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야근 중- 조선의 워커홀릭 , 세종의 MBTI는 무엇일까?
작성자 초희
MBTI로 보는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
온종일 야근 중- 조선의 워커홀릭 , 세종의 MBTI는 무엇일까?

🖌️워커홀릭의 대명사 (I)
"신하들 중에 행실이 바르고 재주가 있는 일들을 뽑아 학문을 연구하게 할 것이다." 조선의 공부벌레 중에서도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 그는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현전'을 세웠습니다. 어질고 현명한 이들(현)을 모은(집) 곳(전)이라는 뜻이었지요.
집현전 학자들의 입장에서 세종은 꽤나 혹독한 상사였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학문과 정치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이었던 세종을 신하들이 따라가기가 여간 쉽지 않았으니까요. 세종이 조선을 다스렸던 31년 7개월간 일일이 줄을 세우기에도 힘들 정도로 많은 업적들이 우르르 쏟아졌습니다. 이런 탓에 훈민정음은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을 말 그대로 들들 볶아 탄생한 문자가 아니냐는 농담 섞인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하늘을 수놓은 세종의 사랑 (N)
이처럼 세종, 하면 떠오르는 업적은 단연코 훈민정음 창제입니다. 그런데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기 이전에도 여러 과업을 이루었습니다. 세종은 특히 천문학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늘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 수 있다면,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백성에게 큰 도움이 될테니까요.
당시 조선은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중국 명나라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명나라가 정한 시간과 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으니 조선 정부의 일기예보는 늘 엇나갔고, 이에 따라 농사를 짓는 백성의 피해도 커져만 갔습니다.
이에 세종은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조선판 천문학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입니다. 세종은 큰 재능을 가졌지만 신분의 제약 때문에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장영실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합니다. 그러고는 그를 친히 명나라로 유학을 보냈지요.
왕의 총애에 보답이라도 하듯 장영실은 눈부신 성과를 달성합니다. 최첨단 관측 기구인 혼천의와 간의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지요. 세종은 혼천의와 간의를 궁 안에 설치하고 관리들에게 날마다 하늘을 관측하게 합니다. 하늘을 명확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되니, 계절을 구분하는 절기와 시간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영실은 시계인 앙부일구와 자격루도 발명하였지요. 마침내 하늘을 수놓은 세종의 사랑이 백성의 일상을 훤히 밝혀 주었습니다.
🐛형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공부벌레 왕자(T)
'대왕'이라는 수식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찬란한 시대를 일궈 낸 세종, 그런데 그는 사실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는다는 원칙 아래 세워진 조선에서 세종은 태종의 두 번째도 아니고, 무려 세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요?
형제들의 피로 얼룩진 왕좌에 가까스로 오르게 된 태종, 그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과오를 덮고도 남을 만큼 새 나라의 기틀을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 후계자를 바랐건만, 세자로 세운 첫째 아들은 자꾸 비뚤어져만 갑니다. 태종의 눈길이 글공부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는 셋째 아들 세종에게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첫째가 아닌 셋째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면 자신이 쓴 핏빛 과거가 반복될까 두렵기만 합니다.
세자도 아버지 태종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의 총명함을 인정하면서도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실록에는 늘 바른 소리로 세자의 비행을 꾸짖는 세종과 그런 동생을 노여워하는 세자의 일화가 종종 등장합니다. 태종도 세자를 볼 때마다 세종과 비교하며 날카롭게 꾸짖었지요. 반항심이 앞선 걸까요? 결국 세자는 용서 받지 못할 비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럼에도 반성하기는 커녕, '다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당히 불경한 내용의 반성문을 태종에게 올렸습니다.
결국 태종은 세자에 대한 기대를 모두 내려놓고 세종을 새로운 세자로 임명합니다. 그렇게 세자는 '양녕 대군'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한날한시에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 양녕대군의 심정도 좋지 않았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태종은 세자를 쫓아내던 날 '통곡하며 흐느끼다가 목이 메었다'라고 전합니다.
📜대왕의 마지막 비밀 프로젝트(J)
태종이 내린 가슴 아픈 결단은 아이러니하게도 태종의 가장 큰 업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종은 오늘날까지 대왕 중의 대왕으로 칭송받고 있으니까요.
어느덧 세월이 흘러 세종이 즉위한 지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야심차게 이런 저런 성과를 내던 세종에게도 탈이 나고 맙니다. 눈 건강이 심하게 나빠진 세종은 종종 세자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온천에 가 요양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쇠한 세종이 신하들에게 덜컥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백성을 위해 새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신하는 세종이 고생하고 고생하여 만든 문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완강하게 반대했지요.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 홀로 철저하게 비밀리에 추진한 사업인 게 분명해 보입니다.
신하들이 반대한 이유는 백성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알게 된다면, 아무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한문을 배워 보신 적이 있나요? 한자는 한글이나 영어와 달리 글자 하나하나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문을 막힘없이 읽으려면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자 하나하나의 뜻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적절히 해석해 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세종은 카리스마 있는 한마디로 반대 의견을 물리쳤습니다. "네가 운서를 아느냐?"라는 핀잔이었지요. 참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학문에서는 자신을 따라올 신하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니까요. 세종은 오히려 모두가 새 문자를 배운다면 중국에서 온 한자를 저마다 틀린 음으로 읽고 있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유학에서 이야기하는 생활 윤리를 훈민정음으로 쉽게 풀이하여 백성에게 전한다면, 백성들 중에 충신, 효자, 열녀가 무리로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지요.
이렇게 백성(민)을 가르치는(훈) 바른(정) 소리(음)라는 뜻의 훈민정음은 온갖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 우리의 곁으로 왔습니다. 매일 무감각하게 쓰고 있는 이 문자 속에는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짧게나마 세종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보다는 학문을 누구보다 사랑하였던 세종(I), 남다른 발상으로 천문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새 문자를 발명해 낸 세종(N), 비행을 일삼은 형에게나, 자신의 뜻을 가로막는 신하들에게나 늘상 자신감 넘치는 팩폭을 남발한 세종(T), 긴 시간 동안 남몰래 훈민정음 창제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이루어낸 세종(J). 이러한 사실들을 미루어 보아 세종의 MBTI는 인티제(INTJ)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나의덕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