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챠로 뽑고 싶은 것과 뽑고 싶지 않은 것

갓챠 - 랜덤 뽑기 요소가 있는 게임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문방구 앞쪽에 여러 뽑기 기계들이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어서 레버를 돌리면 동그란 플라스틱 캡슐이 나와서 발로 밟으면서 뜯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 동그란 캡슐 안에는 아주 사사롭고 작은 것들부터 다양한 피규어까지 들어 있습니다. 우연히 행궁동을 지나가다 '운세'를 넣어둔 뽑기 기계를 보고 없는 동전이라도 만들어서 해보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뽑기 기계들이 넘쳐납니다.

갓챠에는 '랜덤' 요소가 들어 있어서 뚜렷한 취향으로 구매를 결정하거나, 선택하는 물건이 아닌 물건들을 둥근 캡슐에 넣습니다. 뚜렷한 취향이 있다면 갓챠가 아니라 그냥 그 물건을 구매하니까요. 물론 이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뽑을 때까지 구매를 유도하는 방법도 있고 , 현재 엔터 산업에서 주로 이용하고 있는 방법이죠.

하지만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이 주로 구매가 발생하는 산업에서 이 갓챠를 역이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일본의 '노즈샵'이라는 곳입니다.

향수가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그냥 랜덤으로 뽑을게요.

노즈샵은 일본에서는 팔지 않는 외국의 다양한 향수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향수 편집샵입니다. 오프라인 가게에 가보면 지점별로 약간의 인테리어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있는 구조물과 기계가 있습니다. 바로 거대한 코 조각상과 갓챠기계인데요.

코 조각상은 유명 브랜드만의 향수를 파는 것이 아니라 '향'을 중점적으로 향수를 판매한다는 의미를 담았고, 노즈샵은 이러한 컨셉에 맞게 일본에서는 맡을 수 없는 새로운 향수들을 소개합니다. 오직 코에만 집중하라는 뜻으로 조각상의 코 부분에만 색으로 칠해둔 부분이 재미있는 인테리어였습니다.

저는 일본에 있는 다른 두 지점을 다녀왔는데, 향수를 사랑하는 저라도 외국의 향수 중에 하나만 골라서 사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갓챠를 뽑았습니다. 노즈샵이 예상한 것과 같이 수많은 향수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르기가 어려워서 '노즈샵'에 온 기념으로 갓챠를 선택했습니다. 가격도 1,000엔 안쪽으로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갓차 기계는 플로럴 계열 향수와 노즈샵의 모든 향수 중에서 뽑을 수 있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저는 플로럴 계열을 좋아해서 플로럴 계열 향수만 모아둔 뽑기 기계에서 뽑았습니다.

갓챠 비용을 지불하면 뽑기 기계에 넣을 수 있는 코인을 주는데, 이 코인을 직접 넣는 것부터 고객이 직접 할 수 있어 '갓챠 경험'을 전체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갓챠로 나온 향수는 제가 시향해보지 않았던 브랜드라서, 다시 한 번 노즈샵에 들어가서 해당 향수를 맡아보는 경험까지 꽤나 오랜 시간동안 노즈샵에서 머물렀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었습니다.

향수는 온라인으로 구매하기는 어렵고, 사람들의 취향에 매우 예민하고, 직접 매장에 가서 시향을 하기에도 부담스러운 구매로 이어지기 어려운 제품 중 하나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향수 회사들은 향수 샘플을 무료로 보내주거나, 시향을 할 때 적극적으로 돕는 서비스와 고객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보는 서비스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큰 마음을 먹고 매장에서 시향을 한 뒤에 다른 브랜드와 비교하기 위해 그냥 나설 때 샘플 시향지를 가져가도 시간이 지나면 향이 날라갑니다. 그러면 해당 브랜드의 향이 어떤 향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장을 들른 고객들이 편안하게 시향을 하고, 매장을 나설 때 해당 브랜드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한 노즈샵. 그 고민 끝에 나온 향수 샘플이 들어있는 갓챠 서비스. 가격도 시중 향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싸고, 해당 브랜드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하나의 경험을 선사하고 기념품인 샘플 향수를 집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갓챠를 통해 한 번 더 매장을 둘러볼 수도 있고, 고객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향을 맡게 되면서 자신의 '취향'을 더 넓혀갈 수 있습니다. 향수를 더 친숙하게 만들어준 노즈샵의 갓챠 서비스! 브랜드가 고객에게 어렵게 느껴진다면 한 번 도전해볼 만한 서비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