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는 왜 한글 폰트 ‘젠 세리프’를 만들었을까? 케이팝과 예술이 만날 때 벌어지는 일 🎤🎨

제니는 왜 한글 폰트 ‘젠 세리프’를 만들었을까? 케이팝과 예술이 만날 때 벌어지는 일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제니는 왜 한글 폰트 ‘젠 세리프’를 만들었을까? 케이팝과 예술이 만날 때 벌어지는 일 🎤🎨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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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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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오드아틀리에

지난 여름, ‘배달의민족’ 앱에서 은근한 변화를 눈치챈 사람 있나요? 앱 출시 15주년을 맞아 배달의민족의 모회사인 우아한형제들이 리브랜딩을 하며 ‘워크체’를 공개한 건데요. 오랫동안 앱뿐 아니라 광고·사이니지·사내 문서 등에 공식 폰트로 쓰여왔던 1960~1970년대 간판 글자를 모티프 삼아 제작된 ‘한나체’를 대체하는 결정이었죠. 우아한형제들의 저서 ‘밥 벌어주는 폰트’에 따르면, “강렬한 개성과 페르소나를 가진 한나체가 브랜딩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해 한글날을 기념해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인 제니가 한글 글꼴 ‘젠 세리프’(ZEN SERIF)를 공개했다는 소식을 달리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는 제니라는 10년 차 아티스트의 브랜딩에 기여하는 확실한 방법이 되었으니까요. 특히 케이팝이 듣는 음악을 넘어 ‘보는 음악’이 되었다는 점에서, 케이팝과 아트 분야의 협업은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여겨지기도 하고요. 오늘은 다양한 협업 사례를 중심으로, 요즘 케이팝과 아트의 관계를 살펴봅니다.


제니의 한글 서체 ‘젠 세리프’: 글로벌 팬들에게 전하는 제니의 세계 🪭

이미지 출처: 오드아틀리에

‘젠 세리프(ZEN SERIF)’는 제니가 설립한 1인 기획사 OA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제니는 기획 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그동안 토스·하이브 등 여러 기업 전용 서체를 개발한 ‘이도타입’이 이를 구현해냈죠. 누구나 서체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한 동시에, 올해 상반기에 출시된 인스타그램 숏폼 영상 편집 앱 ‘에디트’에도 서체를 등록해서 글로벌 크리에이터들에게도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놀랍긴 했지만 그동안 제니가 보여준 행보를 살펴보면 의외는 아니었어요. 연초에 공개된 ‘ZEN’ 뮤직비디오에서 제니는 전통 투각문 양식과 신라시대의 금관에서 영감을 받은 상의, 살창고쟁이(조선 시대의 여성용 속바지)를 활용한 하의 등 한국 복식과 장신구 등을 소화하며 눈길을 끌었죠. 이어 4월에 공개된 'Seoul City' 뮤직비디오에서는 자개와 옻칠을 더한 상의, 댕기를 모티브로 한 하의를 착장해 전통적 요소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중세부터 사용되어 온 서양의 전통 서체인 ‘블랙레터’와 한글을 과감히 결합한 ‘젠 세리프’(ZEN SERIF)는 과감한 선택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500여 년 전, 세종대왕은 당시 백성들이 난해한 한자 대신 더 쉬운 수단으로 자신의 뜻을 잘 표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원리 등을 설명한 해설서에서 조선 전기의 학자 정인지는 한글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28자로 전환이 무궁하며, 간단하지만 요긴하고, 정밀하지만 소통이 쉽다. 그러므로 똑똑한 자는 반나절이면 깨우칠 수 있고, 우둔한 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실제로 열흘 만에 한국어를 마스터하는 건 어림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외국인이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2025년 기준 국내 대학교나 어학당 등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30만 명을 돌파했고, 외국인 유학생의 기업 채용·국내 체류 자격 심사 등에 활용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 지원자 또한 50만 명을 넘긴 것처럼요. 제니는 젠 세리프에 “세종이 누구나 쉽게 글자를 배우고 쓸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뜻을 이어가면서도 “글로벌 팬들에게 한글의 미학과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는 취지를 담았다고 해요. 이는 전 세계의 팬들과 소통하려는 제니만의 방식이면서도, 그동안에도 음악을 통해 한국적 정서를 꾸준히 담아왔다는 점에서 아티스트의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RM의 SFMOMA 기획전: 케이팝 아티스트의 큐레이터 데뷔 🎨

