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이 없는 방을 전전하며, 국가 장학금은 신청도 안(못)하는 대학생
작성자 나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순 없어
보증금이 없는 방을 전전하며, 국가 장학금은 신청도 안(못)하는 대학생

소위 말하는 ‘인서울’ 대학에 합격했다. 기숙사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 당시 학교 기숙사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1)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곳, 2) 거리 순으로 선발하는 곳이었다. 후자를 신청했으면 당연히 합격했겠지만, 나는 그 당시 정보가 없어서 1번을 신청했다. 입학 원서를 쓸 때 바로 결정해야 했었고, 기숙사까지 알아보기엔 고3의 나는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방은 구해야 했다. 엄마는 보증금은 떼일 위험이 있으니까, 무조건 보증금 없는 방으로 구하라고 했다. 분명 찾아 보면 있을 거라고 했다. 서울에 방을 구하러 간 건, 함께 합격한 다른 친구와 함께였다. 그 당시 평균적인 원룸 시세는 1000/50, 1000/70 정도였다. 보증금 500만 해도 잘 없었다. 좁아 터진 방인데도 그랬다. 결국 나는 빛도 안 드는 고시원에 들어갔다. 창문도 없고, 방 한가운데는 기둥이 있었다. 그나마 고시원 중에 괜찮았던 건 화장실이 방 안에 있었다는 건데, 화장실 크기나 화장실을 제외한 나머지 방의 면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 물이 방으로 샜다.
그래, 나는 성인이고 모아 둔 돈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부모의 지원이 당연한 건 아니니까. 결국 나는 대학생 시절 내내 보증금 없는 방을 전전했다. 온갖 수소문과 발품을 팔아 그나마 조금씩 더 나은 집으로 옮겨갔다. 그치만 뭐, 상황은 늘 비슷했다. 창문이 생기면 화장실이 공용에 1층이라 방범 등의 측면에서 조금은 무서운 방이었고, 그나마 3층으로 옮겼을 때는 바퀴벌레를 매일 마주하고 이름도 알 수 없는 날벌레들과 함께 살아야 했다. 내가 청소를 자주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하숙방이고, 내 방을 치우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엄마는 시세를 몰랐던 걸까, 돈이 없었던 걸까. 지원을 받는 게 당연한 건 아니지만 서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대학 등록금도, 그 흔한 국가 장학금을 한 번도 못 받았다. 국가 장학금을 신청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했다. 망할 놈의 공인인증서였나, 재산 같은 걸 조회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그것 때문에 굳이 아빠에게 연락을 하기 그렇다고 했다. 정말 망할 놈의 환경이다.
그래서 나는 국가장학금을 한 번도 받지 못하고, 대학 등록금을 정말 말 그대로 100% 내면서 다녔다. 서류상 이혼이 아니어서 무조건 동의를 다 받아야 했는데, 동의를 받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신청을 안 했다. 못 했다? 안 했다? 이건 못 한 걸까, 안 한 걸까. 어쨌든, 나는 실질적으로 한부모가정인데도, 한부모가정으로 누릴(?) 수 있는 각종 장학금, 기숙사 등은 하나도 신청 못했다.

음, 이건 좀 단언하기 힘든 부분은 있지만, 어쨌든 등록금의 출처도 굳이 따지면 나의 용돈과 대외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신용카드를 주고, 거의 딱 내 월세만큼의 현금만 줬다. 신용카드를 쓰면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알 수 있으니까. 가끔 늦은 시간에 카드가 긁히면 연락이 오곤 했다. 등록금은 따로 주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도 좋지만, 스펙도 쌓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돈 많이 주는 대외활동을 찾았다. 기자단, 서포터즈 등을 하면 한 달에 15만원, 한 학기에 100만원 등 소소하지만 그 당시 내 기준에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우수 활동자로 선정되면 돈을 더 줬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후에는 이중전공을 하던 과에서 교수님이 좀 좋게 봐주셔서, 6개월인가 1년간 산학협력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 50 내외의 돈이 통장에 안정적으로 찍혔고, 연구실에 출근하면 끼니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생 내내 돈을 조금씩 모아서, 졸업하고서야 보증금 있는 방을 구할 수 있었다. 학생 때는 모으는 족족 등록금으로 나갔으니까. 문과라 등록금이 이과에 비해 저렴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졸업하고 구한 방도, 원래는 보증금이 1000만원인데 500만원으로 낮추고, 대신 월세를 높여 들어갔다. 현금 흐름 자체만 보면 손해인데, 선택지가 없었다.
월세를 지원받고, 쓸 수 있는 신용카드가 있단 건 누군가에게는 정말 축복받은 일이란 걸 안다. 배부른 소리고, 투정이기도 하다. 그치만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보증금 있는 방에서, 화장실이 있는 방에서 살아 가고, 부모님 용돈 받고, 국가 장학금도 받고, 나머지 돈은 부모님이 내주시고, 해외 여행도 자유롭게 다니고, 그런 걸 보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국가 장학금 신청을 못했으니, 같은 논리로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었다. 친구들이 요새 우스갯소리로 학자금 대출 언제까지 갚아야 하냐고 신세 한탄을 하는데, 그걸 신청할 수 있는 것조차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평범한 가정’의 범주 안에 들 수 있다는 의미 같아 씁쓸해지곤 한다.(물론 그걸 신청할 수 있다고 소위 말하는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 아닌 건 안다.)
그래, 배부른 투정이지만, 어쨌든 배가 아픈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