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영웅이 된, 밤하늘 속 그녀들의 세계✨
작성자 우주애호박
우주가 궁금한 당신에게
난세의 영웅이 된, 밤하늘 속 그녀들의 세계✨
여름 저녁 하늘에선 우리은하의 일부분인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면, 가을 저녁 하늘에선 우리은하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안드로메다은하로, 우리은하와 가장 가까운 ‘큰’ 은하입니다. 굳이 큰 은하라는 표현을 쓴 건, 우리은하 주변에 아주 작은 은하(왜소 은하라고 해요)들도 있기 때문이에요. 안드로메다은하는 폭이 우리은하의 두 배 정도(22만 광년)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250만 광년 떨어진 지구에서도 흐릿하게 형체가 보이죠. 정말로 보이냐고요?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에 이미 책에 ‘작은 구름’이라 표기되어 있었답니다. 물론 지금은 빛 공해로 웬만한 곳에선 볼 수 없어요.
하지만 오늘은 안드로메다은하가 아닌, 이 은하와 관련된 두 여성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안드로메다 공주
안드로메다라는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인 안드로메다 공주에서 왔습니다. 고대 에티오피아 왕국의 세페우스 왕과 카시오페이아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안드로메다는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했었대요. 문제는 카시오페이아의 딸 자랑이 과했다는 겁니다. 카시오페이아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딸들(네레이데스)보다 안드로메다가 훨씬 예쁘다고 얘기하고 다닌 거죠. 뭐, 솔직히 부모가 그런 자랑 한 번쯤은 해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카시오페이아의 평판이 그리 좋진 않았나 봐요. 카시오페이아의 발언이 포세이돈 귀에 들어간 걸 보면 말이죠. 딸 비하 발언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에티오피아에 바다 괴물을 보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아, 참고로 포세이돈은 세페우스 왕의 먼 조상이랍니다.
이 저주를 멈추기 위해선 안드로메다 공주를 바다 괴물의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이 떨어졌어요. 안드로메다의 입장에선 황당하기 그지없었겠죠. 수려한 외모를 갖고 태어난 것도, 외모 자랑을 한 것도 모두 자기의 탓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제물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 과정에서 약혼자 또한 그녀를 떠나버려요. 작은 바위섬에 쇠사슬로 그녀의 몸을 묶은 이들이 떠나고 그녀는 홀로 남아 저 멀리 바다 괴물이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을 겁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다행히 그녀는 죽지 않았습니다. 메두사를 처치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페르세우스가 그녀를 발견했고, 바다 괴물도 처치했거든요. 포세이돈은 안드로메다의 결의를 시험하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재밌는 볼거리에 마음이 풀어진 것인지 저주를 멈추었고,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도 결혼에 골인하며 이야기는 행복하게 마무리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선 흔치 않은 해피엔딩이죠.
페르세우스가 백마를 타고 안드로메다를 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안드로메다의 계획에 제3의 구원자 같은 건 없었을 겁니다. 나라를 위한 책임감과 숭고한 희생정신, 그것이야말로 영웅을 설명하는 단어가 아닐까요?
헨리에타 리비트
1800년대 말, 천체 관측에 사진 기술이 더해지면서 매일 밤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은 많고 인력은 부족한데 돈은 한정되어 있으니,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했던 여성들을 고용하기 시작했죠. 그렇다고 이들이 천문학자의 대접을 받았던 건 아니고요, ‘계산기’ 역할을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일하던 여성 계산수들을 ‘하버드 컴퓨터스’라고 불렀어요. 헨리에타 리비트(1868~1921)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한때 성악가를 꿈꿨던 소녀는 청력을 잃은 뒤 책상 앞에 앉아 별을 쫓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죠.
리비트가 맡은 일은 변광성(밝기가 변하는 별)을 찾아 기록하는 거였습니다. 그녀가 발견한 변광성이 1,700개가 넘는답니다. 수많은 별을 기록하는 중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세페이드 변광성이라는 특정 변광성은 밝을수록 천천히 밝아지고 어두워졌던 겁니다. 이 사실은 ‘주기-광도 관계’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별 감흥이 오지 않으시죠? 하지만 천문학자에겐 매우 의미 있는 결과였어요.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가 변하는 주기를 이용해 별까지의 거리를 구할 수 있었거든요. 이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리비트의 ‘주기-광도 관계’를 이용해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구합니다. 아니, 안드로메다 성운이라고 해야겠군요. 그전까지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은하 안에 있는 성운인 줄 알았으니까요. 1920년대에는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다, 아니다로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대논쟁’이 한창이었어요. 아무리 토론해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죠. 그런데 허블이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발견된 세페이드 변광성을 통해 거리를 구해봤더니,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가 우리은하 크기의 추정치를 훨씬 넘어가는 겁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 밖에 놓인 독립적인 은하였던 것이죠.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가 아니었던 겁니다. 대논쟁을 해결한 허블은 안드로메다은하 외에도 다양한 은하들의 거리를 계산해서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는 사실(허블-르메트르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건 리비트의 발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허블은 종종 리비트가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대요. 실제로 리비트는 노벨상을 받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 위원회가 리비트를 찾았을 땐,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어요. 노벨상은 살아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거든요(참고로 허블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주기-광도 관계’라는 재미없는 법칙에 ‘리비트 법칙’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녀의 발견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글에선 안드로메다자리와 안드로메다은하를 보면 떠올릴 수 있는 두 여성 이야기를 해봤어요. 두 여성 모두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니, 난세의 영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밤하늘에도 이렇게 이야기와 역사가 숨어있어서, 알고 보면 더 재밌답니다. 다음에도 재밌는 이야기를 준비해 볼게요. 혹시나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