이미지 출처: 하이브엔터테인먼트

1년 전에 미리 공개된 티저가 있다? 그건 바로 그룹 BTS의 멤버인 RM이 2026년 10월부터 2027년 2월까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기획전을 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RM은 SFMOMA의 아메리카 카스티요 큐레이토리얼 프로젝트 매니저, 김효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와 전시를 공동 기획해 자신의 소장품 20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다채로운 컬렉션 중에서도 한국 근현대 미술계의 주요 작가인 윤형근·박래현·권옥연 등의 작품들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그는 이렇게 큐레이팅의 의도를 전했습니다.

2022년, 뉴욕 타임스는 이미 뮤지션이 아닌 “예술 후원자(Art Patron)”로서의 RM에게 초점을 맞춘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 인터뷰에서 RM은 2018년 월드 투어 중 들른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 클로드 모네와 조르주 쇠라의 작품을 관람한 게 예술에 푹 빠진 계기였다고 밝혔고요. 이후 2022년 발매된 첫 솔로 앨범 ‘Indigo’에서는 고 윤형근 화백의 습작인 ‘청색’을 앨범 커버에 담았습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미술관 방문 인증샷을 여러 번 올리고, 자체 콘텐츠로 ‘미술관 VLOG’를 찍은 결과, 글로벌 팬들은 ‘RM 추천: 서울 아트 투어’라는 코스를 따라 미술관 순례를 즐겨보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등의 아트페어를 통해 아시아 미술 네트워크의 주요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국내 언론사에서는 최근 침체기를 겪고 있는 미술 시장이 RM의 전역에 맞추어 ‘RM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죠. 그러던 중 RM은 삼성 아트 TV의 글로벌 앰버서더 자격으로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 페어 ‘아트 바젤 인 바젤 2025(Art Basel in Basel 2025)’에 참여하는 모습도 보여주었고요.

그 외에도 RM은 예술 작품의 보존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해왔습니다. 전 세계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 특히 회화 작품의 복원과 활용을 위해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부하고, 절판돼 구하기 어려운 미술 도서 제작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에도 후원했고요. 자신이 소장한 권진규 조각가의 ‘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대여해주기도 했죠. 

케이팝은 철저한 상업 예술이고, RM은 그 최전선에 있는 스타입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지키고 유지할 가치가 있음에도 최소한의 돈조차 돌지 않는 분야를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지켜내 왔죠. 그런 시간이 쌓여서 사람들은 새로운 앨범에 실릴 곡들의 노랫말을 쓰고, 앨범 전반의 콘셉트를 잡아나가는 아티스트의 음악 세계를 조금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정세랑, 김초엽, 그리고 케이팝: 문학과 케이팝의 만남이라는 치트키 📓

이미지 출처: (좌)SM엔터테인먼트, (우)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이처럼 아티스트 중심의 콜라보 사례가 나오기 전에는, 음악과 다른 분야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케이팝 기획사들의 수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먼저, 식물 세밀화가이자 원예학 연구가로 활동하는 이소영 작가는 그룹 ‘웨이션브이(WayV)’의 미니 5집 ‘Give Me That’의 Collection 버전 커버​​를 작업했는데요. 이 앨범에는 곤충 표본 액자 뒷면의 라벨지, 기록자의 옛 사진 필름, 채집가의 노트 등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이소영 작가의 제작기에 따르면, 단지 도감의 형식이나 과학 일러스트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 생물학 일러스트를 기록하는 과정과 동일하게 표본과 같은 형태의 목업이 제작되어 그림 작업의 토대가 되었다고 해요.

