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안 살 거 같은 걸 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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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안 살 거 같은 걸 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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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케터를 위한 뉴스레터, 큐레터의 01월 29일 아티클이에요!


지인의 소개로 ‘바르(Barr)’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이 브랜드의 독특한 행보였습니다. 국내 인지도를 발판 삼아 해외로 진출하는 대다수 K-뷰티 브랜드의 보편적인 공식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바르는 시작부터 유럽과 남미 시장의 문을 두드렸고, 실제로 스페인과 코스타리카에서 한국보다 먼저 탄탄한 팬덤을 쌓아가는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해외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비즈니스적인 주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미 복수의 브랜드 애그리게이터들이 인수 제안을 던졌다는 사실은, 이 낯선 브랜드가 가진 잠재력이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르가 가진 진짜 가치는 숫자로 환산되는 제안서보다, 성수동의 깊숙한 골목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구글 지도를 켜고 이 외진 사무실을 직접 찾아오는 외국인 고객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들에게 이곳은 유명 관광지보다 의미 있는 목적지이며, 자신이 애정하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에게 직접 감사를 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모이는 곳입니다.

이 기적 같은 장면 뒤에는 창업가의 처절한 시행착오와 여전히 진행 중인 고군분투가 숨어 있습니다. 자본도, 자원도 부족한 자매 창업가에게 해외 시장은 변명이 통하지 않는 치열한 전장이었습니다. 월급 25만 원을 받으며 버티던 시절을 지나왔지만, 조혜수 대표님은 여전히 현장에서 발로 뛰며 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완성된 성공 신화가 아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창업가의 꾸밈없는 민낯을 확인하고 싶어지는 대목입니다.

가장 느려 보이는 정공법이 어떻게 글로벌 시장의 문을 열었을까요? 세상이 정한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맑은 파동을 전하는 조혜수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Q.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창업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창업 전의 저도 누구보다 화장품을 좋아하고 신뢰하던 평범한 소비자 중 한 명이었거든요. 당시에 제가 해외 직구까지 해가며 맹신했던 유럽 브랜드가 하나 있었는데, 업무차 현지 바이어들을 만났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정작 현지 전문가들은 그 브랜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거든요. '유럽의 정통성'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휩쓸었던 그 제품의 실체가, 사실은 치밀하게 계산된 마케팅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죠.

업계 내부자로서 그 기만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정말 씁쓸하더라고요. 성분과 효능이라는 본질은 뒤로 밀려나고, 오직 화려한 포장지와 셀럽의 이미지로만 승부하는 시장의 생리에 깊은 회의감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진짜 효과를 기대하며 지갑을 열 때, 왜 시장은 껍데기를 치장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배신감이 묘하게도 저에겐 확실한 비즈니스적 오기로 변하더라고요. 모두가 마케팅이라는 신기루를 팔고 있을 때, 역설적으로 내용물에만 모든 자본을 투입해 '진짜'를 내놓는다면 그건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무기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안정적인 조직을 떠나는 두려움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직한 제품을 세상에 증명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던 셈이죠. 그렇게 마케팅 거품을 걷어내고 피부 장벽이라는 본질에만 집중하는 저희의 여정이 시작됐어요.

Q. 조직 내에서의 갈등과 회의감도 창업의 동기가 되었나요?

시장의 기회를 발견한 것과는 별개로, 당시 조직 안에서 느꼈던 심리적 괴리감이 정말 컸어요. 회사는 겉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 안의 문화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었거든요.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리더의 권위주의였어요. 당시 회사에는 직원들이 지켜야 할 황당한 행동강령 같은 게 있었는데요. 대표이사가 무엇을 묻든 ‘토 달지 말고 일단 알았다고 대답부터 하라’는 식이었죠. 심지어 직원들이 돌아가며 대표이사의 컴퓨터와 모니터를 닦고 관리해야 하는 당번제까지 있었어요.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모니터를 보면서 정작 제 마음에는 자괴감이 가득 쌓여갔어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죠. 건강한 리더라면 구성원들에게 가슴 뛰는 미션과 명확한 좌표를 찍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마주한 현실은 파트너십이 아닌 철저한 복종만을 강요하는 폐쇄적인 구조였어요.

