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세·타로는 어쩌다 2025년 핵심 트렌드가 됐을까?: MZ세대가 무속에 진심이 된 이유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운세·타로는 어쩌다 2025년 핵심 트렌드가 됐을까?: MZ세대가 무속에 진심이 된 이유 🔮

2025년 3월 출간 후 반년도 채 되지 않아 17만 부 이상 판매된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표제작은 베테랑이지만 ‘신빨’이 다 된 무당과 이제 막 신내림을 받은 신입 무당의 묘한 신경전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성해나 작가는 어느 날 신당동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점집 거리에 들어서게 됐고, 이후 신내림을 받은 지 꽤 되었다던 무당에게 점사를 받고 보니 실은 엉터리(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혼모노’(本物, 진짜)가 아닌 ‘니세모노’(偽物, 가짜))였던 경험을 기반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해요.
이는 작가만의 경험은 아닐 거예요. 연말연초마다 신년 운세를 보는 뉴니커들도 있을 텐데요. 운세는 기대감, 찜찜함, 안도감, 근거 없는 낙관 같은 것들을 동시에 불러일으키잖아요. 그렇게 복합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이 덧대어지기 마련이고요. “어떤 이들은 점을 집착하듯 믿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완전 사기로 여기잖아요.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진짜와 가짜를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죠.”라는 작가의 인터뷰처럼요. 오늘은 이 인터뷰를 힌트 삼아, 최근의 무속 트렌드는 무엇인지, 무속 콘텐츠가 관심을 얻고 있는 이유에 대해 살펴볼게요.

무속이 Z세대 유행이라고?: “한국의 젊은 무당들이 SNS를 통해 전통을 되살린다”

우리나라 대중문화에서 무속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건 2014년 국가무형문화재 만신 김금화의 전기 영화 ‘만신’부터였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새마을 운동까지 대한민국 역사를 관통하는 개인의 삶을 통해 무속의 변천사를 보여주며 호평을 얻었죠. 10년 뒤인 2024년에는 묫자리와 풍수지리, 무속인을 소재로 한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같은 해, 무속인들의 의식 과정을 따라가 보며 한국의 샤머니즘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샤먼: 귀신전’은 역대 티빙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중 유료 가입자 수 1위에 등극했고, 무당, 역술가가 출연한 SBS 연애 프로그램 ‘신들린 연애’도 관심을 모았죠. ‘선산’, ‘귀궁’, ‘견우와 선녀’ 등 무속인이 주요 등장인물로 출연하는 드라마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중이고, 아이돌 퍼포먼스 무대의 전신이 ‘악귀의 혼을 달래는 굿’이었다는 설정을 가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빼놓을 수 없을 거예요.
최근 유난히 무속 관련 콘텐츠가 급증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어디에나 무속인은 늘 있었고 이는 현실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경기도에는 약 3500개, 서울시에는 약 2800개의 점집이 분포되어 있는데요. 서울시의 점집 밀집도를 다시 역세권 중심으로 살펴보면 논현역·역촌역·신당역·미아사거리역·홍대입구역 순입니다. 주로 유동 인구가 많고 돈이 몰리는 곳, 6·25전쟁 직후 보릿고개 지역처럼 역사적으로 서민의 한이 서린 곳, 북한산처럼 영험한 산과 가까운 곳에 점집이 몰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무속은 비대면 시대에 빠르게 적응한 대표적인 업계입니다. 외신 로이터통신은 20대 무속인 이경현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쌍문동 애기선녀TV’를 조명하며, “한국의 젊은 무당들이 SNS를 통해 전통을 되살린다”라고 분석한 바 있고요. SNS는 무속인의 셀프 브랜딩 창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갓 신내림을 받은 초보 무속인을 뜻하는 ‘애동제자’를 인스타그램에 검색하면 약 8만 3000개의 게시물이 나오는데요. 이들은 SNS를 통해 신규 개업을 알리고, 고객의 굿 후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비대면 서비스를 위한 모객에 힘쓰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코로나 이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견딜 방법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은 직접 미래를 보는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5년 사이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에서는 사주·타로·명리학 관련 강의가 증가했는데요. 누구나 일생일대의 신내림 없이도 공부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는 속성 학습 커리큘럼이 공유되기 시작한 거죠. 온라인에서 활약하는 무당이 급증하자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연애·구직·미래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근거 없는 연예인 사주팔자와 미래 예언 등의 콘텐츠로 조회 수 장사를 하는 ‘자칭 무속인’들의 등장으로 무속 업계 전체가 신빙성을 잃는 역효과도 발생했습니다. 기존에 활동 중이던 직업인으로서의 무당인들에게는 그들과는 달리 자신의 신통한 효력을 증명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고요.
일상 속 요소가 되는 무속 콘텐츠: “내가 오하아사 꼴찌라고?”

