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 여성 CEO, 제주 할망 김만덕이 전하는 폭싹 속았수다
작성자 초희
MBTI로 보는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
조선 최초 여성 CEO, 제주 할망 김만덕이 전하는 폭싹 속았수다

요즘, 경제 뉴스를 듣다 보면 정말 하나같이 다 안 좋은 소식 뿐이죠. 오늘도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한층 더 낮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거 맞아?’ 라는 심란한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네요.
자극적인 썸네일로 가득한 창들은 ‘나락’이라는 두 글자로 모두 귀결되는 것만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죠. 섬뜩한 불안들이 우리의 일상을 잠식해 오고 있다고는 해도 숨이 붙어 있는 한(?) 이 위기를 우리는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아내야 합니다.
그럴 때는 이야기만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끝내는 멋진 인생을 이루어 낸 이들의 이야기에 내 일상을 대입해 보며, 나도 할 수 있어! 다시 일어나 보는 겁니다.
여기, 오늘날 우리네 일상에 딱 좋은 처방전이 될 만한 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차례의 위기를 값진 기회로 바꿔낸 인물의 이야기죠. 그 주인공은 바로 가난한 고아로 살아 가다가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일으키고, 마침내 억만장자가 되어서는 조선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이룬 제주 할망 김만덕입니다.
다음은 지피티가 그려 준 김만덕 네컷 만화입니당 😎
학습을 시키고 그렸더니 훨씬 결과물이 좋네요

기생 이름표를 던져버린 걸크러쉬(S)
조선 시대엔 기근이 흔하디 흔했습니다. 먹을 것을 찾고 찾다 지친 사람들은 인륜마저 저버렸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인육을 먹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여러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만덕이 태어난 시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739년(영조 15)에 태어난 그는 열두 살이 되던 해에 기근과 전염병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하루아침에 몸을 의탁할 곳이 사라진 만덕은 우여곡절 끝에 한 기생의 양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생의 명단 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죠.
조선 시대 기생은 ‘천인’ 신분이었습니다. 만덕의 부모는 찢어지게 가난했다고는 하나, 엄연한 양인 신분이었기에 이 일은 만덕에게 분통 터지는 억울한 일이었죠. 기생이 된 만덕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분명하게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느덧 20대 초반의 나이가 된 만덕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자 당시 제주를 다스리던 관리, 신광익을 찾아갑니다. 신광익은 만덕의 유려한 말솜씨에 할 말을 잃고 맙니다. 군더더기 없는 논리에 두 손 두발 다 들고는 만덕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죠. 이처럼 만덕은 청년 시절부터 제주 전역에 비범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천금을 던져 제주를 구한 할망(F)
만덕의 이름이 제주를 넘어 저 멀리 조선의 수도 한양까지 알려지게 된 건 그의 나이가 중년을 넘긴 뒤였습니다. 당시 제주는 엄청난 기근에 허덕이고 있었죠. 1792년(정조 16)에 발생하여 1795년까지 무려 3년간 끈질기게 이어진 이 기근을 역사에서는 ‘임을대기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예전부터 여러 차례 흉년이 있었지만, 이번 흉년은 추수할 게 전혀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굶어 죽은 사람이 몇 천 명에 이르는데, 올해에는 또 태풍이 연일 와서 제주 전역이 심한 재해를 입었으니 내년은 올해보다 안좋을 것입니다. – 정조실록
조선 팔도 중에서도 땅이 척박하여 농사를 짓기가 굉장히 어려웠던 제주는 이처럼 번번이 찾아오는 태풍으로 종종 극심한 피해를 겪곤 했습니다.
그러나 제주 백성은 새로 살 길을 찾아 육지로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1623년(인조 7)에 조선 조정이 정한 ‘출륙 금지법’ 때문이었죠. 너도나도 살기 어렵다며 하나 둘 섬을 떠나기 시작하면 제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어버립니다. 이에 조정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죠.