저는 조직의 문제를 개선하려고 쓴소리도 참 많이 했는데요. 그런 모습이 리더의 측근들에게는 그저 불편한 반항으로 비쳤던 것 같아요. 동료로 존중받기보다 지시를 수행하는 소모품처럼 취급받는 상황을 더는 견딜 수 없었죠. 결국 나라는 존재가 마모되어 가는 그 궤도에서 내려오기로 결심했어요. 안락한 자리를 포기하더라도, 제 스스로가 온전히 신뢰하고 떳떳하게 나아갈 수 있는 저만의 비전을 세우고 싶었거든요. 그게 제 창업의 아주 솔직한 동기 중 하나예요.

사진 : 인터뷰이 제공

Q. 자매가 함께 사업을 하다 보면 전략적으로 크게 충돌하는 지점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 가장 많이 부딪치나요?

사실 제 경험이 제 발목을 잡을 때가 정말 많았어요. 제가 '영업 전문가'라는 자부심에 취해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건 무조건 안 돼'라며 오기를 부리곤 했거든요.

한 번은 파우치 샘플 제작 때문에 크게 붙었어요. 원래 업계 관행상 샘플을 찍으려면 최소 수만 개에서 수십만 개 분량의 '한 롤'을 다 써야 해요. 제가 아는 제조사들도 다 '소량은 절대 안 된다'고 했고요. 전 동생한테 '이건 업계 룰이라 어쩔 수 없다, 샘플 포기하자'고 단언했죠. 그런데 동생이 '왜 안 돼?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텐데' 하더니, 결국 만 개 단위로 제작해 주는 곳을 기어이 찾아내더라고요. 제 낡은 경험이 정답이라고 믿고 오기를 부렸던 게 동생 앞에서 너무 무색해진 순간이었죠.

창고 문제도 그랬어요. 이전 회사에서 봤던 게 있다 보니, 전 무조건 우리만의 창고가 있어야 하고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박스를 테이핑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았거든요. 심지어 창고 셋업하려고 대출까지 받은 상태였죠. 그런데 동생은 '그 비싼 월세 내면서 사람까지 써야 하냐'며 스마트 물류(풀필먼트)를 제안하더라고요.

전 처음에 이해를 못 했어요. 수출용 박스 라벨링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그걸 남한테 맡기냐고 화를 냈죠. 그런데 동생이 찾아온 시스템을 보니 월 10만 원대로 해결이 가능한 거예요. 제가 고집대로 창고를 빌렸으면 아마 대출금은 금방 바닥났을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안다고 생각한 것들이 너무 당연해서 찾아볼 생각조차 안 했던 게 문제였죠. 오히려 경험 없는 동생의 백지 같은 시각이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이끌어줬어요.

Q. 겉으로 보기엔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 같지만, 사업을 하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암흑기'는 언제였나요?

가장 화려해 보였던 시작 직후가 사실은 가장 배고프고 힘든 시기였어요. 호기롭게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하며 브랜드를 론칭했지만, 현실은 냉혹했죠. 벤더사에 인건비를 n분의 1로 나눠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었어요.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시는 여사님들조차 '이건 마케팅이라 생각하고 버텨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저희 자매의 월급은 고작 25만 원이었어요. 매출이 월 500만 원 남짓 나오던 시절이라, 임대료와 부자재비를 내고 나면 가져갈 돈이 없었죠. 팁스(TIPS) 타운 구석에서 동생과 서브웨이 샌드위치 하나를 나눠 먹으며 '이 산더미처럼 쌓인 11,000개의 재고를 언제 다 팔 수 있을까' 고민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유럽 인증은 나오기 전이고, 검증된 리뷰나 마케팅 예산도 전무한 상태에서 오로지 제품력 하나 믿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 척박한 시기에 저희의 진심을 알아봐 주신 초기 고객들 덕분에 1년여 만에 첫 재고를 모두 소진할 수 있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월 25만 원으로 버텼던 그 1년이, 숫자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직 제품의 본질에만 집중하게 만든 바르의 가장 소중한 자양분이 됐죠.

