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이 지낸 2024년 여름
작성자 Underliner
나의 계절
에어컨 없이 지낸 2024년 여름
2년 전 이사를 하며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에어컨이 있어도 켜는 날은 손에 꼽았고,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편일뿐더러 에어컨의 차가운 공기를 춥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하며 선풍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결정했다.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대화 나누는 시간을 즐기는데, 에어컨을 없앤 이후로는 여름에는 초대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두 달 정도는 밖에서 만나도 충분하니까. 2022년 여름까지는 너무 더운 어떤 날이 손가락으로 꼽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에어컨을 없앨 생각을 했겠지. 2023년 8월 초에는 일주일 정도 더위로 고생한 기억이 있다. 재작년에 비해 고생한 날이 늘었지만, 그래도 딱 7일 정도였다.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지만, 쨍한 더위가 지나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았고, 피부로 느낄 가을을 기다리며 온몸으로 여름을 통과했다.
2024년 여름, 올해도 일주일 정도의 고생을 예상했다. 재택근무도 종종 해서 방에 있던 선풍기에 더해서 거실에 선풍기를 하나 더 들이는 정도로 올해 여름을 지내기로 했다. 그걸로 충분하리라 예상했고, 두 개를 동시에 틀 상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여름은 선풍기 두 대를 동시에 틀어도 견디기 어려웠다. 7월 말부터 심상치 않은 더위와 열대야에 '고생 좀 하겠군' 싶었지만, 8월의 반이 지나는 광복절쯤이면 어김없이 가을이 느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추석이 온 지금도 여전히 덥다. 이번 주에 9월의 이런 열대야는 처음이라는 뉴스를 보며, 8월 내내 기후 위기에 대해서 느꼈던 심각함을 더 깊게 느꼈다. 곧 추석인데 열대야로 잠을 뒤척일 줄이야.
유례없는 더위의 8월을 보내며, 기후 위기에 관한 뉴스에 더 눈과 귀가 열렸다. 내년 여름은 더 더울 것이라고 한다. 지금 보내는 이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고, 한국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의 준비보다 위기가 더 빠르게 오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에서는 위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미진함에 관하여 기후 헌법소원을 5년 동안 이끌었고, 8월 29일 헌법소원 위헌 판결이 났다. 이러한 목소리에 진지하게 대응해야 우리는 기후로 인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덜 겪을 것이다.
나는 선택적으로 에어컨 설치를 결정할 수 있었다. 내년 여름에는 에어컨을 살 예정이다. 올해 더위에 집에서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특히 요리) 하면 지쳐서 그 어느 때보다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꼭 해야 하는 일 외에는 제대로 해내기도 어려웠다. 일상의 감가상각을 해보면, 효율이 좋은 노력이라고 볼 수 없다. 에어컨을 안 쓴 만큼 일회용 용기를 썼으니.
청소년기후행동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개인의 일상적인 노력, 에너지 덜 쓰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되도록 채식하기 등으로 온실가스의 90%를 배출하는 산업의 변화를 촉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속도로는 기후 위기보다 사회 위기를 먼저 경험할 것이다. 올해 더위에 야외 노동자들의 근무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뉴스로 접했다. 누군가는 정말로 죽는다. 특히 야외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 무더운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는 약자들...
에어컨 없이 산 2024년 여름이 자랑스럽지 않다. 이건 그냥 선택이었고, 가능한 상황이어서 했을 뿐이다. 선택이 불가능한 미래 인류와 약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걸 알고, 이 노력이 바다에 한 방울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계속 이런 노력과 목소리를 내야만 무언가 바뀐다고 믿는다. 에어컨을 살 결심을 하며 이 글을 쓰는 복잡한 상태이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