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틀 속의 삶을 깨면 안 되는 걸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작성자 녹
무비-잇
정해진 틀 속의 삶을 깨면 안 되는 걸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中
안녕하세요, 전석의 <무비 잇> 두 번째 글입니다.
일주일 정도 되는 시간, 잘 지내셨나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겨울의 분위기를 맞이하는 영화들이 우리를 반길 것 같습니다.
내일인 23일이 되면, 한소희 분이 주연으로 출연하시는 영화 <폭설>이 개봉합니다.
날씨와 시기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합니다.
이번 주에 다루어 볼 영화는 <대도시의 사랑법>입니다.
꾸준히 관객들의 인기를 얻으며 성장세를 보이며 '흥행 역주행'을 보여주기도 했었죠.
저는 저번 주 일요일에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관람했습니다.
처음 가 본 월드컵 경기장의 무게감에 압도된 기분이었습니다.
하필 당일에 월드컵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가 있었던지라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ㅎㅎ
이 작품도 어떻게 보면 영화 <한국이 싫어서>처럼 '정답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 삶에는 정답이 없고, 저마다 각자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만인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정의 내린 정답, 모범 답안이라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작품들이 많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크게 본다면 이 영화는 자유로운 영혼의 여주인공 재희, 성소수자 남주인공 흥수의 좌충우돌 동거 라이프를 그리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도 있으실 터, 스포일러는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줄여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함께 두 주인공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걸어가 보시죠.
🏬 우리의 관계가 '대도시의 사랑'이다
재희는 대학에서 요주의 인물입니다.
"평범"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항상 튀고, 자유로우며 어떠한 틀 속에 갇혀지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대학 MT 가는 날에 스쿠터를 끌고 와 버스 앞을 가로막더니 헬멧을 벗으며 버스에 올라타고, 항상 수업이 끝나면 가장 먼저 달려나가 담배 한 개비를 피우죠. 남자 동급생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점해놓은 것처럼 굴며 저급한 농담들을 나누고, 여자 동급생들은 재희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내심 질투합니다.
그리고 존재감 없는 흥수. 흥수는 사실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입니다. 소위 '벽장'이라고 불리는 커밍아웃을 꺼리고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티가 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이죠. 학교에서는 조용한 학생1, 밤이 되면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다른 사람인 것처럼 유흥을 즐깁니다.
둘은 이태원에서 만납니다. 흥수는 남자인 외국인 전공 교수와 키스를 하다 재희에게 들키고, 자신이 지켜오던 '벽장'의 문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단, 재희에게만. 타인에게 자신의 실체를 밝히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흥수는 재희가 가까이 다가오자 날 선 모습으로 응수하죠. 자신의 약점을 알게 돼서 만만해 보이냐면서요. 그치만 재희에게는 그런 흥수의 성지향성은 "1도 신경쓰이지 않는" 것이었어요.
어쩌면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다름'을 스스로 내보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흥수는 자신의 의지로 밝힌 것도 아닌, 우연히 타인에게 자신의 다름을 공개해버리게 된 셈인 겁니다. 그 덕에 사회가 성소수자에 쏟아붓는 혐오에서 온 피해의식이 흥수를 자극해 날 선 모습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다음 날 학교에서는 흥수와 입을 맞췄던 외국인 교수가 '남자와 호텔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흥수에게는 칼이 목 앞까지 온 듯한 위기감이 다가옵니다. 심지어, 재희를 보며 질낮은 농담을 해대던 무리 중 한 명이 흥수의 얼굴을 보면서 '같이 호텔에 들어간 남자를 닮았다'라고 합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그 순간, 재희가 뛰어들어와 흥수를 위기에서 구해주죠. 친한 척을 하면서요. 그 남자 무리의 관심사는 재희였기에, 과 교수 아웃팅하기 놀이는 금세 잊혀지고 재희와 흥수의 관계로 이야깃거리가 넘어갑니다. 흥수에겐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재희와 흥수의 '공생 관계'가 시작됩니다.
성정체성은 다르지만, 서로 함께 유흥을 즐기고 추억을 공유합니다. 때론 아픔을 나누면서 함께 겪고 성장해나가기도 하죠. 한 번은 재희의 집에 변태 스토커가 찾아들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남자인 흥수가 있으면 좀 더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마음을 전제로 둘의 룸메이트 동거 일기가 시작하기도 합니다.
둘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당연함과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쉽게 말하면 '진정한 남사친과 여사친'의 관계가 맺어집니다.
🙅♂️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건데?
재희와 흥수는 말 그대로 '오답의 표본들'입니다.