사진 : 인터뷰이 제공

Q. 창업 초기, 단가를 낮추려다 제품 3,000개를 전량 폐기한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요?

창업 초기, 어떻게든 생산 단가를 낮춰보려다 무리한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어요. 화장품 부자재는 한 번에 많이 주문할수록 개당 가격이 뚝 떨어지거든요.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남기고 싶은 마음에, 당장 필요한 수량보다 훨씬 많은 3,000개 분량의 용기를 라벨링까지 마친 상태로 선주문해버린 거죠.

문제는 그 수천 개의 용기가 창고에 쌓여 있는 동안 터졌어요. 계절이 바뀌며 발생하는 온도 차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오랜 시간 창고에 머물던 용기들이 온도 변화를 겪으면서, 미리 붙여둔 라벨이 우후죽순 들뜨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단가를 낮춰보겠다고 재고를 잔뜩 쌓아둔 게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온 거죠.

가장 괴로웠던 건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어요. ‘필요한 것만 남긴다’는 미니멀리즘과 ‘지속 가능성’을 브랜드의 철학으로 내걸었는데, 정작 제 욕심 때문에 멀쩡한 용기들이 내용물을 담아보지도 못하고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전락했잖아요. 주변에서는 '아까우니까 라벨 위에 다른 스티커를 덧방해서라도 팔아라'라고 했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순 없었어요.

결국 그 3,000개의 용기를 전량 폐기하며 제 손으로 직접 다 버렸어요. 사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어서 그대로 내보냈다면 소비자는 몰랐을 수도 있고, 손해도 안 봤겠죠. 하지만 제 눈에는 그 결점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어요.

이제 막 시작한 작은 브랜드에서 그 정도 수량을 폐기한다는 건 비즈니스적으로 정말 뼈아픈 실책이었죠. 눈앞의 작은 이익을 쫓다가 정작 중요한 원칙을 놓칠 뻔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는지 몰라요. '효율'이라는 유혹에 넘어가 요행을 바란 대가가 얼마나 쓰라린 기회비용으로 돌아오는지 몸소 배운 셈이죠.

사진 : 인터뷰이 제공

Q. 제조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분 80% 함유’ 같은 독자적 레시피를 고집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정말 독기 어린 고집이었어요. 성분 함량을 무조건 높게 때려 넣어야 제 진심이 고객에게 전달될 거라고 믿었거든요. 제조사에서 '제형이 분리된다', '관행상 불가능하다'며 손사래를 칠 때마다 그분들을 붙들고 늘어졌죠. '안 되면 될 때까지 샘플을 다시 뽑아달라'며 억지 아닌 억지를 부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거치면서 뼈아프게 깨달은 게 있어요. 단순히 특정 성분을 많이 넣었다는 수치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성분들이 피부 위에서 얼마나 조화롭게 작용하느냐는 '완성도'였죠.

사실 요즈음은 성분 표기가 아주 투명하게 공개되잖아요. 그런데 그 기준으로 시장을 다시 보니 좀 충격적이었어요. 겉으로는 고함량을 내세우지만, 막상 써보면 오일과 수분이 겉돌거나 흡수가 안 되는 제품이 태반이었거든요. 마치 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넣었는데 정작 맛은 하나도 없는 요리 같았죠.

저는 바르가 그런 '보여주기용 숫자'에만 매달리는 브랜드가 되길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무작정 함량을 높이는 오기보다는, 피부에 가장 잘 흡수되고 효과를 낼 수 있는 '최적의 레시피'를 찾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어요. 텍스처 한 끝의 차이까지 따져가며 제조사를 설득하죠. 이제는 제조사도 제 고집을 알기에 '적당히'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요. 그 치열한 기싸움 끝에 찾아낸 완벽한 밸런스가 지금 바르가 가진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Q. 판로도 없는 상태에서 수년간 유럽 인증(CPNP)에 매달리셨어요. 그 험난한 과정을 견디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단순히 인증 마크 하나를 따려는 게 아니었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면서 우리 제품의 진짜 실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고 싶었죠. 실제로 인증을 준비하며 제조사로부터 원료의 원산지부터 미세한 혼합 성분까지 모든 서류를 샅샅이 받아내 파헤쳤어요. 그 덕분에 저도 제 제품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공부하게 됐고, 미생물 검사나 안정성 테스트를 하나하나 통과하며 '정말 안전하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어요. 예산이 부족해서 유럽 연구실에 보습 테스트만 의뢰했는데, 4주간 임상을 진행한 현지 연구원들이 뜻밖의 리포트를 선물로 보내온 거예요. 실제 테스트해보니 보습은 물론이고 '피부 탄력(Elasticity)'이 유의미하게 높아졌다며, 수치로 증명된 탄력 리포트를 무료로 써준 거죠.

