해 토크빌은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요.🫥 토크빌이 19세기 사람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지금의 모습과도 닮아보이지 않나요? 인터넷이라든가..ㅎㅎ🥲 조금 민감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열렸던 촛불집회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그 촛불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걸 "집단지성"이라고 말을 할 수 있죠. 다만 "집단지성"이라는 언어표현으로 한정 지었을 시 너무나도 많은 걸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집회에 참여한 각 사람들마다 각자만의 내러티브와 사연들이 있을 텐데, 우리가 "집단지성"이라고 퉁쳐버린 순간 그런 개인적인 부분들에 대해 주목하지 못한다는 부분이죠. 더 나아가 그 집단지성이 지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지적 사유로 충분히 숙고된 방향성이 있어야 하며 그 안에서 풍성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요. 단지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한 이후로 그 목표를 달성해 버렸다고 생각하여 그 이후 상황에 대해선 다소 무신경해진 부분이라는 점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이때 국민의 의지가 모여 개헌까지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회를 우리가 잡지 못해 현재까지 흘러왔죠.🥲 네. 여기까집니다.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