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안 살지만, 엄마랑 사이가 좋지도 않은데요

아빠랑 안 살지만, 엄마랑 사이가 좋지도 않은데요

작성자 나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순 없어

아빠랑 안 살지만, 엄마랑 사이가 좋지도 않은데요

나나
나나
@naneunnaya
읽음 383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아빠와의 관계를 고백하고 나면, 흔히들 하는 말이 ‘어머니가 고생하셨겠네’ 등등, 엄마와 나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기대하고 하는 말들이다. 근데 이 말은 틀렸다. 나는 엄마랑도 사이가 좋지 않다.

아빠가 2살 때 나갔고, 이혼도 아니니, 내가 알기로는 양육비도 주지 않았다. 글에 욕 써도 되나…? 무책임한 놈아.

어쨌든 그래서 엄마는 혼자 나를 키워야 했다. 내가 알기로 엄마는 사대를 나왔지만, 교사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혼자가 된 때부터 이런 저런 걸 시도했다. 처음에는 학원을 다녔던 것 같다. 무슨 학원인진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엄마가 학원에 갈 때, 나는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그 시간은 적지 않았다.

제빵도 배웠던 것 같다. 집에 식빵 기계가 있었거든. 그러고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아동복, 옷 가게였다. 자영업자, 사장님이 됐다.

그 의미는 아주 컸다. 자영업자는 휴일이 없다. 본인이 원하면 쉴 수 있지만, 쉬면 그만큼 매출도 적다. 나를 온전히 볼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모에게 맡겨졌다. 내게 두 이모가 있는데, 그 중 막내 이모가 아예 나랑 엄마가 살던 아파트로 들어왔다.

그리고 엄마는 외할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후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이유는 이러했다. 일단 엄마가 아침부터 밤까지 가게를 봐야 하니 나를 돌볼 수 없다. 그리고 엄마와 내가 살던 곳은, 그 도시에서 비교적 학군이 좋은 곳이었다. 이모에게도 딸이 있으니, 학군이 좋은 곳에 이모와 이모 딸, 내가 살고, 엄마는 거기에 껴서 살면 불편하니 외할머니와 함께 살겠다는 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모부는 주로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셨어서, 내가 이모부와 크게 마주칠 일이 없는 것도 이유가 됐다.

나는 이 일이 엄마와 나 사이 간극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힘들었을 엄마를 이해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식 때부터 엄마와 함께 한 기억이 없는 건, 나에게 너무 가혹했다. 엄마와 함께 한 기억이 없거든. 엄마한테 싸우고, 혼나고 나서 다시 자연스레 풀 시간이 없거든. 엄마를 봐도 주말에 잠시, 외할머니랑 같이 보고, 아니면 엄마 가게에서 엄마가 손님과 이야기하는 걸 보거나 하는 게 추억의 전부였거든.

그 흔한 여행조차 5~7살 때가 마지막이었거든. 그 이후로 엄마는 나를 (키워준 이모 말고 다른) 이모네 가족 여행에 끼워 보내거나,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보내기만 했거든.

엄마는 아빠가 치과 의사였기 때문에, 본인이 나를 못 키웠다는 소릴 안 들으려면 내가 ‘의사 이상 되는 급’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학군 학군 했을 거다.

시간이, 여유가 없었겠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그냥 여행이나 체험학습보다는 엄마와의 시간이었는데.. 엄마가 그 뒤로 여행을 제안한 건 이미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한지 10년이 훌쩍 넘은, 19살 고3 여름방학이 처음이었거든.

그런데 이런 얘기를 주변인에게 쉽게 할 수는 없었다. 아빠랑 떨어져 산다, 이런 건 생각보다 많이 봤다. 예전에는 이런 가족 환경을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젠 아니다. 근데 그럼 대개 나머지, 그러니까 엄마랑 나는 한 편일 거라 생각한다. 가족이 꼭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뉠 거라 생각한다. 집 나간 사람 vs 나머지.

아니다. 적어도 나는, 집 나간 사람에겐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나에게 세상은, 적어도 기억이 있는 한은 처음부터 엄마 뿐이었다. 그냥 나에게 엄마는 아빠랑 별개의 독립된 개체였고, 내가 사랑받고 싶은 존재였다.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지 못하면? 잊어야지.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기대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결국 사랑할 수가 없게 된 거다.

아빠랑 안 산다고, 엄마를 더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