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을 찾고 있나요? : 영화 <한국이 싫어서>
작성자 엔케이
무비-잇
당신은 행복을 찾고 있나요? : 영화 <한국이 싫어서>
안녕하세요, 전석의 '무비 잇' 그 첫 번째 글입니다.
첫 글을 장식할 작품 메뉴는 영화 <한국이 싫어서>입니다.
장건재 감독님의 2024년 개봉작으로, 독립영화로서 2024 부국제 개막작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주연은 배우 고아성님으로, 배우님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영화를 가득 채웠습니다.
지난 13일에 정릉역 근처의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정보가 없어서 몰랐는데, 장건재 감독님의 영화를 상영하는 감독전이 진행 중이었어요.
영화가 끝나고 GV까지 진행해서 기분 좋게 관람하고 왔습니다.
오랜만에 영화에 관한 정보 하나도 없이 관람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마주한 스포일러가 없었어서 더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어요.
사실 한국이 싫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느끼고요. 우리나라는 종종 너무 삭막하거나 사람을 과하게 수단화하고, 성공이라는 길에서
한 없이 사람을 쫓기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어요.
독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한국이 싫었던 적이 있었나요?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그 마음을 잘 상기하시면서 글을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인공인 계나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한국인입니다.
하지만, 보일러가 고장난 집과 뽀얀 입김이 숨을 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겨울은 계나에게 고통스러울 뿐이죠.
계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온갖 것에 치이면서 살게 됩니다.
꼭두새벽에 출근하며 마을버스를 쫓아가랴, 인파 속에서 고통의 출근길을 겪으며 출근을 반복하고 있어요.
그런 계나는 어느 날, 회사 사업 관련 입찰 명단을 정리하다가 직장 상사에게 타박을 듣습니다.
그 이유는 일을 '융통성' 있게 하지 않아서.
점수가 미달인 곳이라도, 일을 같이 해 왔다면 입찰해 주는 것이 '융통성'이라면서 말입니다.
계나는 한낱 직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되려 융통성없다 욕이나 먹는 삶이 즐겁지 않습니다.
고된 하루의 끝, 계나가 돌아올 집은 춥기만 합니다.
계나의 엄마는 재건축 아파트에 입주할 잔금을 '맡겨놓은 듯' 달라 하고,
계나가 부탁을 거절하자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가족에게서도 기댈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습니다.
계나에게는 남자친구 지명이 있습니다.
기자를 꿈꾸고, 노력하는 삶 끝엔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죠.
의미 없이 반복되는 삶에 무력해진 계나와는 반대되는 인물입니다.
계나는 지명에게 해외로 떠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계나에게 해외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 지 모르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명은 계나가 꿈꾸는 해외 생활을 탐탁지 않게 여기죠.
계나는 그런 지명과 자꾸만 마찰을 겪습니다.
지명도 한국에서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국 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계나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지만 지금 처지보다는 나을 것 같은' 뉴질랜드로 떠납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라는 말이 있듯이,
계나는 한국에서 도망치듯 뉴질랜드로 간 뒤 행복할 수 있을까요?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담백하게 계나의 고민을 풀어냅니다.
일단 몸을 던져보기로 결심한 계나, 가족이 중요한 엄마,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남자친구 지명 간의 갈등에서 말이죠.
이 영화는 '행복'과 '보상'에 관해 말합니다.
여기서 이 두 가치는 서로 대립합니다.
계나는 행복을 좇고 싶고, 계나의 엄마와 지명은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찾아올 보상을 기다리며 살죠.
그래서 계나는 그 둘과 극 중 계속 마찰을 겪습니다.
지금 당장의 행복과 언젠가 찾아온다지만 그 정확한 시일을 모르는 보상.
우리는 그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계나는 뉴질랜드에 가서도 계속 고민합니다.
'이 곳에서의 삶이 정말 행복한 걸까?'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겪는 고난들 때문에도 또 고민합니다.
그렇게 다시 계나는 한국에 잠깐 돌아오기를 결심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그 행복은 찾을 수 없었죠.
그렇게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며 극은 막을 내립니다.
이 영화에서는 동화 <추위를 싫어한 펭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추운 게 싫은 펭귄 '파블로'는 다른 펭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얼음으로 만든 배를 타고 더운 지역으로 떠나게 됩니다.
다사다난한 일이 있지만서도, 결국 무더운 날씨의 섬에 도착한 파블로는
'이 곳에서의 생활이 행복한 걸까?', '다시 돌아가는 건 어떨까?'
계속해서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동화의 이야기는 끝을 내죠.
그러나 <한국이 싫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계나는 고민했지만, 결국 자신을 위해 다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계나는 뉴질랜드와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의 삶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행복'입니다.
계나는 '뉴질랜드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가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계나가 행복을 찾다 보니 도착한 곳이 뉴질랜드였던 것입니다.
뉴질랜드는 수단이었고, 여유롭고 행복한 삶, 꿈꾸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그 외국 사회가
계나에겐 삶 속에서의 행복을 찾게 해 주는 길을 열어준 것이죠.
그와 반대로 그의 엄마와 지명도 한국에서 저마다의 행복을 갖고 있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이라 여기는 엄마와,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행복이라 여기는 지명.
그리고 그 둘 또한 계나처럼 한국에서 자신들의 행복을 얻습니다.
각자 저마다의 행복을 찾으니, 서로 행복할 뿐 예전의 마찰은 없습니다.
물론 계나가 그들에게서 한국 사회의 유혹을 느끼긴 했으나, 그는 자신은 뉴질랜드에서의 삶이 더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계나는 그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한국이 싫지 않다는 것도 느꼈겠지만,
그래서 더 뉴질랜드에서의 삶이 자신에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을 겁니다.
이번엔 우리 사회에 한 번 비춰볼까요?
독자님들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
행복, 아니면 보상.
그 둘 사이에서 어떤 것을 더 추구하고 있으신가요?
취업의 저 끝에는 보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니트족' 청년들은 그 보상을 향한 노력과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취업과 고정적인(어쩌면 아닐 수도 있는)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보상'이고 삶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그런 얘기를 던지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한국을 떠나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한국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죠.
이 작품은 장건재 감독님이 번아웃이 왔을 때 제작을 결심했다고 말씀하신 작품인데요.
어쩌면 '그 마음이 잘 표현되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을 이 영화를 바탕으로 다시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어떠셨나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질문 던져보며 글을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