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거시 패션 브랜드들이 생존하는 법
작성자 트렌드라이트
트렌드라이트
레거시 패션 브랜드들이 생존하는 법

아래 글은 2025년 04월 02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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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혹시 ‘레거시 브랜드’ 혹은 '제도권 브랜드'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패션 업계에서는 이커머스가 뜨기 전, 백화점이나 가두점을 중심으로 성장한 기존 오프라인 브랜드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이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점차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오프라인을 찾던 고객들이 빠르게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타격이 더 커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시기부터는 도메스틱 브랜드들의 부상이 본격화됩니다. 동대문 생태계와 온라인 중심으로 자라온 이들은 과거에는 ‘가성비 좋은 옷’ 정도로만 여겨졌지만, 지금은 높은 퀄리티와 브랜드 감도로 백화점까지 진출하며 완전히 다른 경쟁자가 되었죠. 이제는 오히려 백화점들이 이들을 전략적으로 영입하거나 육성하는 트렌드마저 보이고 있고요.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많은 레거시 브랜드들이 온라인 전용 브랜드를 론칭하기 시작합니다. 오프라인보다 진입 비용도 적고, 새로운 트렌드에 대응하는 데도 적합하다는 판단에서였죠. 실제로 LF의 ‘던스트’처럼 주목받는 브랜드도 나왔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운영 종료된 사례들도 적지 않습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텐먼스’, 삼성물산의 ‘엠비오’, LF의 ‘티피코시’ 등이 대표적인 예죠. 온라인 브랜드가 만만치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이들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역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보다는, 기존 브랜드의 자산을 활용해 온라인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움직임이 많아졌습니다. 과거엔 왜 굳이 온라인 전용 라인을 따로 만들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컸습니다. 하나는 기존 오프라인 매장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또 하나는 온라인에서 판매되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압니다. 오프라인만 고집하다간 브랜드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요. 게다가 요즘은 오히려 온라인에서 입지를 다진 브랜드들이 백화점에 입점하기도 하니, 디브랜딩에 대한 걱정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온라인 운영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인데요.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새로운 파트너가 바로 29CM 같은 패션 특화 커머스 플랫폼입니다. 실제로 29CM는 작년 한 해 동안 레거시 브랜드 거래액이 전년 대비 56%나 증가했다고 밝혔고요.
이 관계는 서로에게 윈윈입니다. 레거시 브랜드는 온라인 유통을 위한 안정적인 통로를 확보하고, 플랫폼 입장에선 최근 야기된 품질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검증된 브랜드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다이닛이 지금처럼 빠르게 성장해 큰 성과를 거둔다면 이와 같은 협력 사례들은 더욱 많아질 겁니다
또한 동시에 온라인 전용 브랜드를 만드는 방식 자체도 변하고 있습니다. 작년 가장 주목받은 브랜드를 꼽자면 단연 '다이닛'인데요. '마뗑킴'으로 천억 브랜드를 만든 김다인 대표가 새롭게 론칭한 브랜드로, 시작부터 큰 화제를 모았고 1년 만에 100억 원 매출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브랜드를 뒤에서 지원한 곳이 바로 대표적인 레거시 기업 ‘세정그룹’이라는 점입니다. 세정은 기존에도 자체 브랜드 WMC 등을 키워왔지만, 이번엔 더 큰 베팅을 위해 온라인 전문가인 김다인 대표와 손을 잡은 거죠. 이처럼 이제는 레거시 패션 기업들은 전문가나 플랫폼과 손잡고, 기존 브랜드를 온라인에 안착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브랜드도 함께 키우며 생존 전략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채널 전략도 같이 세워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주인공은 무신사, 29CM 같은 패션 플랫폼일지 모릅니다. 이들은 현재 레거시 브랜드는 물론, 신생 도메스틱 브랜드들도 꼭 거쳐야 하는 관문처럼 자리 잡았는데요. 덩달아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패션뿐 아니라 뷰티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요즘은 인디 뷰티 브랜드들이 대기업 브랜드를 제치고 떠오르고 있지만, 이들 역시 진짜 성장을 위해선 결국 올리브영 입점이 필요하죠. 먼저 이곳에서 고객에게 검증받는 게 필수가 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브랜드가 성장하려면 고객 접점이 중요한데, 요즘은 이 접점을 플랫폼이 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치 모든 대본이 넷플릭스를 향하는 것처럼, 패션과 뷰티 업계도 무신사, 올리브영 등 몇몇 플랫폼 중심의 구조가 더 분명해지고 있는 거죠.
따라서 이제 레거시 패션 브랜드들도 무신사 등 주요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활용이란 단순히 입점해서 상품만 파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자체 채널도 함께 키우면서 플랫폼 의존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온라인 브랜드 열풍과 함께 패션 기업들이 자체 플랫폼을 만드는 시도가 잇따르기도 했는데요. 대부분 기대만큼 성과를 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진짜 성장하려면 브랜드를 키우는 방식이 달라졌듯, 자사몰 운영 방식 역시 새롭게 다듬고 키워가는 전략이 필요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