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엘
(참여형🙋) 재미있는 철학적 주제 43편 - 설득에 관하여 (+내러티브, 카타르시스) 이번 주제는 "설득"입니다.😊 여러분들은 설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옳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 설득을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내가 뭐라고.. 그냥 그 사람의 인생이니 내버려 두는 편인가요?🤔 모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설득은 어쩌면 굉장히 교만한 말하기 방식이지 않을까요? 아니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말하기 방식일까요?🧐 여러분들의 설득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듣고 싶어요. 어떤 생각이든 환영합니다. 일요일에 피드백하겠습니다 :)🙆
모엘
9달 전•
안녕하세요. 모엘입니다. 이번 주제는 "설득"이었어요. 어려운 이야기죠. 우리도 살면서 수많은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니까요. 부모님을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면접장에서 면접관들에게 나를 뽑아달라고 어필하는 것도 어쩌면 설득일 테고, 비즈니스에서 협상의 과정도 설득의 일환이니까요. 정치인들도 설득을 하겠죠. 사람들에게 유세 활동을 하는 것도 설득일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3요소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라고 말하죠. 에토스는 발화자의 성품(도덕성 등)에 가깝고, 파토스는 감정, 로고스는 논리에 가깝습니다. 설득에서는 에토스가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파토스, 그 다음이 로고스인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게..!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특정의 영웅(천재)이 뛰어난 수사술이 담긴 연설을 통해 사람들을 리드하고 끌고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겠죠.🫡
그렇지만 사실 지금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웅은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으로 이해되죠. 히틀러라거나 파시즘, 전체주의 사회를 우리가 생각한다면 아까 acc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회를 획일화할 가능성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겠죠.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문화가 도래한 만큼 이러한 문화에 대한 거부는 강력할 거고요.
같은 맥락으로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를 보면 더하죠. "알빠노(내 알 바예요?)",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등을 보면 설득은 커녕 대화조차도 되지 않는 모습이죠.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들고 오더라도, 듣는 사람이 의지가 없다면 절대 변화가 생겨나지 않는 거죠.
이제 설득을 넘어서서 "계몽"이라는 표현을 써볼게요. 누군가가 나를 계몽시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거부감부터 들 겁니다. 그게 굉장히 오만한 생각이 아니냐는 거죠. 지금의 상대주의적 가치관이 너도 맞고 나도 맞는 걸 뜻할 텐데. 누가 절대적인 진리를 보았다고 말하면서 나를 계몽시키려고 한다면 반발심이 생기는 거죠.😮💨
아주 짧고 간략하게 이야기했지만 여기서 여러분들께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잘 모르겠네요. 사실 acc님께 제가,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설득을 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설득을 듣지 않겠다라고 말한다면 별다른 대책이 없어보이죠. 강제력을 사용하는 건 그 자체로 윤리적이지 못할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설득이 아니라 "내러티브(Narrative)"를 이야기하려고 해요. 제가 앞서 "20편 - 문학은 왜 필요할까?(https://app.newneek.co/community/post/14096)"에 올렸던 것과 같은 맥락이죠.
내러티브는 문학적인 특징을 이미 띠고 있고, 비유적인 상징이 많이 가미가 되어있죠. 하나의 이야기라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죠. 그리고 내가 창작자이자 저자가 되어 하나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서 독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제가 저번에 잠시 이야기했었던 "여우와 신포도"라는 이솝우화도 자기합리화라는 주제를 가진 하나의 내러티브로 작용을 하고 있죠.
성경은 또 어떤가요? 각각의 일화들이 실제 일어난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과 생각할 거리를 주죠. 아무래도 도덕적인 관점에서 더더욱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카타르시스를 이야기하죠. 저자가 만들어 낸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공포와 연민을 느끼게 하여 감정의 정화를 이루고, 독자들로 하여금 지적 각성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러면 독자들이 그 이후에 행동에 변화가 생겨날 것이고요.
그러면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 사람을 포함시키는 더 큰 내러티브를 만들어서 전달함으로써 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거죠. 이는 대놓고 강력한 의도를 품은 설득과는 결이 다를 거예요. 내러티브에는 의도가 어느 정도 숨겨져 있기 때문에 독자의 깊은 감정의 골을 건들 수 있는 거라고 보기 때문이죠.
사실 이런 저자적 관점을 차용하는 것도 오만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실제로 좀 과도한 낭만주의적 관점에서는 또 다시 천재적 관점을 차용해서 저자가 독자를 설득하고 끌고 가는 방향성을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폴 리쾨르라는 철학자는 저자와 독자의 소통을 더욱 강조해요. 설득이라는 표현보다는 '영향력을 미치다'라는 표현을 쓰려고 하고요. 그 말은 독자가 수동적으로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주체적으로 작품(내러티브) 속에서 지적인 의미를 확보하면서 방향성을 찾아나서는 걸 강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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