그런가 하면, 그룹 ‘투어스(TWS)’의 데뷔 앨범인 미니 1집 ‘Sparkling Blue’의 위버스 버전은 천계영 만화가와 협업했습니다. 1996년부터 연재되었던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의 주인공 강현겸과 채지율 캐릭터의 일러스트가 약 28년 만에 원화로 제공되어 앨범 커버에 배치된 경우였죠.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는 청량을 메인 콘셉트로 한 신인 보이그룹을 선보이면서 “강현겸처럼 순수하고, 무해하며, 솔직발랄한 감성을 담고 싶었다”라는 콜라보의 의도를 전했고요.

이미지 출처: (좌)스타쉽엔터테인먼트, (우)하이브엔터테인먼트

케이팝 팬들이 문학과 음악의 콜라보를 무리 없이 받아들인 건 2022년이었습니다. ‘아이브’의 'After LIKE’ 발매 전 공개된 트레일러 영상 ‘I’VE SUMMER FILM에는 “우리가 싸우고 울어버릴 땐 진짜 밉지만 / 그럴 때도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 무릎엔 흉터가 있어도 마음엔 없기로 해”라는 장원영의 내레이션이 흐르는데요. 정세랑 작가 특유의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도 어딘가 산뜻한 정서를 알아챈 이들이 많았죠. 트레일러 영상을 연출한 노상윤 감독 또한 “다정하면서도 용감한 여성 캐릭터를 그려낸 정세랑 작가가 아이브 멤버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잘 표현할 것 같았다”라고 했고요.

같은 해, 누적 판매량이 116만 장에 달하는 ‘르세라핌’ 미니 2집 ‘ANTIFRAGILE’에는 소녀들의 판타지 모험담을 담은 오리지널 스토리 ‘크림슨 하트’의 프롤로그 소책자가 실려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초엽 소설가가 집필했는데요. 당시 하이브 스토리사업본부 스토리텔링실 실장은 “한계에 도전하며 나아가는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는 김초엽 작가의 기존 작품 세계가 ‘크림슨 하트’의 중심 메시지와 부합하기 때문에 좋은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협업했다”라고 전했죠. 이후 ‘크림슨 하트’의 본편은 각각 웹툰과 웹소설로 공개됐습니다.

하이브는 2021년 ‘스토리사업본부’를 신설해 오리지널 스토리를 발굴해 왔습니다. 웹툰, 웹소설,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를 케이팝 아티스트의 앨범, 음악, 뮤직비디오, 콘서트와 연동해 오며, 음악적 메시지와 연결된 콘텐츠들을 제공했죠. 해당 본부는 “만들어진 스토리에 아티스트를 캐스팅하는 형식”으로, 케이팝 팬이 아닌 사람도 즐길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연스레 케이팝으로 유입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네이버웹툰이 하이브의 IP를 웹툰이나 웹소설로 제작하는 슈퍼캐스팅 프로젝트가 지속됐고요.

이미지 출처: 빌리프랩

이러한 시도들이 고르게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 중 그룹 ‘엔하이픈’과 협업한 웹툰 ‘다크문: 달의 제단’은 누적 조회 수 2억 뷰를 돌파했습니다. 이 웹툰은 2022년 연재 시작 후 총 10개 언어로 번역됐는데요. 일곱 명의 뱀파이어 소년과 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하이틴 로맨스 장르로서 뱀파이어 장르물을 좋아하는 웹툰 덕후들을 노렸습니다. 또한, 엔하이픈이 데뷔 앨범 타이틀곡 ‘Given-Taken’부터 주요 요소인 뱀파이어 콘셉트를 활용했다는 일관성, 엔하이픈이 부른 ‘One In A Billion’과 ‘CRIMINAL LOVE’ 등의 OST를 웹툰 감상과 동시에 들을 수 있도록 네이버웹툰 플랫폼에 적용된 감상 환경이 시너지로 작용하기도 했죠.

 

오늘은 제니의 ‘젠 세리프’(ZEN SERIF) 출시와 RM의 SFMOMA 기획전 예고를 중심으로 케이팝과 아트 분야와의 연결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케이팝 아티스트가 음악만으로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 음악과 다른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런 시도를 여러분은 어떻게 즐기고 있나요? 예술 문화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뉴니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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