무속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역효과가 생기기도 했지만, 불확실한 운명을 점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이 낮아졌다는 게 더 중요할 거예요. 이를테면, 요즘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을 줄여서 “오하아사 꼴찌”라고 부르는데요.
매일 오전 6시, 엑스 계정 ‘아침별점(@Hi_Ohaasa)’에는 한국인 이용자가 번역해 준 오늘의 오하아사가 공개됩니다. 일본의 장수 아침 방송 ‘오하요 아사히데스!(おはよう朝日です)’의 줄임말인 ‘오하아사(おは朝)’는 황도12궁을 토대로 오늘의 운세와 행운 아이템을 알려주는 점성술 코너에서 유래했는데요. 예로부터 일본인들에게는 드라마 주인공이나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의 별자리 운세를 재미로 점쳐보던 문화가 있었다고 해요. 이제 많은 한국인도 매일 자신의 별자리 운세를 챙기는 건 물론이고, 나아가 덕질하는 최애의 별자리 운세까지 확인합니다. 점괘에 집착하기보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는 방식으로 운세를 대하기 시작한 거죠.
오하아사 열풍 전에는 부적 굿즈가 있었습니다. 특히 일러스트레이터 최고심이 제작한 ‘모든 일이 잘 되는 부적’, ‘용기가 생기는 부적’ 등의 구매를 위해 2시간 이상 웨이팅을 감당해야 하는 등 팝업스토어의 인기가 뜨거웠죠. 사람들이 대표적 무속용품인 ‘부적’을 통해 강한 신념이나 신앙을 드러내기보다는 이를 점점 놀이처럼 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후 ‘네잎클로버 키링’, ‘액막이 명태 키링’, ‘소원 팔찌’처럼 나와 가까운 사람의 일상에 행운을 더하는 바람을 담은 굿즈도 다양하게 출시 됐고요.
한편, 요즘 초등학생들은 선생님과 ‘걱정 인형’을 만들며 진로 상담을 하기도 해요. 고민이 많을 때 이 인형을 베개 아래 베고 자면 다음 날 아침 모든 고민이 씻은 듯이 사라질 거라는 과테말라의 미신이 담겨 있는데요. 최근 전국 교육지원청에서는 초등학생 교사들을 대상으로 타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빨리 마음을 열고 적절한 도움을 청할 수도 있지만, 청소년이 비과학적인 운세를 맹신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끝없이 무속을 찾아 기대는 이유: “그러나 친구는 내 하소연을 세 번쯤 들으면 피곤해했다”

무당은 신령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중재자입니다. 샤먼·심령술사·주술사·마법사·영매·마녀 등 시대와 관점에 따라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죠. 3년 차 무당 홍칼리의 인터뷰집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에서 무당 ‘무무’는 왜 자신이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회건 역사의 매 순간에 무당 혹은 무당 같은 존재가 있었어요.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있는 사람,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 무당을 찾아가 도저히 다른 데서 풀 수 없는 한을 풀었고요. 무당의 존재 이유는, 그들이 한을 푸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우는 일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어요.” - 홍칼리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견우와 선녀’ 속 신어머니 동천 장군 캐릭터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무당이 하는 일이 뭐야? 굿이랑 부적은 수단이야. 본질은 마음이야. 상처받은 마음을 잘 살펴주면 순리대로 돌아가게 돼 있어.”
무속 콘텐츠에는 늘 우는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무속인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신령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요. 어느덧, 진짜와 가짜 사이를 구분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옵니다. 신빨이 좋은 무당이든 신통치 않은 무당이든, 그가 괴롭고 사연 많은 누군가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들어주는 걸 보면서 시청자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되죠.
이런 맥락에서 최근 AI 무당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챗GPT에 생년월일, 태어난 시각을 입력하면 나의 연애운, 재물운 등을 알 수 있는데요. 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 운세를 비인간을 통해 확인하려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해 한 패션지의 칼럼니스트는 “그러나 친구는 내 하소연을 세 번쯤 들으면 피곤해했다. 점집은 시간적 제한이 있고, 무료 상담을 허락하는 곳은 세상에 없다.”라는 이유를 들어 챗GPT와의 연애 상담기를 들려줍니다. 사주를 바탕으로 인공 지능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앞으로도 이 도구는 내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가장 자주 찾는 상담 창구가 될 것 같다.”며 결론을 내리고요. 결국 중요한 건 수단도, 상대도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게 불확실한 시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풀지 못한 고민들이 불어만 갈 때 여러분은 누구를 찾아가시나요? 이와 더불어 무속 콘텐츠의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뉴니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