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리딩 리듬부터 서울야외도서관까지, '리딩 파티' 트렌드의 모든 것 📚

뉴욕 리딩 리듬부터 서울야외도서관까지, '리딩 파티' 트렌드의 모든 것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뉴욕 리딩 리듬부터 서울야외도서관까지, '리딩 파티' 트렌드의 모든 것 📚

고슴이의비트
고슴이의비트
@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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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요즘 어떤 책 읽고 있나요? 저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서 SF 소설에 푹 빠져 있는데요. 지하철에서도, 카페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자주 보이는 것 같아요. 독서가 짧은 유행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한 모습으로 자리 잡는 것 같아서 반갑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 나름 책을 좋아하던 저에게도 생경한 행사들이 점점 자주 보이고 있어요. 알고 보니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책도 읽고, 음악도 듣거나 토크쇼에 참여하는 ‘리딩 파티’더라고요. 

사실 리딩 파티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트렌드예요. 독서 모임 커뮤니티 트레바리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언더시티와 협업해 몽환적인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리딩시티’를 개최하고 있어요. 작년 겨울에는 토스가 자체 기획·제작한 매거진 ‘더 머니이슈’를 중심으로 리딩 파티를 열었죠. 유명 경제 유튜버부터 IT 산업부 기자, 독립서점 대표 등 다양한 배경의 호스트들과 독자들이 서울 중구 장충동의 카페 ‘프릳츠’에 모여서 주목받았어요. 

해외에서는 2~3년 전부터 다채로운 리딩 파티가 나타나고 있어요. ‘내향인들의 행복한 시간(Welcome to Introvert Happy Hour)’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미국의 사일런트북클럽(Silent Book Club)은 전 세계 60여 개 국가에서 운영 중이에요. 영국에서는 더 리더(The Reader)가 카페부터 성당, 병원, 공원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공유하는 독서(Shared Reading)’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요. 이런 변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광화문과 청계천 등에서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서울야외도서관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왜 사람들은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모르는 사람들 곁에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걸까요? 


뉴욕 옥상에서 시작된 소박한 책 읽기 모임, 30개 도시로 퍼지다 📖

2023년 6월, 미국 뉴욕에서 브랜딩 에이전시를 운영하던 벤 브래드버리(Ben Bradbury)는 바쁜 일상 속 공허함을 느꼈어요. 사람들로 붐비는 대도시지만, 온전히 재미와 즐거움만을 위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거든요. 어느 날 벤은 ‘다른 사람들도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룸메이트들에게 책이나 같이 읽자고 가볍게 말을 건넸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룸메이트들의 친구들까지 모여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벤이 살던 건물 옥상에서 모였죠. 잔잔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배경으로, 각자 원하는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 후 헤어졌는데요. 그게 리딩 파티 커뮤니티인 리딩 리듬(Reading Rhythms)의 시작이었어요. 

소박하게 시작한 리딩 리듬은 빠르게 유명해졌어요. 2023년 말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후에는 시드니, 로마, 런던 등 전 세계 도시에서 연락이 쏟아졌어요. 올해 1월에는 뉴욕 공립도서관과 협업해 2000명 넘는 사람들을 모았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는데요. ‘30분 동안 각자 편하게 책을 읽고, 15분 동안 다른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마친다’는 단순 명료한 법칙이 사람들을 끌어모았어요. 장소도 독립 서점부터 양조장, 뉴욕 지하철 플랫폼까지 다양해 ‘책 읽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공략했고요. 

우리나라에서도 이 흐름이 빠르게 퍼지고 있어요. 2025년 9월 제1회 서울 리딩 파티가 블라인드 북 읽기, 랜덤 책 교환 같은 프로그램으로 열리며 처음 주목받았는데요. 이후 더현대서울 리딩 파티에는 출판사뿐 아니라 향수 및 아이웨어 브랜드도 함께하고, 토스나 하이트진로 같은 기업들도 리딩 파티를 마케팅 접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올봄에는 서울야외도서관이 광화문·청계천·서울광장 3개 거점에서 개장하면서 집단 몰입 독서 프로그램 '책멍'까지 운영할 예정이에요. 리딩 파티가 문화 인프라로까지 확장된 거죠.

이런 열풍의 바탕에는 지난 몇 년간 착실하게 쌓인 텍스트 트렌드가 있어요. 해외 틱톡에서 1분 내외의 독서 후기를 공유하는 ‘북톡(BookTok)’이 폭발적으로 퍼진 게 불씨를 지폈죠.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유명 아이돌이 뮤직비디오나 자체 콘텐츠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이면서 팬들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고, 인증하는 행동과 합쳐져 유행으로 발전했죠.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글(Text) 자체가 멋지게(hip) 느껴진다’라는 의미를 담아 ‘텍스트힙’이라고 부르게 된 거고요. 

