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저는 아빠가 없어요
작성자 나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순 없어
그래요, 저는 아빠가 없어요

나는 아빠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 뭐 태어나서 봤겠지. 기억이 없다. 아빠는 내가 2살 때인가, 3살 때 집을 나갔다. 행방불명, 실종 뭐 그런 건 아니다.
아빠는 치과의사다.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 치과를 어디 개원할 것인가를 두고 엄마 아빠의 의견 대립이 있었고, 결국 엄마 의견에 따랐다. 치과는 잘 되진 않았다. 아빠는 엄마 탓을 했고, 그러면서 여러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위치가 잘못이었을 수도 있다. 인터넷에 지금 아빠 치과를 검색하면 나오는 후기, ‘불친절하다’는 말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어쨌든 아빠는 집을 나가서 다른 지역에 치과를 차렸다. 나중엔 다른 여자와 살림도 차렸을지도? 확실친 않지만, 외할아버지가 정말 공교롭게도 기차역에서 아빠를 마주쳤는데, 다른 여자랑 시시덕거리는 걸 보고 둘이 싸워서 경찰서에 갔다. 살림은 아니라도 바람은 폈지, 뭐.
바람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내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내가 30살이 된 아직도. 이혼에 대한 그 당시 편견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정리를 안 하고 있는 것도 의아하다.

그래서 아빠가 있는데, 아빠가 없다. 다행히(?) 기억이 없으니 그립지도 않다. 그치만 19살까지는 나는 아빠가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뭐, 살아 있으니 거짓은 아닌가? 어쨌든 거짓 아닌 거짓을 말하고 살았다.
아빠가 치과 의사라고 하면 친구들은 ‘너네 아빠 치과 가서 치료 받을래’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치과가 다른 지역이라 힘들 거라고 했다. 맞긴 한데, 애초에 같은 지역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빠가 없는 건 철저하게 숨겨야 하는 일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19살까지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아빠가 없다고 처음 말한 건 19살 입시 무렵이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나를 꽤 예뻐해 주셨다. 수시 입학 추천서를 써야 하는데, 잠시 나를 부르셨다. 담임 선생님의 남편도 치과 의사셨다.
“너네 아버지가 학교 다닐 때 운동권이셨다던데, 그런 영향을 받아서 너도 이 학과를 지망하게 된 거니?”

오… 뭐라고 해야 되지? 치과 진료를 비롯한 일반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거짓말로 대처할 수 있는 레파토리가 있는데, 난생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교무실에서 울었다.
선생님, 사실 저는 아빠랑 같이 안 살아요. 이혼은 아닌데, 집을 나갔어요. 이런 얘기를 처음 해봐서 너무 당황스러워요. 울어서 죄송해요. 뭐,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선생님도 당황하셨다. 두루마리 휴지를 주셨던 기억이 있다. 추천서는 어떻게 쓰셨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게 내가 ‘아빠가 없다’고 고백한 첫 번째다. 나는 아빠가 없다. 그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