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직송, 수요를 만들거나 생산자가 되거나
아래 글은 2026년 6월 10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전체 뉴스레터 보러가기
아티클 3문장 요약
1. 산지 직송은 이상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모델이지만, 실제로는 성장할수록 효율이 무너지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오늘회와 정육각 같은 실패 사례를 반복해 왔습니다.
2. 살아남은 기업들은 설로인·미스터아빠처럼 안정적인 수요를 먼저 확보하거나, 산지톡처럼 생산에 직접 참여해 공급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3. 결국 산지 직송의 미래는 수요를 만들거나 생산자가 되는 데서 시작되며, 장기적으로는 다이소처럼 수요와 공급을 모두 연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경쟁력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알토스의 투자가 성공을 거두려면
산지톡이라는 서비스를 아시나요? 아마 많이들 모르실 겁니다. 이름 그대로 산지 직송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머스 기업인데요. 얼마 전 알토스벤처스 관계자와 티타임을 하던 중, 이곳에 투자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알토스벤처스는 쿠팡, 배민, 토스, 당근 등 국내를 대표하는 플랫폼 기업들의 초기 투자자로 유명한 곳인데요. 그런 곳이 새로운 커머스의 미래로 산지 직송을 점찍었다니, 사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사실 산지 직송은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모델에 가깝습니다. 생산자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고, 소비자는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중간 유통 단계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분명 매력적이고요.
문제는 현실이 이론과 달랐다는 점입니다. 산지 직송은 이미 여러 차례 시장에서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보여준 바 있었습니다. 수산물 산지 직송을 내세운 오늘회, 초신선 돼지고기로 성장했던 정육각 모두 한때 큰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으니까요.
이들의 발목을 잡은 건 결국 확장성의 벽이었습니다. 산지 직송은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는 대신, 수많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운영 복잡성 역시 함께 커질 수밖에 없었고요. 반면 유통은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이 높아지는 대표적인 규모의 경제 산업입니다.
결국 오늘회는 효율이 확보되기 전에 운영 비용이 급증하며 어려움을 겪었고, 정육각은 초록마을 인수를 통해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자금 조달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알토스벤처스의 이번 투자는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닙니다. 결국 산지 직송이 성공하려면 효율을 유지하면서도 규모를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산지 직송 서비스들이 넘지 못했던 바로 그 벽을 말이죠.
수요를 먼저 만들어 살아남았습니다
물론 모든 산지 직송 서비스들이 실패한 건 아닙니다. 여전히 의미 있는 도전을 이어가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사례들도 존재합니다.
가장 먼저 주목할 곳은 설로인입니다. 정육각처럼 정육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집중한 기업인데요. 2023년 330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680억 원까지 늘었고, 영업손실 역시 97억 원에서 28억 원으로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설로인이 폭발적인 성장은 아니더라도 꾸준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선물 시장이라는 확실한 수요를 먼저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오늘회와 정육각은 규모를 키우기 위해 카테고리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고기와 회는 산지 직송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상품이지만 구매 빈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성급한 품목 확대와 채널 확장은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설로인은 프리미엄 정육에 집중하며 선물 시장에서 확실한 포지셔닝을 구축했습니다. 덕분에 명절마다 반복되는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었죠.
더 극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미스터아빠입니다. 아직은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지역 농가의 농산물을 식당과 슈퍼마켓에 직배송하는 신선 식자재 직거래 플랫폼인데요.
이들의 전략 역시 결국 수요에 있었습니다. 최종 소비자가 아닌 식당과 슈퍼마켓을 고객으로 삼으면서 훨씬 안정적인 주문을 확보한 것이죠. 생산자들에게도 지속적인 판로를 제공할 수 있었고요.
물론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전형적인 산지 직송 모델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매출 1,000억 원과 흑자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죠.
결국 두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먼저 작게라도 안정적인 수요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규모를 키워 나간다면 성장과 효율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생산자가 되는 것도 방법입니다
하지만 수요를 먼저 확보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반대로 공급에서 차별화를 만드는 방법도 있는데요. 앞서 설로인과 미스터아빠가 안정적인 수요를 기반으로 성장했다면, 산지톡은 공급을 먼저 통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인 동시에 생산자 역할까지 수행하는 것이죠.
대표 상품인 계란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계란은 신선식품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품목입니다. 필수 소비재인 데다 반복 구매가 자주 발생하고, 난각번호를 기준으로 시장도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산지톡은 자연방사 양계장을 다수 확보하며 난각번호 1번란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좋은 품질의 계란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니 자연스럽게 고객이 모이고요. 계란을 구매하러 들어온 고객이 다른 상품까지 함께 구매하면서 추가 매출도 발생합니다. 특정 상품에 집중한 덕분에 운영 복잡성을 낮추면서 효율까지 확보할 수 있었고요.
산지톡은 앞으로 이러한 킬러 아이템을 계속 늘려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자주 구매하는 핵심 상품의 공급을 직접 통제할 수 있다면, 고객을 꾸준히 유입시키면서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인 거죠.
이처럼 어떤 기업은 수요를, 어떤 기업은 공급을 장악하며 신선식품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성공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유통업은 결국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하는 산업이고, 아직 넘어야 할 벽도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긍정적인 점은 비슷한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다이소인데요. 다이소는 1,600개가 넘는 매장을 통해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했고, 이를 기반으로 제조에 깊숙이 관여하며 공급망까지 장악했습니다. 그렇게 연 매출 4조 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고요.
물론 신선식품은 공산품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유통기한이 짧고 생산 변동성도 크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산지 직송 역시 수요를 먼저 만들거나, 공급을 먼저 장악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이소처럼 수요와 공급을 모두 연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