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 나뉜 검이 비로소 하나가 될 때: <전,란>

둘로 나뉜 검이 비로소 하나가 될 때: <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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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잇

둘로 나뉜 검이 비로소 하나가 될 때: <전,란>

녹
@n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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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비 잇>의 전석입니다. 오랜만에 비평을 작성해 왔습니다. "수능 한파는 없다", "기후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이다"라는 말들이 반복되고 있지만, 11월의 중순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점에서 추위는 그 몸집을 키우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일교차가 여전히 크니, 옷을 여러 겹 입어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선보일 글은 영화 <전,란>을 다룬 글입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왜군이 조선에 들이닥치자, 국왕인 선조가 백성을 저버리고 피난길에 오르는 배경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사용하긴 했지만, 픽션을 가미했다고 합니다. 덕에 영화는 더욱 드라마틱해진 듯 합니다. 결국 '픽션'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도, 제작자인 감독과 각본가의 생각이 가미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되겠죠. 그런 점에서 <전,란>의 서사를 감독과 각본가가 당시 역사를 어떻게 자신들의 생각으로 펼쳐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 관람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그럼 저와 함께 <전,란>은 무슨 영화고, 어떤 내용을 풀어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시죠.


양극단의 삶에 선 천영과 종려 🏳

<전,란>은 크게 조선 시대의 국왕인 선조(차승원)가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한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는 시대적 배경을 차용합니다. 국왕은 조선을 포기하지만, 백성은 포기하지 않았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활동을 주인공인 노비 천영(강동원)의 서사와 엮어 내용을 전개합니다.

- 천영과 종려의 관계성

노비 천영에게는 주인집 도련님 이종려(박정민)가 있었는데요. 종려는 당시 내노라 할 무신 이극조(홍서준)의 자식으로, 자식을 어떻게 해서든 무과에 급제시키려는 아버지의 야심과는 달리 무예에 눈에 띄는 자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죠. 이에 반해 극조의 집에 종려 대신 회초리를 맞는 노비로 들어온 천영은 무예에 남다른 기질이 있었어요. 종려의 부족한 실력에 매번 회초리를 대신 맞아야 했던 천영이 밤늦게 종려와 대련을 하면서 종려의 실력도 함께 오르게 됐죠. 그렇게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우정을 쌓게 된 둘, 계속되는 종려의 무과 시험 낙방에 화가 난 극조에게 천영이 "대신 시험을 보겠다"며 천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면천'을 요구하죠. 극조는 이를 받아들였고, 천영은 극조와 종려에게 장원급제를 안겨다 줍니다. 하지만 천민을 극도로 멸시했던 극조는 천영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천영은 배신한 아버지를 대신해 칼을 쥐어준 종려에게 "내 검을 갖고 도망가라"는 말을 듣고 도망치게 됩니다. 그렇게 형성된 천영과 종려의 핵심 서사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 내용이에요.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임진왜란 당시 왕이 도망간 조선을 배경으로, 천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천영과 그 덕에 무과에 장원급제한 종려의 관계를 중점으로 풀어가는 서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 영화의 핵심 서사는?

다만 천영과 종려의 관계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생긴 모종의 사건에 의한 오해를 기점으로 급격히 틀어져요. 종려가 천영과 두터운 우정을 쌓았던 것은 사실이나, 종려도 아버지와 어느 정도 같은 사상(신분 차이는 당연한 것이며 그 구분을 흐릴 수는 없다는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영화 속에서 드러내기도 하거든요. 자세한 건 뒤에서 얘기 나눠볼게요.

전쟁과 그 후 기근 속에서 국가를 버린 원수와 달리 나라 곳곳에서 힘을 합쳐 일어난 의병들이 있었어요. 천영은 그 의병들 사이에 속하게 됐고, 국가를 위해 싸우는 세력으로서 왜군과 대항하게 되죠. 그러나 종려는 다른 길을 걷게 돼요. 피난길에 오른 선조를 지키기 위해 무관으로서 같이 피난길에 오르게 된 것. 그 과정에서 선조에게 분노한 백성들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을 베어버리는 역할을 종려가 하게 됩니다. 완전히 양극단의 길을 걷게 된 둘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를 중심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여요. 말 그대로 "둘로 나뉜 하나의 검"이죠. 결말부에 오해를 해소하고 "하나의 검"이 되는 장면도 눈여겨보세요.


<전,란> 관람 포인트는? 🔬

- 천영과 종려의 양극단에 선 삶

앞에서 이야기했듯, 이 영화는 몸종 천영과 주인집 도련님 종려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흘러가요. 그러므로 영화를 이루는 세 파트 '전', '란', '반' 중 '전'에서 일어난 모종의 사건으로 대립하게 되는 둘의 양극단으로 향하는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 관람 포인트로 보여요. 천영은 의병으로 왜군과 싸우고, 종려는 무관으로서 선조를 원망하는 백성들을 막아서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니까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양극단에 서서 평행선으로 달려가는 그들 각자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다시 한 점으로 모이게 되는지를 살펴보세요.

- 화려한 액션 씬

<전,란>에서는 검을 활용한 액션 씬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검 뿐만이 아니더라도, 천영과 함께하는 의병들의 독특한 캐릭터성 속 다양한 무기들의 액션 씬들이 눈길을 사로잡으니 눈여겨보세요.