사방에서 넘실대는 검푸른 파도 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죽을 날 만을 손꼽을 수밖에 없던 제주 백성들에게 저 멀리 구세주가 나타납니다. 쌀을 한가득 실은 배들이 몰려오고 있었던 겁니다. 관아에 쌀 가마니가 가득 쌓였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선행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만덕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제주의 남녀노소 모두는 “우리를 살린 사람은 만덕 할망이다.”라며 날마다 만덕을 칭송했죠.
조선판 최고 인플루언서의 탄생(E)
만덕의 소식은 곧 한양까지 전해졌습니다.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리며 밤낮없이 깊은 수심에 빠져 있던 정조의 귀에까지 들어갔죠. 얼마나 기특했던지, 정조는 내친 김에 제주 관리를 통해 만덕에게 소원을 묻습니다.
국왕이 직접 소원을 들어 준다니,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칠 만덕이 아니었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만덕은 한양의 궁궐을 둘러본 후 금강산 이곳 저곳을 여행해 보는 게 평생의 꿈이라고 말합니다. 금강산은 조선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기를 꿈꾸던 조선 시대 최고의 핫플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덕은 '출륙'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던 제주를 떠나 한양으로 향했고, 마침내 구중궁궐 안에서 직접 정조의 용안을 뵙게 됩니다.
“너는 일개 아녀자의 몸으로 굶주린 백성 천여 명을 구했으니 참으로 기특하다”
정조는 만덕의 선행을 길이 길이 기리기 위해 만덕을 주제로 한 과거 시험까지 시행합니다. 오늘날 식으로 표현하면 대통령 표창 한 번 거하게 받은 거죠.
그날 후로 만덕의 숙소 앞에는 그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어하는 고위 관료들, 양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만덕은 반년 정도 한양에 머물다가, 화려한 꽃들이 길거리를 수놓는 늦봄의 어느 날에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나죠.

그렇다면 만덕은 어떻게 원 오브 흙수저에서 억만장자로 둔갑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에게는 아무리 처절한 현실이라도 그 어려운 순간, 순간들을 어떻게든 긍정하며 나아가 보려 했던, 어떻게 보면 참 억척스럽다고도 할 수 있는 단단한 ‘근성’이 있었습니다.
정조 픽 제주 셀럽, 억만장자가 된 비결(J)
“만덕은 돈을 불리는 데 재능이 있어 물가의 높고 낮음을 잘 짐작하여 물건을 팔거나 쌓아 놓거나 했다. 그런지 수십 년 만에 부자로 이름을 드높였다.” 만덕전
정조의 오른팔이자 당시 정치를 주름잡고 있었던 채제공의 만덕에 대한 평가입니다.
만덕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보잘것 없는 출신에다 '여성'이라는 리스크까지 있었고, 아무리 척박한 제주 땅이라고 하지만 그 흔한 땅 한 평조차 갖고 있지 못했죠.
하지만 만덕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암울하기만 한 환경 속에서 곧 새로운 기회를 찾아 냅니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에 시장이 등장하고, 상평통보라는 금속 화폐가 이곳저곳에서 통용될 만큼 상업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 백성들은 이러한 변화상이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당장 생계만 골몰해도 모자랄 판에 상업이라니, 콧방귀를 뀔 정도였습니다.
만덕은 달랐습니다. 모두가 외면하고 있던 블루오션을 자신만의 기발한 사업 아이템으로 바꿔 냈습니다.
제주에서만 나는 생선, 전복, 미역, 감귤 등의 다채로운 특산물을 잘 이용한다면 어떨까?
생각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번에 행동으로 옮겨 버리죠. 제주에서 육지로 가는 항구에 상인 전용 숙밥 업소를 열고 중개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육지에서 온 상인들에게는 제주의 특산물을 팔고, 그들에게서 얻은 생필품과 사치품은 다시 제주의 내로라하는 양반가들에게 값비싸게 팔아 이익을 냅니다.
결과는 성.공.적. 날마다 불어나는 거래처 덕에 매출은 날마다 고공행진을 합니다.
조선 조정의 공식 기록, 승정원일기는 만덕의 성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여인이라고는 하나 항상 몸가짐이 바르고 일처리에 능숙하여 제주의 관리들도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하였다.”
그렇게 만덕은 제주 포구의 상권을 모두 제 손으로 휘어잡게 됩니다. 조선 최초 여성 CEO의 탄생이었죠.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성공한 사업가, 만덕의 MBTI는 ESFJ가 아닐까요?
에디터의 코멘트✍️
만덕의 이야기, 어떻게 읽으셨나요?
누구보다 불리한 환경 속에서 기회를 찾아 내고, 끝끝내 성공을 이룬 만덕의 강인함에 이끌리셨나요? 아니면 오랜 옛날이라고 단순히 치부해 버리기엔 놀라울 정도로 기발한 만덕의 사업 아이디어에 감탄하셨나요?
독자마다 인상 깊은 지점이 다르겠지만, 저는 억만장자가 된 만덕이 부를 자랑하고 과시하기 보다는 자신이 어렵고 어렵게 모은 자산을 곁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선뜻 탕진했다는 점에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만덕의 이야기에 자신을 비춰보며 어렵기만 한 요즘, 내가 궁극에 바라고 바랐던 나의 모습은 뭐였을까, 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 알량한 욕심을 좇기에도 벅찬 요즘의 일상 속에서 시선 끝에 타인을 두는 일이 참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사회를 다시금 살아봄직한 사회로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그러한 선한 마음들이 아닐까, 라고 새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
저마다의 자리에서 안간힘을 쓰며 굿생을 살아가는 뉴니커 여러분께,
만덕 할망이 전합니다.
폭싹 속았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