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짧게 글로 풀어보려고 해요.

저는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남동생과 함께 자랐어요. 어릴 때부터 제 마음속에는 ‘장애 형제자매를 둔 나 같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정 환경에서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어요.

그러다 동생의 영향으로 특수교육과에 진학했고, 지금은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일하면서 장애 유아뿐만 아니라 그 형제자매들도 자주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많은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여전히 정서적 결핍을 안고 있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보다 지원 방안들이 조금은 생겼지만, 제게는 여전히 한참 부족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교사 생활 2년 차 때 결심했어요.
“이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탄탄한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구나. 어릴 때부터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프로그램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에 가야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반대학원 진학을 위한 연수휴직은 교사 경력 3년 차부터 가능하대요.
그래서 올해까지 근무 연한을 채우고, 내년에는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해요.
유아기 비장애형제자매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서요.

🔍 왜 비장애형제자매들을 유아기 때부터 지원해야 할까요?

이들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도, 경제적 관점에서도 모두 훌륭한 자원이기 때문이에요.

1️⃣ 사회문화적 관점

이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형제자매의 장애로 인해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 포용 능력이 월등해요.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에요.) 가정에서 이런 능력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에요. 물론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조직에 들어가더라도 이해심이 깊고 협력적인 경우가 많아요. 이런 ‘인성적 태도’는 어떤 일을 하든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가치예요.

2️⃣ 경제적 관점

비장애형제자매들은 어릴 때부터 ‘내 형제자매가 장애가 있으니까 내가 더 잘해야 한다’, ‘내가 두 사람 몫을 해야 한다’, ‘내가 더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의무감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강한 동기와 책임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되죠.

많은 비장애형제자매들은 형제자매의 장애로 인해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지지와 관심, 안정을 받지 못해요. (그건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겉보기에는 잘 자라는 것 같아도 마음에 구멍이 있는 채로 성장하거나, 오히려 엇나가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온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기능을 하도록 만드는 데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들어요.

하지만 이런 정서적 결핍을 어릴 때부터 채워준다면, 비장애형제자매들이 가진 강력한 심리적 동기와 결합되어 훨씬 훌륭한 사회적 자원이 될 수 있어요.

또한 비장애형제자매들은 진로 선택에서 가족의 영향을 크게 받아요. 그래서 특수교사나 사회복지사, 치료사 등 ‘장애 돌봄’과 관련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전문가의 개별화된 지원을 받는다면, 비장애형제자매들이 특수교육, 사회복지, 치료 분야를 넘어 더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만의 능력을 펼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이 분야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저 역시 특수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가족의 영향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설 수 있는 비장애형제자매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 핵심은 ‘어릴 때부터’예요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해요. 뭐든 조기교육이 효과가 더 좋잖아요. 영어, 악기, 체육 다 어릴 때부터 배우면 더 잘한다고 하잖아요.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일은 그보다 훨씬 섬세해요. 한 번 구멍이 생기면 그 구멍은 점점 커지고, 나중에는 메우기가 어려워지거든요.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성장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제 다른 글을 참고해 주세요.
👉 https://newneek.co/@lemon99/article/36783

물론 이는 개인별, 가족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분명한 흐름이 있어요.

미국에는 비장애형제자매들의 자조 모임인 ‘Sibshop(Siblings Workshop)’이 있어요. 우리나라도 이런 자조 모임을 넘어서, 유아기의 비장애형제자매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언젠가는요.

그 초석을 세워나갈 내년이 정말 기대돼요. 🌿

*대표 이미지 출처: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