유럽의 공신력 있는 연구실에서 우리 제품을 두고 '진짜 효과가 있다'는 공증을 내어준 순간, 그 전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사실 그전까지는 저 혼자만의 외로운 고집 같았거든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불모지에서 보낸 그 막막했던 시간들이, 단단한 수치와 데이터로 치환되어 돌아온 거니까요.

그때 얻은 건 단순한 인증서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는 '자부심'이었어요. 남들이 사람들의 눈을 현혹할 화려한 마케팅 수식어를 골라낼 때, 저희는 유럽 연구실의 객관적인 데이터를 무기로 들고 나갈 수 있게 된 거죠. 돌이켜보면 그 무모할 정도로 고집스러웠던 시간들이야말로, 저희를 지탱하는 가장 깊고 단단한 뿌리가 됐어요.

사진 : 인터뷰이 제공

Q. 사실 매출이 채 나오기도 전인 초기 단계에서, 고비용의 유럽 인증을 유지하고 친환경 패키징을 고집하는 건 경영적으로 꽤 위험한 선택 아니었나요?

맞아요, 주변에서도 다들 무모하다고 말렸죠. 하지만 저는 당장의 생존만큼이나 브랜드가 내세운 ‘정직함’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훼손되면 설령 살아남더라도 의미가 없다고 믿었거든요. 비건 인증을 대행사에 맡기지 않고 제가 직접 서류를 챙기며 소명하고, 단가가 높은 친환경 패키징을 고집한 것도 결국 제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집이 투영된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패키지예요. 단순히 디자인에 신경 쓴 게 아니라, 까다로운 유럽 리테일러들이 '지금 당장 매대에 올려도 손색없다'고 입을 모을 만큼 정보를 치밀하게 담았습니다. 제품 안면은 물론이고, 종이를 펼치면 나타나는 패키지 안쪽면까지 브랜드의 철학과 상세한 정보를 여러 유럽 국가의 언어로 빼곡히 채워 넣었죠.

이런 노력을 글로벌 고객들이 가장 먼저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패키지 정면에 성분 함량을 직관적으로 표기한 걸 보며 '약병처럼 신뢰가 간다'거나, '전 성분 표를 복잡하게 뒤지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바르는지 즉각 알 수 있어 감동적이다'라는 반응을 보내주실 때 제 확신은 더 단단해졌어요. 알코올이나 실리콘을 배제하면서도 최적의 흡수 밸런스를 찾으려 했던 시간들을 그분들이 먼저 알아봐 주신 거죠.

유럽 인증(CPNP)에 쏟아부은 비용도 마찬가지예요. 바이어가 제품을 마음에 들어 해도, 그때부터 인증을 시작하면 6개월이 걸려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바이어는 그 시간을 절대 기다려주지 않거든요. 남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광고에 돈을 쓸 때, 저희는 유럽 내 관리자(RP) 유지비를 내며 인프라를 먼저 구축했습니다. 결국 이 선투자가 나중에 해외 바이어들과 망설임 없이 계약을 체결하게 만든 결정적 열쇠가 됐죠. 가치를 지키려 했던 고집이, 결과적으로 비즈니스를 가장 수월하게 풀어준 강력한 전략이 된 셈이에요.

Q. 처음부터 유럽 시장을 정조준하셨습니다. 까다로운 유럽 소비자들이 바르의 ‘절제된 정직함’에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럽 소비자분들을 직접 겪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보수적이면서도 굉장히 스마트하시더라고요. 단순히 패키지가 귀엽거나 이국적이라고 해서 지갑을 열지 않으세요. 오히려 성분 분석 사이트를 하나하나 뒤져가며 EWG 그린 등급인지, 인공 향료나 알코올 같은 유해 성분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하시죠.

