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이슈를 보고 이공계가 씁쓸한 이유
작성자 훈스
의대 증원 이슈를 보고 이공계가 씁쓸한 이유
의대 증원 이슈가 뜨겁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렇게 갈등이 길어질지는 몰랐습니다. 처음에 이전과 달리 정부가 굉장히 강경한 태도로 나왔기 때문에 금방 합의를 볼 것 같았거든요. 의대 증원에 대해선 다양한 찬반 의견이 있겠지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라 안타까움이 큽니다.
하지만 의대 증원 이슈를 보고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의대가 인기가 왜 많을까?'
갈수록 빈부 격차는 커지고 있고,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에 갈등까지 커지는 상황이죠.
OECD 기준 한국의 대기업 일자리 비율은 14%. 즉, 압도적 대다수가 대기업이 아닌데 들어가지 못하면 노력 부족, 도태된 자 취급을 하면서 미국이나 유럽 등을 보며 선진국, 차별 없는 곳, 낭만, 여유를 찾던 일부 모순적인 사람들은 이제 블라인드나 SNS 등에서 집과 차를 모두 소유하고 있고 자산이 N억 이상되지 않는 사람은 취급도 안 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죠.
*참고로 미국은 58%, 프랑스 47%, 영국 46%, 스웨덴 44%, 독일 41%로 국내 대기업의 일자리 비중은 정말 낮은 편입니다. 이는 결국 한국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른 의미로는 새로운 대기업이 나타나기 어렵다는 점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이공계 인재들은 어떨까요?
2023년 영재학교 졸업생 10명 중 1명이 의대 및 약대 진학
2024년 서울대 의대 정시에 영재학교 및 과학고의 출신 비율은 약 25%
전체 인원 대비 생각보다 비중이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공계 특성화고를 졸업하고도 의대를 진학한다는 것은 이공계 인재 유출이 확대된다는 의미기도 하죠.
또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의하면 서울 지역에 고3 재학생은 16.7%. 그러나 서울에서는 4년 평균 36.7%가 의대에 진학하고 있으며 이는 학생 수 대비 약 2.2배가 의대로 진학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공계 특성화고가 의대 진학의 디딤돌로 삼는 경우가 많아지자 2022년 입학생부터 의대나 약대를 진학하는 이공계 특성화고 학생들은 장학금과 교육비 등을 환수하기도 했으며, 2024년부터는 고교 재학 중 의대에 지원할 경우 학생부 창의체험활동을 공란으로 기재하는 등에 불이익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반수나, N수생 등 졸업생 신분으로 의대를 진학하게 된다면 이에 대한 제재가 없습니다. 또한, 특성화고 출신들은 의사가 됐을 때 향후 얻게 될 사회적 지위와 평판, 소득 등이 훨씬 크기 때문에 장학금은 돌려주면 그만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즉, 의대 진학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죠. 엄청나게 많은 공부량과 노동 강도와 학비까지. 그럼에도 의대를 진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확실한 보상이 기다리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이공계 연구원 하느니 의대가 낫다는 말입니다. 의사 역시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직업이지만, 국가 경쟁을 살리는 것은 현재 과학 기술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대기업을 떠올리면 보통 삼성을 생각합니다. 그 삼성은 무엇을 하나요? 주력으로 삼는 것이 반도체입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연구자들에 대한 보상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2021년 기준 25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초임 평균연봉은 2021년 기준 4,260만 원. 2020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 3,070만 원. 정출연에 입사한 연구자들은 대부분이 박사 학위이며 의사와 비슷하게 학업의 시간을 쏟았음에도 연봉이 5배 차이가 납니다.
즉, 의대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합당한 보상을 얻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반면, 이공계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 상황에 의대는 증원하고, R&D 예산은 14.7% 일괄 삭감합니다. *16.6% 삭감했다가 조금 증액을 해서 결과적으로 14.7% 삭감
비효율을 혁파하고 수준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연구 성과는 95~99%가 성공. 하지만 이는 도전이 없는 성과
1997년 PBS(연구과제중심제도)가 도입됩니다. 이는 연구과제를 서로 경쟁하고 수주해 연구비를 충당하는 제도인데요. 연구비에는 연구원들 인건비가 포함됐기 때문에 중장기적, 도전적 연구를 하는데 제약이 있습니다.
평가 기준 자체가 100% 성공하지 못하면 지원금을 반납하고, 다음 과제를 수주하는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적당히 성과만 내면 되는 연구과제를 수주하는 문화가 형성됩니다. 즉, 예산을 삭감한다고 문제점이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죠.
한국의 기초연구가 약한 이유기도 합니다.
기초연구는 굉장히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한 분야이며, 기초연구가 탄탄해야 혁신적인 기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기초연구가 밥이 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기초연구 없이 이루어진 혁신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패를 반복하며 나오는 것이 연구성과인데, 실패로 판별되면 ▲연구팀 : 연구를 충실히 하지 못했다. ▲관리부서 : 적절한 연구팀을 선별하지 못했다. ▲펀딩기관: 실패했으니, 예산을 낭비했다는 등의 이유로 비난을 받습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은 평가 제도와 이에 대해 낮은 보상, 대학원부터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기조가 바뀌며 지속적인 연구의 어려움 등이 이공계 학생들의 의대 진학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다행히 퇴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전적 연구에 대해서 성공과 실패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평가 등급 폐지
연구자 기술료 보상 비율 상향
미국 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모방한 방식의 R&D 늘리기 *이것이 핵심이고, 고등연구계획국은 실패를 장려하는 곳으로 혁신적인 기술을 중심으로 개발하고 연구하는 곳입니다. 실패해도 책임을 묻거나 지원을 끊지 않는 곳이죠.
필수 의료 및 지방 의료 격차의 해소는 시민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라며, 다른 연구 분야에 대한 문제점도 조금씩 개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