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도파민 싹 도는 도시에서 수행하는 방법
작성자 수풀
인간이 싫을 때 일기를 써요 ~ing
21세기 도파민 싹 도는 도시에서 수행하는 방법
요즘 구직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데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서류 탈락했다. 어쩔 수 없지. 자소서 100개는 써야 한 건이 될까 말까 한 취업난이라지만 거절은 언제나 뼈가 시리다. 구직 플랫폼을 이곳저곳 훑으며 또 쓸만한 공고를 찾아 스크랩을 해둔 뒤에 노트북을 끄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눈이 번쩍 떠지더니 두려움이 갑자기 몰려왔다. 이대로 이직하지 못하고 해가 바뀌면 어쩌지?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지? 이번에는 정말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싶은데 말이야.
피곤을 누르며 아침을 맞이했지만, 고요한 마음속에서 작은 날갯짓들이 모여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되기 직전이었다. 노트북을 챙기고 서둘러 집을 나와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실망하고 슬퍼하고 불안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무게가 버겁다. 파도처럼 쉬지 않고 몰아치는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것일까? 그나저나 점심을 먹어야 자소서를 쓸 텐데 어디서 먹지?
그래, 포케! 순간 점심은 자극적이지 않은 심심한 것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지면 몸과 마음도 자극에 길드는 것 아니겠어? 절제는 자기 사랑이라는 말도 있던데 말이야. 수행의 삶을 사는 구도자들이 간을 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먹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기대하며 도착한 포케 집에서 연어 현미밥과 유자 간장 소스를 주문하고 섞기 시작했다. 한 입 먹었는데 음~ 소스가 생각보다 자극적으로 달구나. 이런 오늘 수행 실패다.
괜찮아. 대신 카페에서 쓰디쓴 디카페인 아아를 마시면 되니까. 그렇게 맞은편에 거리가 보이는 통창에 자리를 잡고 아아를 때리며 글을 쓰고 있다. 방금 빨간 점퍼 입은 어떤 아저씨랑 눈 마주침. 카페에서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 나옴. 도파민 싹 도는 카페에서 감정을 어렵게 다스리는 중이다. 이래서 다들 사람 없는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는가 봐. 21세기 도시에서 사는 수풀은 어디에서 감정을 다스리며 수행해야 하나? 일단 오늘 저녁은 맨밥만 먹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