이런 분들에게 저희 슬로건인 "좋은 성분은 스스로 증명한다(Great ingredients speak for themselves)"는 단순한 문구가 아니었어요. 제품을 통해 실제로 지켜지는 약속으로 다가간 거죠. 실제로 해외 유튜버분들이 저희 제품을 써보고 "내 삶의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는(Decluttering) 과정 같다"고 평해주셨을 때 정말 기뻤어요. 80%가 넘는 고함량 병풀 추출물이나 녹차수 같은 핵심 성분을 투명하게 공개한 점이 그분들에게 깊은 신뢰를 준 것 같아요.

저희는 이런 소비자들의 성향을 고려해 ‘익숙함 속의 새로움’을 전략으로 삼았어요. 제품 디자인이나 정보 배치는 유럽 현지인들에게 익숙한 방식을 따르되, 그 안에 한국적인 성분을 정교하게 담았죠. 그들 입장에선 정체 모를 이국적인 화장품이 아니라, ‘내가 늘 쓰던 것처럼 편안한데 성분은 훨씬 안전하고 매력적인 제품’으로 느껴진 거예요.

결국 "품질이 좋다면 그에 합당한 가치를 지불하겠다"라는 고객들의 확신이 저희에겐 가장 큰 자산이 됐어요. 보수적인 유럽 시장의 문을 연 결정적 열쇠는,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가장 정직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전달한 ‘로컬화’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진 : 인터뷰이 제공

Q. 대표님이 정의하시는 바르의 ‘진정한 도약’은 어떤 모습입니까?

저는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게 정말 즐거워요. 모두가 미국이나 중국 시장을 말할 때, 저희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미얀마 같은 불모지에 먼저 깃발을 꽂았거든요. 제가 꿈꾸는 진정한 도약은 단순히 매출 1위가 아니라, 지구 반대편 이름도 낯선 나라에서 '한국 화장품 하면 바르(Barr)'라는 말을 듣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잘 몰라도, 코스타리카에 가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가 되는 것. 그 역발상이 주는 프리미엄과 희열이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사진 : 인터뷰이 제공

코스타리카의 첫 바이어였던 '노엘리아'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뭉클해요. 저희 제품에 반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 집에서 직접 뷰티 클래스를 열고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며 자발적인 홍보대사가 되어주었거든요. 그 진심 어린 날갯짓이 스페인어권을 타고 남유럽과 남미 전체로 퍼져나가, 얼마 전 콜롬비아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하는 기적 같은 결실로 이어졌어요. 미얀마 바이어 제임스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인천까지 달려갔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만약 제 목적이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팔아 회사를 키우고, 적당한 때에 엑시트(Exit)하는 것이었다면 이런 소중한 인연들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거예요. 저는 '바르'가 전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수많은 ‘노엘리아’들과 함께 호흡하며 성장하길 바라요.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 같은 브랜드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Q. 막대한 예산 없이도 해외 인플루언서들이 자발적으로 ‘바르’의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광고가 아닌 ‘팬심’으로 움직이게 만든 힘은 어디에 있었다고 보십니까?

대기업 브랜드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실재하는 사람과의 소통’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초창기에는 따로 마케팅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저희 자매가 매일 영문으로 포스팅을 올리며 발품을 팔았거든요. 전문 모델이 아닌 대표인 제가 직접 제품을 바르는 루틴을 올리고, 성분의 효능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를 들려줬죠.

무엇보다 큰 힘은 댓글 창에서 나왔어요. 고객들이 댓글을 달면 '바르 안녕'이라고 하지 않아요. '셀레스트 안녕(Hi Celeste)'라며 저의 이름을 불러줬죠. 저희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마치 친구처럼 시시콜콜한 소통을 이어갔고요. 그렇게 조금씩 국경을 초월한 유대감이 쌓이면서, 어느덧 그들에게 바르는 단순한 화장품 업체가 아니라 '내가 잘 아는 한국 친구의 브랜드'가 되어 있었던 거예요.