재희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는 정조와는 거리가 멉니다.
유흥이 좋고,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게 즐거운 '도파민 좋아' 유형입니다.
남자도 여럿 만나고 헤어지고, 어쩔 땐 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사고도 치죠.
그로 인해 대학에서는 재희를 배척하고 따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악소문을 퍼뜨리기도 모자라 성적 모욕감을 주는 욕설을 입에 담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재희는 그냥 재희의 삶을 즐겁게 살았을 뿐인데,
대학 사람들은 재희를 더럽고 문란하고 생각 없는 사람으로 여기죠.
손가락질하고 뒤에서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는 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요.
적어도 재희는 그들에게 욕하고 해코지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가만히'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
그리고 흥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부류 중 하나인 성소수자입니다.
어렸을 때 집 근처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던 아는 형과 입을 맞추다가 엄마에게 들켰고,
그 뒤로 엄마는 교회의 독실한 신자가 되어 흥수에게 성정체성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죠.
가족에게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흥수는 대학에서 존재감을 지우며 살기 급급합니다.
남자친구가 밖에서 스킨십을 하려 하거나, 남자친구 자신의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한 일로 무지하게 분노하고 심지어는 이별 통보까지 할 정도의 인물입니다. 그만큼 자신이라는 존재가 밝혀지고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인물입니다.
어쩌면 흥수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이라는 존재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흥수는 자신을 가리고 숨겨야 할 '오답같은 존재'로 여기죠.
하지만 재희는 그런 흥수를 이해합니다. 심지어는 '너답게 살라'라고 합니다. 사회가 보낼 시선이 두려운 흥수에게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느냐"라고도 합니다. 재희만큼은 흥수를 믿고, 흥수의 믿을 구석이 되어주는 사람이죠. 그래서 그 둘의 관계가 '공생 관계'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걸까요?
대한민국에서 사회가 정한 틀 속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오답같은 존재' 취급을 받습니다.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고, '이래서 함께 갈 수 없는 거다'라며 어떻게서든 그들의 취약점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사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다 오답 투성이인데 말입니다.
재희는 정조를 지키지 않는 소위 '아메리칸 마인드'를 지녔고, 흥수는 성소수자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존재는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들입니다.
재희는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걸 즐겼고, 흥수는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였을 뿐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갑자기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미없는 혐오를 내뱉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상황 속에서 오답과도 같은 존재는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 욕이나 해대며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그렇습니다.
어쩌면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재희와 흥수는 공존하는데, 사회 구성원은 그들과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재희와 흥수도 몇몇 부분에서 대립하는 존재들인데 말입니다.
재희와 흥수의 관계가 오히려 아름답고 평범한 것처럼 느껴지고, 그들에게 지나치게 위험한 잣대를 내밀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 대한민국의 다양성 문제, 지금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요?
👥 다문화
🏳️🌈 LGBTQ+
🤰임신 중절, 그리고 가족의 형태
🎤 결국, 대도시의 사랑법이 던지는 메시지
<대도시의 사랑법>은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어쨌든 저마다의 삶이니까요.
단순히 삶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오냐 잘됐다'라는 식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혐오를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한 것도 사실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이제는 '공존'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이지 않을까요.
그들을 인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지금 당장 근처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당신의 앞에서만 평범한, 사회가 정한 틀 속에 있는 사람인 척을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절대 알 수 없겠죠. 우리 사회가 그것을 용인하고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 이상은요.
그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삶을 드러내고 살 수 있다면, 그들의 삶은 작은 부분에서부터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바로 '존재를 인정받는다'라는 점입니다.
평범하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분적인 인간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이것은 또한 사회적 소수자뿐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든 '별종'들에게 해당하는 말일 겁니다.
많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무언갈 내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럴 수 있구나'라는 생각 하나만 있으면 되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간단한 생각 한 줄이 우리의 세상을 더 많은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게 될 지도 모릅니다.
어떠셨나요?
이번 글에서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과,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사회적 논의들에 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요즘 사회가 점점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느끼기도 하고요.
대한민국에서 사회가 정해놓은 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삶에서 힘듦을 느끼다보니, 사회적 소수자들이 설 자리도 점점 사라지는 기분도 듭니다.
여러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혼재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여러분들이 소수자와 소수자는 아니더라도 '평범하지 않은 누군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그들을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에 관해 조금 더 빛을 비춰보았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모두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씩 깨져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 볼 시간인 듯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음 영화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그 때까지 건강하시고, 많이 기대해주세요!
내가 나인 채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준 내 20대의 외장하드, 안녕.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