이제 텍스트힙은 독서뿐만 아니라 자기 감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화로까지 확장됐어요. 자기 책장을 공개하는 '#책장투어', 인상 깊은 구절을 따라 쓰는 '#책필사', 서로 책을 바꿔 읽는 ‘#교환독서’ 같은 해시태그들이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죠. 책이 주인공이 되는 행사도 급성장 중이에요.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은 약 15만 명이 방문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올해에는 굿즈 없이 비문학 도서만 다룬 북페어인 ‘디스이즈텍스트(this is text)’도 흥행하면서 책과 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는 것을 보여줬죠. 리딩 파티도 이런 흐름을 타고 확장 중이에요. 더현대 서울은 4월 초 작년보다 규모를 대폭 키워 45개 출판사와 리딩 파티 시즌 2를 열었어요. 경기도 용인특례시는 ‘도서관의 날’을 맞아 음악 공연, 필사 체험 등을 결합한 행사를 개최했고요. 

많은 미디어와 전문가들은 이런 리딩 파티 트렌드를 ‘숏폼에 지친 Z세대의 디지털 디톡스’, ‘독서가 새로운 자기표현 수단이 됐다’는 방향으로 설명해요. 하지만 텍스트힙이 설명하는 건 ‘책을 읽는 게 멋있어졌다’는 거잖아요. 혼자 카페에서 읽어도, SNS에 인증샷을 올려도 텍스트힙이죠. 그런데 리딩 파티는 그걸 넘어서 굳이 낯선 공간을 찾아가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이처럼 사람들이 책을 계기로 가벼운 관계를 맺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알고리즘도 찾아줄 수 없는 나의 취향을 찾는 모험 🛶

우리가 사용하는 미디어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건 ‘맞춤’이에요. 넷플릭스를 켜면 ‘당신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 뜨고, 유튜브를 열면 어제 봤던 것과 비슷한 영상이 추천돼요. 인스타그램 탐색 탭도 마찬가지죠. 이런 환경에서 오래 살다 보면 묘한 습관이 생겨요.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기 전에 리뷰부터 찾아보고, 별점을 확인하고,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망설이게 되죠. 실패 없는 선택에 익숙해지면서, 예상 밖의 발견을 할 기회도 사라지는 거예요. 내가 선호하는 콘텐츠의 변주만 반복되는 거죠.

리딩 파티는 바로 이런 알고리즘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기회가 돼요. 우리는 리딩 파티에서 어떤 책을 만나게 될지,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예상할 수 없어요. 나를 ‘아는’ 알고리즘이라면 절대 추천하지 않았을 책을 만날 수도 있죠. 여기에 백화점이나 음악 감상 공간 같은 이색적인 환경, 가벼운 음료 등과 함께 책을 읽는다는 이색적인 경험까지 더해지고요.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나도 몰랐던 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새로운 발견을 하는 즐거움으로도 이어지는 거예요. 

리딩 리듬을 창업한 벤도 이런 맥락에서 리딩파티의 가치를 설명해요. 함께 책을 읽는 경험으로 커뮤니티와 연결되는 것이 리딩 파티로 만들고 싶은 진짜 변화라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건 ‘함께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에요.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옆 사람에게 보여주고, 옆 사람이 읽는 책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 그 순간에 내 ‘취향 울타리’ 바깥으로 나아가게 되는 거죠.

이런 유행이 보여주기 식 과시다, 책을 읽는 모습만 일시적으로 소비하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저는 그런 마음으로 리딩 파티에 참여하거나 독서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저도 ‘나도 이런 책 읽는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덜컥 샀다가 책장에 꽂아만 둔 책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 덕분에 철학이나 대만 SF 소설처럼, 평소였으면 접할 일 없었던 세계를 알게 됐어요. 그런 맥락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남긴 말도 생각이 났고요. 

리딩 파티에 가는 사람들도 비슷해요. 힙해 보이고 싶어서 참여해도,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찍고 싶어서 가도 문제 될 게 없어요. 알고리즘이 절대 보여주지 않았을 책을 만나게 되니까요. 이전의 나였으면 마주칠 일이 없을 책을 고르거나, 옆 사람의 책에 시선이 가는 순간. 그때마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내가 직접 취향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게 돼요. 동기가 허영심인지 호기심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죠.

결국 리딩 파티가 제공하는 건 단순히 ‘같이 모여서 책을 읽는다’는 경험이 아니에요. 내가 알고리즘이 설계한 취향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왔다는 걸 깨닫고, 그 바깥을 직접 두드려 보는 경험이에요. 독서 자체보다도 무엇을 읽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자리에 앉는 기회가 되기에 더 값진 시간이 되는 것 아닐까요?


[비욘드 트렌드] 에디터의 관점을 담아 지금 우리의 심장을 뛰게하는 트렌드를 소개해요. 나와 가까운 트렌드부터 낯선 분야의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비욘드 트렌드에서 트렌드 너머의 세상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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