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전쟁49부터 관악산 개운 산행까지, 사람들은 왜 운세에 진심이 된 걸까?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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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전쟁49부터 관악산 개운 산행까지, 사람들은 왜 운세에 진심이 된 걸까? 🔮
하루가 다르게 따뜻해지는 게 느껴지는 4월, 뉴니커는 어떻게 봄을 맞이하고 있나요? 저는 산책을 좋아해서 집 근처 공원을 매일 걷곤 하는데요. 최근 들어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는 뉴스가 자주 보이더라고요. 알고 보니 단순히 날이 좋아서 오르는 게 아니었어요.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서였죠. 특히 관악산은 평일에도 사람들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대단해요.
‘좋은 기운 받으러 산까지 갈 일인가?’ 싶었는데,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요. 올 2월 디즈니플러스 코리아가 방영한 ‘운명전쟁49’는 공개 12일 만에 역대 최다 시청 기록을 경신했죠. 점신, 포스텔러, 천명 등 사주팔자를 다루는 서비스들의 성장세도 가팔라요. 생성형 AI로 미래를 점쳐 보는 게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 2025년 3월 챗GPT 스토어에서도 ‘운세박사 GPT’, ‘운세박사 타로 GPT’가 각각 라이프스타일 부문 글로벌 10위, 19위를 기록했을 정도죠.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천체 현상을 관측해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술, 타로를 주식 투자에 활용하는 Z세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요. 틱톡에서는 #타로리딩(#tarotreading) 해시태그 조회수가 120억 회를 기록했고, 유튜브에서는 타로 카드 중 하나를 골라 거기에 맞는 조언을 듣는 ‘픽어카드(pick-a-card)’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죠.
사실 사주나 타로, 점성술 같은 것들의 역사는 오래됐어요. 비과학적이고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항상 사람들 곁에 함께하는 존재들이었죠. 그런데 사람만큼 똑똑한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시대, 사람들은 왜 다시 운세에 의지하는 걸까요?

AI 시대 사람들은 각자 방식으로 자기 미래를 살핀다

사주와 타로에 대한 관심은 데이터로도 드러나요.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사주나 타로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대 68.0%, 30대 67.5%였어요. 온라인 교육 플랫폼 클래스101에서도 라이프스타일 인기 검색어 1위가 ‘타로 클래스’였고, 수강생의 60% 이상이 2030세대였죠. 유튜브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요. 작년 10월 기준 운세 관련 채널은 총 3039개였고, 그중 타로 채널만 약 2100개에 달했거든요.
이런 변화는 AI가 등장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어요. 과거에는 점집을 방문하거나 유료 앱을 써야 했지만, 이젠 인공지능에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만 입력하면 되니까요. 업계에서도 사주와 명리학이 의외로 AI와 조합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관상이나 사주, 명리학 모두 수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한 통계 기반이어서,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AI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거죠. 사용자 입장에서도 더 편리해요.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기가 더 쉽거든요.
주목할 건 AI에게 운세를 물어보고,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산을 오르는 목적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재물운, 결혼운 등 사람들이 바라거나 궁금해하는 것들이 몇 개의 큼직한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경향이 변하고 있어요. 대인관계부터 경제적 투자, 취업이나 시험,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걱정, 그 외 사소하지만 말하기 힘든 고민거리까지. 이제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이유로 명리학이나 관상에 관심을 가지고, 오라 리딩(aura reading) 같은 새로운 경험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어요.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나를 더 잘 알고 싶은 욕구’를 꼽아요. 2024년 대학내일 20대연구소 조사에서 1020세대의 43%는 내 성향과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운세를 본다고 응답했어요. MBTI보다 더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나의 마음을 알아가고 싶은 거죠. 코로나19에 이어 AI의 등장과 전쟁으로 인한 세계적인 혼란까지. 바람 잘 날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꼼꼼하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존재를 원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설명들에서 빠진 게 있어요. ‘왜 지금인지’가 설명되지 않는 거죠. 생각해 보면 세상은 평화로울 때보다 혼란스러울 때가 훨씬 많았어요. 내 미래가 불확실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AI까지 등장한 지금, 여러 방식으로 자신과 미래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걸까요?
불안이 기본인 시대, 내 기분을 붙잡아주는 건 사주와 운세

운세를 알아보고 타로로 점을 치는 것들은 결국 내 ‘기분(feeling)’과 관련이 있어요.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명확히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쾌함 등을 해소하기 위한 거죠. 여기서 말하는 기분은 감정과는 조금 뜻이 달라요. 감정이 어떤 자극에 대한 순간적 반응이라면, 기분은 ‘마음에 흐르는 기운(氣)의 상태(分)’를 가리키거든요. 그렇기에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내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무엇 때문에 흔들리는지 관찰하고 곱씹는 시간이 필요하죠. 영단어 ‘feel’도 ‘손으로 만지다, 감지하다’라는 뜻의 고대 영어 ‘fēlan’에서 기원했다고. 무언가를 직접 만져봐야 제대로 알 수 있듯, 마음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살펴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유와는 거리가 너무 멀어요. 알고리즘은 24시간 내내 ‘당신에게는 이게 부족하다’며 불안감을 자극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만들고, 당장 뭔가 해야 한다고 독촉하죠. AI가 일을 대신해 줄 거라는 말들이 많지만, 정작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생산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요. 인공지능이 정말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드는 게 맞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고요. AI 전문가들조차 버거워할 정도로 빨라진 시대, 사람들은 당장 오늘 어떻게 보냈는지조차 돌아보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어요. ‘내 삶을 살고 있다’는 주도권을 손에 쥘 수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현재 유행하는 운세 관련 콘텐츠들은 모두 ‘직접 경험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내 손으로 타로를 뽑아보고, 두 다리를 움직여 산을 오르고, 싱잉볼을 어루만지며 온몸으로 음파를 느끼죠. 화면을 넘기는 게 아니라 몸으로 감각하는 시간이에요. 끊임없는 바깥세상의 자극에 무기력하게 휩쓸리지 않고, 내가 직접 내 미래를 살펴본다는 주도권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거죠. 내 기분을 조절하기 위해 물건을 사는 ‘필코노미(feel+economy)’도 그 결과라고 볼 수 있고요.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 지도자나 엘리트 계층도 사주를 많이 보는 상황에서, 굳이 젊은 세대에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다"면서 "일종의 게임처럼 소비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어요. 다만 운세가 가벼운 놀이로 소비될수록 주의할 점도 있어요. 타로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이 2년 만에 65곳에서 105곳으로 늘어나는 등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소비자가 상담의 질을 판단할 기준은 아직 없거든요. 가볍게 즐기는 것과 맹신하는 것 사이의 선은 결국 각자가 그어야 해요. 중요한 건 사주나 타로가 내 삶의 답을 대신 정해 주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추고 나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느냐는 거겠죠.
관악산에 오르고, AI에게 사주를 묻고, 싱잉볼 소리에 눈을 감는 2026년의 풍경. 어쩌면 사람들이 진짜 찾고 있는 건 미래의 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내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일지도 몰라요. 뉴니커에게는 그런 감각을 되찾아주는 순간이나 루틴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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