영어로 소통하다 보니 스킨케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글로벌 유저들이 국경 없이 모여들었어요. '한국에 가면 너희를 꼭 만나러 가고 싶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끈끈한 관계가 형성됐죠. 광고가 아닌 '사람'으로 인식되고 이름으로 연결되는 경험, 그 진심 어린 소통이 어떤 막대한 광고비보다 강력한 팬심을 만들어낸 본질적인 힘이었다고 믿습니다.

사진 : 인터뷰이 제공

Q. 성수동 골목 안 사무실까지 구글 지도를 보고 찾아오는 해외 팬들의 사례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들이 단순히 제품 구매를 넘어 ‘바르’라는 공간을 직접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들에게 바르의 사무실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친한 친구의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온라인에서 저희 자매의 일상을 보고 소통하며 쌓아온 친밀감을 현실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컸던 거죠. 사실 사무실에 오셔도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포르투갈, 독일, 터키 등 전 세계에서 팬들이 찾아오셨어요.

유독 기억에 남는 분들이 많아요. 여러 번 찾아와 준 터키 항공 승무원 파트마, 친구들을 데리고 단체로 여행 온 독일의 컬스틴 같은 분들이요. 최근에는 컬스틴이 자신의 딸을 데리고 다시 방문했는데, 제 딸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에서 어울려 놀기도 했어요. 화장품 브랜드와 고객으로 만났지만, 이제는 서로의 가족과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거죠.

그분들이 바쁜 여행 일정 중에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성수동 골목까지 찾아오는 건, 제품 하나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온라인에서 나누었던 그 진심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고, '인격체로서의 바르'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인 거죠. 브랜드가 딱딱한 기업이 아니라, 고객과 함께 숨 쉬고 성장하는 '유기적인 생명체'가 될 때 어떤 강력한 유대감이 생기는지 저 또한 몸소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사진 : 인터뷰이 제공

Q. 지난해 해외 시장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인수 제안(M&A)과 투자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경영자로서 매력적인 제안이었을 텐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신 근거는 무엇인가요?

사실 거절이라기보다, 브랜드의 '미래'와 '주도권'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계기였어요. 글로벌 애그리게이터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우리가 묵묵히 걸어온 길이 시장에서 증명되고 있구나' 하는 확신에 기쁘기도 했죠.

실제로 글로벌 뷰티 편집숍과 구체적인 지분 투자나 하우스 브랜드 합류에 대해 꽤 진지한 논의를 나누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논의가 깊어질수록 본질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우리가 단순히 규모를 키우기 위한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소비되는 게 과연 행복할까?'라는 의문이었죠.

그때 제 곁에서 함께 고생해온 동생이 제 마음을 다잡아줬어요. 어느 날 동생이 해외 유명 경영자의 비전 보드를 보여주며 묻더라고요. '언니, 우리가 고작 회사를 좋은 가격에 파는 걸 목표로 그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온 거야?'라고요.

동생은 우리가 가진 '주도권'의 가치를 정확히 짚어줬어요. 우리가 지금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당장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편해지겠지만, 우리가 세운 원칙과 철학은 결국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게 될 거라고요. 그러면서 'K-뷰티가 단순히 유행하는 화장품을 넘어 세계적인 신뢰를 얻는 그 중심에 우리가 있을 수 있는데, 왜 그 기회를 벌써 남에게 넘겨? 우리가 직접 K-뷰티의 더 큰 미래를 그려보자'고 말하는데, 그게 제 가슴을 때렸어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지금 매각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따기보다, 우리가 직접 발로 뛰며 유럽 시장의 문을 더 활짝 열고 '바르'라는 이야기를 우리만의 색깔로 끝까지 완결 짓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죠. 아직 저희가 그려놓은 비전의 절반도 채 가보지 못했으니까요.

Q. 브랜드의 핵심 가치인 ‘미니멀리즘’을 단순히 성분을 줄이는 것 이상의 철학으로 정의하신다면요?

저에게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비우는 게 아니라, '무엇에 내 에너지를 집중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태도예요. 저는 일상의 자극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합니다. 늘 똑같은 자리에 주차를 하고,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불필요한 인간관계나 소모적인 모임은 과감히 정리하죠. 에너지를 뺏는 무의미한 자극들을 걷어내야 비로소 제가 진짜 집중해야 할 업무와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확보되거든요.