- 감초 캐릭터들의 활약

다양한 세력과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감초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해요. 왜군의 포로로서 그들의 말을 조선인 등장인물들에게 번역을 해주는 캐릭터부터, 천영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하는 다양한 캐릭터 중 돌팔매를 사용하는 광대 출신의 캐릭터와 도축용 칼을 사용하는 백정 출신의 캐릭터들까지. 저마다 인물들의 배경이 다르기에 드러나는 특징들이 재미있는 요소예요.


<전,란> 썰어 먹어보기 🍽🥩

- 내가 바라본 <전,란>은?

영화에서는 '신분 차이'를 초반부부터 강조해요. 종려의 아버지인 이극조도 신분 구별에 민감했고, 종려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어요. 심지어는 국왕인 선조도 같은 생각을 공유했어요. 양반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양반과 천민은 같은 위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묘사돼요. 그 신분 차이를 깨려 노력하는 이들은 소수의 양반층이 있지만 대부분 천민층에 있던 인물들이었어요. 양반은 고귀하고 천민은 짐승과도 같다는 생각을 대사에서도 종종 드러냈는데, 결국 의병 활동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자들은 양반층이 아닌 자들이었죠. 씁쓸하기도 하고 영화 속 일부분에서는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고자 나라를 팔아먹으려 했던 양반들의 모습이 나오기도 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 슬쩍 엿보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이 신분 차이의 핵심 가치와 이로부터 파생될 수 있었던 천영과 종려의 평행적인 삶의 플롯이 끝까지 힘있게 치고 나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어요. 천영과 종려는 양극단에서 출발해 우정을 통해 한 번 같은 지점에서 교차됐다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다시 양극단으로 치닫는 관계를 가지다 결말에서 다시 접합되며 끝나는 구조를 지니거든요. 그러나 천영이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병 활동을 한다는 '신분 차이'에 관한 가치는 좀 불분명하게 느껴졌어요. 면천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했던 건 종려의 무관 시험을 대리응시 해줬던 때 이후로는 없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불분명했거든요. 영화 도중에 등장하는 '천영의 면천 욕구'를 드러내는 주변인들의 대사가 길잃은 주제 의식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했던 장치로서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당위성이 이미 흐려져 있었기에 그저 지나가는 대사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다시 말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뭐였지?"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어요. "단지 둘의 우정과 오해, 화해를 그리기 위해 신분을 강조했던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했으니까요. 천민으로서 양반들에게 부려지며 수단으로 여겨졌던 이들이 주체가 돼 나라를 지키려 했던 점은 인상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기존의 권력층이 다시 돌아와 그 권력을 휘두르니 그들은 다시 천민으로서 살아가게 되었던 점도 그렇게 느끼게 했어요. 천영과 종려의 관계성을 위해 신분을 활용했다면 그것이 너무 단면적인 활용이었을 거라는 거죠. 엔딩에서도 상류층을 풍자하는 광대극을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아무것도 말끔히 해결된 것이 없이 광대극을 보여주며 이 영화가 끝을 맺는 게 상당히 공허했어요.

서사를 풀어냄에 있어서 클리셰가 많이 작용했다는 점도 아쉬운 점이에요. 국가를 등지거나, 우정을 등지는 모든 이들의 것이 불타버리는 은유적 장치가 흥미로웠는데요. 그런 요소들이나, 해학적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모습들이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전개와 내용 전개를 관객이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 지점들이 꽤 많아 다소 진부하고 흐름이 무거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클리셰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서 본 듯한 전개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는 것은 영화의 몰입도를 해치는 일이니까요. 분명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그것들이 영화의 은유적 장치나 은근히 숨겨둔 이야깃거리들을 덮어버렸다는 인상을 받았으니까요. 아쉽습니다.

"양반과 천민은 대등하다"라는 말로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를 받아 머리가 잘려 길거리에 내걸린 정여립이 '제 손으로 목에 검을 찔러넣은' 행위와 비슷하게 반복되는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분명히 와닿지 못했어요. 이후 왜군의 앞에서 그들의 파멸을 경고한 무당이 장수에 의해 목을 관통당하고, 그 왜군 장수가 천영에 의해 목이 찔려 죽는 장면들이 있거든요. 정여립의 행동이 명예로운 죽음을 의미했던 것이라면, 그 이후 비슷한 죽음들에서도 같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어요.


오늘의 <무비 잇>은 영화 <전,란>이 어떤 내용을 가진 작품이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살짝 썰어 먹어보며 저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여태 분명하게 글의 틀을 정립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오늘 글을 통해서 틀을 더 정돈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느끼실 지가 궁금하네요.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던 영화이기도 했지만요, 이 영화를 더 힘있게 끌어갈 수 있게 해주었던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기도 했습니다. 특히 박정민 배우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보여줬던 연기들은 가히 놀라웠습니다. 선과 악, 어느 한 면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외모가 아니기에 가능했던 연기일 수도 있었겠죠.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왜 매체연기 분야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인지 더욱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란>은 박찬욱 감독이 각본에 참여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었는데요. 그만큼 많은 분이 기대하며 영화를 관람하셨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보고 느끼셨는지 댓글을 통해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작품을 더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다음 글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에게 더 읽기 편한 좋은 글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