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빠는 아몬드 빼빼로
작성자 나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순 없어
나에게 아빠는 아몬드 빼빼로

아빠에 관해 크게 기억 나는 것은 두 개다. 아몬드 빼빼로와 참관 수업.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5살 무렵 엄마, (아마도) 외할머니와 이모들까지, 다른 지역에 있는 아빠 치과에 찾아갔다. 가서 소리를 지르고 싸웠다. 앞 글에서 언급한 외할아버지와 아빠의 싸움 때문이었을까, 아님 뭐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그 공간이 참 무서웠다. 치과 대기실에 앉아, 내 기억에는 아빠가 쥐어줬던 아몬드 빼빼로를 보며 울었다. 치과의 풍경, 아빠의 얼굴 그런 건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내 무릎 위에 올려진 아몬드 빼빼로, 그것만 기억난다.

유치원 때인가, 아빠 참관수업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전업주부, 아빠는 일하는 게 일반적이던 시절이라 그런지, 아빠 참관수업만 또 주말이더라. 대부분 병원은 토요일에도 여니까, 아빠랑 살았어도 못 갔을 순 있다. 근데 어쨌든 나는 원래도 없으니까, 원래도 아빠가 없으니까 그게 참 서러웠나보다. 조금 더 커서는 아빠의 부재에 대해 나 스스로도 언급하는 걸 금기시했고, 엄마에게도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생은 너무 어렸나보다. 왜 나는 아빠 참관수업 못 가냐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아빠랑 통화를 했나. 사실 잘 기억은 안 난다.
이게 내가 가진 아빠와 대화 혹은 마주한 기억의 전부다. 사실 그래서 별로 그립진 않다. 어릴 때 아몬드 빼빼로를 보면 아빠가 생각나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그립거나,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
원래 누군가가 그립고 슬프려면 그 사람에 대한 인지가 선행돼야 한다. 근데 나는 아빠라는 존재와 함께 보낸 기억, 추억이 없으니 사실 그다지 그립고 슬프지도 않았다. 애초에 아빠의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부재’ 또한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아빠의 부재는 나에게 큰 의미가 아니다. 그저 ‘아빠’라고 부를 사람이 없고, 자꾸만 거짓을 말해야 한다는 것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