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치과의사라서, 의료공업사에서 청진기를 샀다
작성자 나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순 없어
아빠가 치과의사라서, 의료공업사에서 청진기를 샀다

나나
@naneunnaya•읽음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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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울 무렵, 엄마는 내 배경을, 이 가족사를 철저히 숨기는 더 강력한 법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무슨 직업 체험 같은 걸 했다. 교실에 각 직업과 관련된 소품을 가져다 놓고 체험하는 거다.
담임 선생님은 그때 각 반의 학부모님 중 의사, 경찰 등이 있으면 그 부모님께 연락해서 관련 물품을 빌려달라고 했었나보다. 우리 집에도 전화가 왔다.
웃긴 게, 아빠는 치과의사라고 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청진기를 빌려줄 수 있냐고 했나보다. 뭐지, 왜지. 이해는 안 간다. 근데 엄마는 더했다. 아빠랑 안 산다고 할 수 없으니, 청진기를 샀다. 의료공업사에서.

아빠가 있었어도, 치과의사면 청진기가 없을 수도 있는데. 오히려 아빠가 없어서, 치과의사인데도 의료공업사에서 청진기를 사야 했다. 그걸 사는 엄마의 심정도 무너졌겠지. 내게도 그랬다. 그 청진기는 오래토록 내 방 서랍에 남아서, 문득문득 내가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