바르의 제품들도 제 삶의 방식과 닮아 있어요. 화장품 역시 굳이 10단계를 바르며 피부에 과한 자극을 줄 필요가 없어요. 불필요한 단계를 덜어내고 꼭 필요한 핵심 성분 하나를 제대로 전달할 때 피부는 가장 편안하게 숨을 쉽니다. 화장대 위에 수많은 잡동사니를 치우고 가장 본질적인 것만 남기는 과정은, 결국 내 피부와 삶을 가장 정직하게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죠.

어찌 보면 단조롭고 재미없는 일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이 단단한 루틴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이 가장 행복해요. 바르가 고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도 바로 이것입니다.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복잡한 일상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묵묵한 배경이 되어주는 것.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서 고객들이 각자의 삶의 본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 : 인터뷰이 제공

Q. 최근 뷰티 패러다임이 결점을 가리는 화장에서 건강함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바르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가리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악순환에 빠지게 돼요. 결점을 가리기 위해 두껍게 바르고, 그게 모공을 막아 트러블이 생기면 다시 더 두껍게 가려야 하죠. 그렇게 남들이 보기에만 좋은,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결코 편안한 일이 아니에요. 저는 화장품을 바른 피부가 무엇보다 숨을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요즘 전 세계가 한국인의 '글래스 스킨(Glass Skin)'이나 도자기 피부에 열광하잖아요. 그 핵심은 두꺼운 파운데이션이 아니라 투명하게 빛나는 속 피부, 즉 기초 체력에 있어요. 결국 본질은 스킨케어로 돌아옵니다. 선크림 하나를 발라도 답답하지 않고 내 피부처럼 편안해야 하죠.

제가 거대한 메타 담론을 이끌어가는 거창한 사상가는 아니지만, 바르를 통해 이 원칙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어요. 피부가 본연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억지로 덧대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나는 피부를 만드는 제품들을 선보이는 것.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가장 기본에 충실한 제품으로 고객의 피부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 머물게 돕는 것이 바르가 이 시대에 기여하는 방식입니다.

사진 : 인터뷰이 제공

Q. 앞으로 바르가 나아갈 방향과, 대표님이 꿈꾸는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바르가 잠깐 반짝이고 사라지는 유행템이 되지 않길 바라요. 패션으로 치면 유니클로의 '화이트 티셔츠' 같은 존재가 되고 싶거든요. 화려한 옷들 사이에서도 결국 매일 손이 가고, 어떤 스타일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처럼 말이죠. 피부가 지치거나 시술 후 회복이 필요할 때, 혹은 복잡한 루틴에서 벗어나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누구나 고민 없이 집어 드는 '스킨케어의 기준'이 되는 게 저희의 목표예요.

이런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결국 '본질'과 '일관성'이 얼마나 단단하게 맞물려 있느냐인 것 같아요. 예민한 피부를 위한 미니멀 케어라는 본질에 집중하되, 그 가치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시각적인 아이덴티티와 메시지의 결을 끝까지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바르가 미사여구로 환상을 심어주기보다 성분 그 자체로 투명하게 실력을 증명하는 '디 오디너리' 같은 담백함을 닮았으면 좋겠고, 동시에 창업자의 진심과 에너지가 브랜드 곳곳에 스며있는 '글로시에'처럼 주체적인 서사가 느껴지는 브랜드가 되길 지향해요.

제 최종 목표는 사실 거창한 매출 숫자가 아니에요. 10년, 20년이 지나도 고객의 화장대 한구석에 변함없이 놓여 있는 브랜드, '바르 하나면 충분해'라는 신뢰를 주는 삶의 태도로 남는 것입니다. 자신을 정돈할 줄 알고 본질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바르가 그들의 건강한 삶을 묵묵히 지탱해 주는 든든한 배경이 됐으면 해요. 그 묵직한 지속성을 위해서 저희는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이 길을 걸어갈 생각입니다.

사진 : 인터뷰이 제공

※ 오늘의 큐터뷰는 조인후 작가님이 작성하고, 큐레터가 편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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