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AI 논란, 흑백요리사에서 힌트를 찾다

국가대표 AI 논란, 흑백요리사에서 힌트를 찾다

작성자 테크잇슈

Tech Insight

국가대표 AI 논란, 흑백요리사에서 힌트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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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줄요약!

1. 국가대표 AI 선발전이 ‘프롬 스크래치’ 기준 문제로 논란이 일었어요.

2. 오픈소스 사용에 대한 순수성 논쟁과 현실론이 충돌하고 있어요.

3.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국가대표 AI 선발전의 딜레마

최근 국가대표 AI 선발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국가대표 AI 선발전이란, 한국의 AI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가 주도해 ‘대표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겠다는 사업인데요. 가장 성능이 좋은 AI 모델을 만드는 기업에게 지원을 집중해, 글로벌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습니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발표평가 결과 보도자료 (출처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그래서 이 사업에는 하나의 강한 전제가 붙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순수하게, 자체 기술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이른바 ‘프롬 스크래치(From Scratch)’ 방식인데요. 문제는 이 ‘처음부터’라는 말이 과연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순혈주의 논란, 프롬 스크래치란?

프롬 스크래치는 원래 요리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미리 만들어진 재료나 반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기본 재료부터 직접 만드는 것을 뜻하는데요. 예를 들어 "케이크를 프롬 스크래치로 만든다"는 것은 밀가루, 설탕, 계란 등 기본 재료부터 직접 반죽해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최근에는 요리뿐 아니라 프로그래밍, 비즈니스, 프로젝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가대표 AI 선발전에서 이 표현이 등장한 배경도 이해는 됩니다. 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기술력만으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AI 산업에서 프롬 스크래치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많은 해석을 낳습니다. 아키텍처는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공개 논문은 참고해도 되는지, 오픈소스 코드는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습니다. AI에서 ‘기본 재료’가 무엇인지조차 정리되지 않은 셈입니다.

이 때문에 논쟁은 불가피했습니다. 후보로 선정된 일부 기업의 AI 모델이 오픈소스 모델을 활용해 개발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글로벌 표준인 오픈소스를 쓰는 건 당연하다”는 현실론과 “국가 전략 자산인데 그 정도 순수성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론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어느 쪽도 틀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논쟁은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 논쟁을 보며 저는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흑백요리사입니다.


브라운 빌 스톡, 1가지 재료로 인정할 것인가?

흑백요리사2에는 ‘1가지 주재료와 10가지 부재료만 사용해 최고의 요리를 만들라’는 미션이 등장합니다. 참가자들은 제한된 재료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한 참가자가 10가지 부재료 중 하나로 ‘브라운 빌 스톡’을 사용하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흑백요리사2 패자부활전 미션 (출처 : 작가)

브라운 빌 스톡은 송아지 뼈와 각종 향신 채소를 볶고, 오랜 시간 끓여야 나오는 결과물입니다. 이미 그 안에 수십 가지 재료와 요리사의 시간이 응축된 '완성된 베이스'인 셈입니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걸 단순히 ‘재료 1개’로 세는 게 공정하냐는 질문이 나왔는데요. 룰의 문장만 보면 합법 같지만, 룰의 정신으로 보면 애매한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지금 논란이 되는 오픈소스 파운데이션 모델과 닮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의 모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천억 원의 자본과 수천 장의 GPU, 방대한 데이터를 태우며 축적된 ‘뼈를 깎는 시간’이 응축돼 있습니다. 요리로 치면 이미 충분히 우려진 육수에 가까워, 이를 활용하면 고품질의 AI 모델을 훨씬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간장은 논란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의문이 생깁니다. 브라운 빌 스톡이 문제라면, "그렇다면 간장은 괜찮은가?"라는 질문입니다.

집에 있는 간장 뒷면을 살펴봤습니다. 정제수, 탈지대두, 천일염, 소맥, 기타과당, 주정 등 10가지가 넘는 재료가 적혀있는데요. 콩을 삶고 메주를 띄워 발효시키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스톡보다 더 긴 ‘시간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간장은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요리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재료’로 사회적 합의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진간장 성분표 (출처 : 샘표)

참고로 흑백요리사에서 브라운 빌 스톡을 사용한 참가자는 제작진으로부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스톡을 1개의 재료로 인정했고, 심사위원은 오직 요리의 완성도로 평가했습니다. 완벽한 정의를 만들기보다, 경기를 성립시키는 기준을 택한 셈입니다.

이 지점에서 정부는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톡과 간장이 1개의 재료냐 아니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애초에 수학 공식 같은 정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세워 불필요한 논쟁을 끝내는 것, 그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할 때

국가대표 AI 선발전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가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외국 코드를 한 줄도 쓰지 않은 ‘순수한’ 모델이었을까요, 아니면 글로벌 시장에서 실제로 경쟁할 수 있는 ‘강한’ 모델이었을까요.

애초에 이 사업의 목표는 한국의 AI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오픈소스를 쓰느냐 마느냐는 수단의 문제일 뿐, 목적 그 자체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선정된 기업이 그 모델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발전시킬 역량이 있는지, 그리고 그 경쟁력을 지속할 수 있는 기술적 체력을 갖추고 있는지입니다. 간장을 쓴다고 해서 요리사의 실력이 평가절하되지 않듯, 오픈소스를 활용했다고 해서 기업의 기술력이 부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리더보드 순위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출처 : artificialanalysis.ai)

문제는 결국 시간입니다. 우리가 ‘프롬 스크래치’의 정의를 두고 탁상공론을 벌이는 동안, 글로벌 빅테크들은 이미 다음 세대 모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OpenAI와 구글은 물론이고, 중국 역시 놀라운 속도로 치고 나가는 중입니다. 완벽한 정의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허비한다면, 우리는 경기가 다 끝난 뒤에야 출발선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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