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 가는 모든 사람이 '나'다울 수 있는 정거장
작성자 테이블토크
사회변화를 향한 레퍼런스
오고 가는 모든 사람이 '나'다울 수 있는 정거장

2주 간의 이주(移住): 삶의 경로 탐색하기
| 별의별이주OO 프로젝트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별의별이주OO의 역사는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서울특별시 청년허브에서 국내외교류사업을 담당했는데요. 사내 워크숍으로 충남 홍성에 있는 젊은 협업 농장을 방문하게 되었죠. 그곳의 활동에 반한 몇몇 분의 추진력으로 서울 청년의 농촌살이 관련 기획을 하게 됐습니다.
2018년 홍성에서 ‘이주 농부’를 시범으로 운영했고, 이듬해부터는 강원 춘천, 충북 옥천, 경북 상주, 전남 영광으로 확대해 갔습니다.
2024년도 별의별이주OO 모집 포스터
그렇게 3년 동안 여러 품이 모여 정성스레 운영되던 사업이었는데 육아휴직 후 돌아오니, 운영상의 이유로 유야무야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큰 애정을 가지고 있던 사업이기 때문에 다시 할 수 있게끔 방법을 강구하던 차에 기존에 함께했던 농촌 현장과 민간 재단(삼선복지재단)이 공공 지원 없이 우리끼리 다시 해보자며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저 역시 퇴사를 결심하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2022년부터 새롭게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지요.
이후 점차 지역도 늘리고 참여자도 확대하면서 ‘별의별이주OO’라는 이름을 붙였고, 프로그램이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의 청년들이 별의별이주OO을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7년 동안 청년 230여 명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갔답니다.
| 쥐프로님의 어떤 경험이 이 프로젝트의 모티브가 되었는지, 개인적인 계기도 궁금해요.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그래서 더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 같아요. 도시 청년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상상할 기회가 없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나답게 살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 한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농촌에서는 청년들이 존재만으로도 환영받습니다. 완벽한 타인에게 자신들의 품을 기꺼이 내어주시지요. 그런 환대를 받은 청년들 역시 자신들의 품을 내어 놓는 연습을 자연스레 하게 됩니다. 서로를 바라보고 ‘좋음’을 경험하게 되지요. 저는 이런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했어요.
농촌과 도시의 접점을 만듭니다
| 프로그램은 “옥천에서 기자로 살아보기”, “홍성에서 농부로 살아보기” 등 여러 지역에서 ‘특정 직업’으로 살아보기와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와 같은 구성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으세요?
홍성 젊은협업농장의 정민철 선생님께서 2018년 이주농부 사업 설계 당시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도시 청년들에게 어떻게 하면 농촌의 삶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은 간단하다. ‘진짜’ 일상을 살아보게 하면 된다.” 고요.
이주농부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일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고 농촌 공동체와 함께 일하며 관계를 맺었어요. 쌈 채소 농장에서 채소를 수확하다가 병뚜껑에 스티커를 붙이는 아르바이트에 투입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저수지를 청소하고, 마을에서 열리는 학회 행사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죠. 농촌 공동체에서 안전한 ‘품’을 내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데 이 경험을 통해 청년들이 농촌의 일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정말로 살아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또 청년들이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공동체가 탄탄한 지역과 협력했어요. 이를 저희의 표현으로는 '비빌 언덕'이라고 하는데, 청년들이 안정감을 느끼는 관계망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이주농부 프로그램 참여자와 농촌 주민들이 함께한 현장
| 농촌 및 단체와의 협력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요?
현장의 권한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어요. 첫해에는 홍성 현장에서 별의별이주OO과 전국 농촌 공동체들을 직접 연결해 주셨고요. 저희는 청년들을 모집해 농촌으로 보내드리는 역할에 집중했어요. 놀랍게도 농촌 공동체에서는 청년들을 위해 2주간의 숙박비와 식사를 자발적으로 지원해 주셨어요.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청년들을 맞아주셨죠.
그러면서 주민분들은 청년들이 해당 농촌의 삶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돌봐주셨어요. 덕분에 청년들은 농촌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고, 일부는 다녀간 이후 실제로 농촌에 이주해 정착하기도 했어요. 이런 상호작용이 가능했던 이유는 농촌 공동체가 오랜 시간 관계 자본을 축적했기 때문일 테고, 운이 좋게도 저희가 접속한 시점에 협력이 가능했던 거라 생각해요. 농촌 현장에서 참가자 체류비 일체를 자부담하며 운영하는 것 자체가 정말 드문 경우였을 거예요. 무엇보다 이런 부분이 참 감사하죠.
도시쥐 정거장 실험 프로젝트 동료들의 홍성 젊은협업농장 일손 돕기 체험
| 최근 듣는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 ‘도시쥐 정거장’의 기획자로 펀딩을 진행하셨어요. 도시쥐 정거장은 어떤 배경에서 기획하셨어요?
도시쥐 정거장은 수도권과 농촌을 연결하는 거점 역할을 하고자 기획했어요. 농촌 공동체는 이미 활성화된 곳이 많지만, 수도권과의 연결 지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오는 이를 막지 않고, 가는 이를 붙잡지 않는" 열린 공간이라는 게 도시쥐 정거장 실험 프로젝트의 핵심이에요.
누구나 농촌과의 접점을 만들 때 중요한 건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창구의 존재라고 생각하는데요. 맨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받아주는 ‘쿠션’이 필요해요. 도시쥐 정거장은 바로 이런 쿠션 역할을 하려는 시도죠.
