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성인이 되면 다 이해할 줄 알았다
작성자 나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순 없어
니가 성인이 되면 다 이해할 줄 알았다

엄마는 내가, 26살때인가 28살 때인가, 그 무렵 편지를 쓰며 사과했다. 그 전까지는 계속 엄마는 화를 냈다. 내가 미성년자일 때는 엄마가 공포의 대상에 가까웠지만, 성인이 되고 떨어져 살면서는 말 그대로 무관심의 영역이었다. 서로의 인지부조화랄까?
25살에 처음 취업한 직장은 어느 한 IT기업의 자회사였다. 합격 소식을 알리자 엄마는 “XX기업 본사도 아니고 자회사라고?”라며 날카롭게 말했다. 그때 서러움이 폭발했다. 나도 소위 말하는 더 좋은 기업에 가고 싶었는데, 취업은 참 힘들었다. 어차피 첫 취업준비 시즌이었고, 문과는 대부분 3수 정도는 한다고 하니까, 나도 다시 준비할지 거기 갈지 고민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 말은 비수가 됐다.
뭐, 역시나 엄마의 예상(?)처럼 거긴 가지 말았어야 하는 곳이었나. 인수인계도 없었고, 일은 몰렸다. 상사는 점심 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내 옆자리에서 ‘다음에는 이런 헛똑똑이는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나 그 회사 2개월 반 다녔다. 저 말을 들었을 때는 1달쯤 됐으려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는, 사회생활 5~6년을 해본 지금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내가 화장을 잘 안하고 다니자, ‘화장 안하고 다니면 예전 같았으면 XX임원이 여자가 화장도 안 하고 다니고~라며 혼났을 거다’ 등등으로, 그 임원 대신 다른 상사에게 혼났다. 이 외에도 짧은 기간에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애초에 내가 퇴사하겠다고 했을 때, 팀 리더와 부리더는 ‘XX님 때문에 퇴사하는 거죠?’라며 그 상사를 내 퇴사 원인으로 정확히 지목했다. 이런 상황을 겪자, 차라리 빨리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엄마는 회사생활은 누구나 힘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힘들었다. 엄마는 그정도는 다 버텨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무너져가고 있었다. 2개월 반 다니면서 주말출근도 하고, 막차가 끊길 때까지 일하고, 더 넘어서 밤 12시 30분에 퇴근하기도 했다. 그때 엄마랑 처음으로 소리를 질러가며 전화로 싸웠다.
결국 난 내 뜻대로 회사를 그만뒀다. 엄마의 의견이 더이상 나에게 공포로 작용하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없어지면서, 이제는 그냥 방어해야 할 대상이 됐다. 엄마도 이걸 느꼈겠지. 결국 엄마는 편지로 내게 사과했다. 하지만 포인트가 달랐다. 그리고 다 떠나서 이미 너무 늦었다. 서로의 서운함은 그때그때 풀었어야 했다. 그 묵은 때를 벗겨내기에, 적어도 내가 마음을 쾅 닫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 이후로 10년 이상이 지난 그 시점은 너무도 늦었다.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은 4살 때인데, 4살~15살까지는 사랑을 갈구했고, 그 뒤에는 마음을 닫았는데, 26~28살에 받는 사과는 너무 늦었다.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되면 다 이해할 줄 알았다고 했다.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사랑할 수 없을 뿐이다. 내가 상처 받지 않으려면,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게 중학생 무렵부터다. 이제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지 않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그걸 느끼진 못했다.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지 10년이 넘었는데, 다시 다른 엄마와 딸처럼 같이 여행도 가고, 추억을 쌓자니. 어차피 태어나서 4살 때 이후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여행이, 마음을 닫은지도 10년 지난 지금 가능할 리가 없다.
엄마의 상처를 치유해줄 유일한 사람은 나인 걸 안다. 그치만 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나는 엄마랑 멀어져야 한다. 그래서 참 안타깝다. 그치만 내가 나를 희생해가면서까지, 내 마음을 다쳐서까지 엄마를 치유하기엔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