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소수자성에 대하여

<위키드> 소수자성에 대하여

작성자 떫스데이

움직이는 사람, 움직이게 하는 사람

<위키드> 소수자성에 대하여

떫스데이
떫스데이
@j_dragon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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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는 동시에 외친다. 한 명은 "그녀를 도와주지 마세요.", 다른 한 명은 "나를 도와주지 마세요." 놀랍게도 그녀에게 도움을 주려던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고, 함께 외친 사람은 그녀의 언니다.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있고, 그녀의 아버지는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려 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 위키드 of 유니버설 픽처스. All right reserved.

그녀는 진정 도움을 필요로 하는가(자기 결정권)? 스스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과 능력인가(가능성)? 이동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상황적 맥락)? 등 예민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장애인을 마주하기 쉽지 않은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대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 나의 배려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 주는 것에 복잡해야 하는 거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원하지 않는 도움은 확실하게 도움이 안 된다.

가령 내가 사용할 수 없는 언어 기반의 나라를 여행한다고 상상해 보면 쉽다. 내가 길에 서 있는 데, 누군가 옆에 와서 웃는 얼굴로 알아듣지 못할 말과 행동을 한다면 어떨까. 내가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길을 이미 확실히 알고 있거나 나의 지인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혹은 내가 어리숙해 보여도 이곳을 여행한 적이 있어서 이미 잘 아는 곳이라면 어떨까. 아마 나는 불쾌감을 느낄 것 같다.

나의 배려가 상대에게 친절로 다가가려면 상대의 행동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도움을 원할 때 미소를 머금고서 친절을 행하면 된다.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타고 있으니, 혼자서는 이동이 힘들 것이라는 착각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나의 상태나 존재가 상대에게 연민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로부터 존엄한 사람으로 응대받지 못한다. 이러한 것을 '미세편견'이라고 부른다.

미세편견은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내민하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식당에 들어갔을 때 비장애인에게만 메뉴를 묻는다거나, 병원이 아님에도 보호자는 어디 있냐고 장애인에게 묻는다거나, 장애인과 동행한 비장애인에게 착하다고 칭찬하는 식이다. 미세 편견은 장애인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나타난다.

주인공인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 피부색만으로 차별의 대상이 된 그녀는 매사에 방어적 삶의 태도와 냉소적인 대응을 보인다.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체화된 삶의 무게인 셈이다. 이것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쉬운 이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드러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건강한 내면도 함께 가졌다. 상대가 자신의 피부를 보고 놀라면, 어렸을 때 초록색만 먹지 않았다는 식으로 불쾌한 인식마저 유머로 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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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단연코 파티 장면이다. 글린다는 창피를 줄 목적으로 할머니의 칙칙한 모자를 엘파바에게 준다. 엘파바는 글린다가 선물해 준 모자를 쓰고 나타나지만 적막과 조롱, 멸시만이 그녀를 맞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춤을 춘다. 이에 피예로 왕자는 말한다. "남의 시선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거야." 하지만 엘파바의 진심은 글린다에게 닿았고, 글린다는 엘파바의 춤을 따라 한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소위 '인싸'라 불리는 글린다가 차별과 소수자를 대표하는 엘파바의 춤을 따라 추자 파티에 있던 모두가 엘파바의 춤을 춘다. 소수자의 부르짖음과 행동에는 차갑기만 하던 시선이 순간 바뀌는 것을 보고 참담하고 또 먹먹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조차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겹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사람의 작은 행동만으로 큰 변화가 가능했다. 다만 이것 또한 현실임을 인정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장면에서 세 가지가 필요함을 느꼈다. 첫째는 소수자가 자신의 기본적 권리인 존엄을 내어 보일 수 있는 안전한 공론장, 둘째는 이를 진지하게 듣고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는 태도, 마지막은 마음이 동한다면 이를 지지하는 행동이 그 세 가지다. 글린다는 피예로 왕자의 말에 대답한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어. 안 쓰는 척하는 거지." 힘의 불균형은 현실에서도 확실히 존재하며, 소수자는 신경 안 쓰는 척을 할 뿐이다. 다만 이 영화는 힘의 불균형을 줄이는 적극적인 행동이 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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