별의별이주00 현장 운영 관계자와의 협력 연구 워크숍
| 지역 사업과 관련해 ㅇㅇ에서 한 달 살기, 농어촌 체험하기 등 공공주도의 프로그램도 여럿 찾아볼 수 있는데요. 기존 프로그램과 ‘도시쥐 정거장 실험프로젝트’는 어떤 점이 다를까요?
예전에 비해 이 생태계에 다양한 외부 활동의 주체가 들어오면서 전체 크기가 확장된 건 사실 같아요. 이런 움직임이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산발적으로 나열된 자원이나 정책 사업을 개인이 선택하거나 일괄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취약한 게 사실이지요. 청년 개개인의 욕구에 따라 농촌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제시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옆에서 도와줄 농촌 내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도시쥐 정거장 실험에서도 현재 이 부분을 어떻게 접근해야 좋을지 여러 실험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요. 사실 막막하고 겁도 나지요. 그렇지만 어떤 형태로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작업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농촌과 도시가 ‘상호 좋음’을 경험하며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잘 짜봐야 할 것 같아요.
바라보며 연결되는 경험
| 도시쥐 정거장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농촌 내에서 삶의 방식은, 기존의 도시 중심적인 삶과 무엇이 다를까요?
농촌에서는 속도는 느리지만 삶의 밀도가 훨씬 높아요. 도시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경험할 수 있는 게 큰 차이점이라 생각해요. 다만 도시가 더 좋다, 시골이 좋다는 판단은 굉장히 주관적인 영역인데요. 중요한 건 스스로 뭐가 더 좋은지, 뭐가 나에게 더 잘 맞는지 알아보려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관광객처럼 소비자의 입장으로 농촌과 접점을 맺는 것과, 생산을 함께하며 구성원의 태도로 농촌과 접점을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르니까요. 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는 어디에서 오는지, 내가 쓰는 전기는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알고 지내는 삶과 모르고 지내는 삶은 차이가 있겠죠.
| 농촌과 도시 청년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고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주 가끔이라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거든요. 도시와 농촌은 각각 서로에게 받은 품이 있잖아요. 다만 현실적으로 보면 도시가 농촌, 특히 시골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요.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고,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도 연결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어요. 저는 그 연결 감각이 핵심인 것 같아요.
| 프로젝트가 청년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했다’라고 느끼신 순간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어요.
2019년 별의별이주OO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 A는 전북 완주에 빵집을 차리고 정착했어요. 또, 경북 상주에서 참여했던 청년 B는 프로그램 종료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상주에 남았어요. B는 농촌의 청년 그룹과 함께 활동하며 몇 년간 상주에서 농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다양한 공익 활동에 참여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었죠. 이렇게 즉각적인 변화 외에도, 천천히 준비 과정을 거쳐 농촌에 정착하는 사례도 많아요. 시간을 들여 집과 일자리를 알아보며 차근차근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도 하고요. 이런 사례들이 모이고 쌓이다 보니 저도 함께 뿌듯함을 느껴요.
나누는 공동체에서 나다움 찾기
| 도시 청년의 농촌 이주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일까요?
저는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도시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나답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기회가 없다는 점이 주요한 원인이죠. 많은 경우, 청년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며 자신의 진정한 삶의 방식을 탐구할 여유를 갖지 못해요. 특히 도시처럼 바쁘게 일상이 돌아가야 살 수 있는 구조에서는 더 그렇지요. 이런 시간을 갖기 어려운 점이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도시에서의 삶은 지나치게 빠르고 팍팍해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잖아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선택지를 탐색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 ‘좋은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동력으로 삼으시는 듯해요. 공동체로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커뮤니티나 농촌의 모습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자기가 가진 걸 조금씩 나누는 품앗이 문화가 잘 조성된 곳이에요. 조금 더 급발진해보면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세상이 되면 여러 어려움이 대폭 감소하지 않을까도 상상해 봅니다. 명확한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익적 일거리를 오래 담당하면서의 결론은 ‘품앗이도 받아본 자가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너른 마음으로 기다려주셨던 여러 현장 분들과 200여 명이 넘는 청년들에게 무한 애정을 받았기 때문에 저도 이제야 용기 내 나눌 준비가 되었거든요. 품앗이는 제 삶의 터를 어디에 두어도 한 인간으로 노력하고픈 태도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풀뿌리 기부 문화를 조성하는 실험을 작게라도 해보고 싶어요. ‘쥐구멍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렇게 도시와 농촌을 잇는 작은 연결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카페를 운영한다면 한 달에 한 번 농촌에서 온 사람들에게 할인을 제공하거나, 공간을 대여하는 사업자가 빈 시간대에 농촌 주민에게 무료로 대관하는 식의 실천도 가능하다고 봐요. 저는 이걸 ‘자기가 가진 품만큼 나누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이런 자발적이고 작은 나눔들이 쌓이면 도시와 농촌 간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서로 더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농촌에서는 이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어요. 방문객에게 숙식을 제공하거나, 농사철에 부족한 일손을 돕는 등 품앗이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거든요. 도시에서도 이런 자발적인 나눔이 활성화된다면 도시와 농촌이 서로 상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자원을 나누고 연결을 돕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꿈꿉니다.
| 향후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2025년부터 도시쥐 정거장을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수도권 내 거점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다양한 세대와 현장이 안전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와 농촌 현장 사이의 벽이 높아지는 시대에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끔 고개를 돌리게 하는’ 역할을, 이런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2027년까지는 그냥저냥 하고 있지 않을까 수줍게 고백해 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농촌과 도시 현장에 접속해보고 싶은 분들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관심 있는 모든 실험(하고픈)쥐 님은 언제든 편히 연락 주세요!
글 | 문지원,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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