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 감성 폭발, '라떼 유행템' 젤리 슈즈 유행이 돌아온 진짜 이유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Y2K 감성 폭발, '라떼 유행템' 젤리 슈즈 유행이 돌아온 진짜 이유 🩴
올해 글로벌 패션 관련 뉴스 피드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는 아이템 중 하나가 ‘젤리 슈즈’입니다. 투명하고 물렁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단순하고 납작한 신발이죠. 일단 보면 이게 신발인가 싶지만 활용의 폭은 아주 넓어서 재래시장의 매대부터 럭셔리 매장, 패션쇼 등등 다양한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트렌드라는 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가 불현듯 사라져버리는 것 같지만 다들 나름대로의 과거와 이유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젤리 슈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Y2K 유행템’ 젤리 슈즈의 몰랐던 과거 🫧

2차 대전이 끝난 후 플라스틱 같은 인공 소재가 가죽이나 면 같은 전통적인 천연 소재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 PVC(폴리염화비닐)로 만든 신발은 1940년대 말 쯤 프랑스에서 처음 나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플라스틱 한 조각을 금형에 주입한 후 식혀서 만들어 낸 이 신발은 저렴하고 튼튼하고 방수도 잘되고 관리도 편했기 때문에 주로 어부들이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패션 측면으로는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진 못했습니다. 기존의 신발과 생긴 게 너무 달랐기 때문에, 당시의 일반적인 패션 미감과 일상적인 옷차림과 생각해 보면 혹시 신어보고 싶었던 사람이라도 아마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거겠죠. 대신 저렴하고 막 신어도 되는 신발이라 아이들 용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파리에 살던 20대 친구들인 브라질 사람 토니 알라모(Tony Alano)와 프랑스 사람 니콜라 기용(Nicolas Guillon)이 스페인에 휴가를 보내러 갔다가 싸고 못생기고 투명한 어부의 신발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이걸 좀 예쁘게 만들어서 팔아보자는 생각을 했고 200켤레를 구입해 다양한 색으로 염색을 해 판매를 합니다. 이게 인기를 얻었고 이들은 ‘젤리 슈즈’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됩니다. 지금도 사용되는 젤리 슈즈라는 이름은 이 회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죠.
1980년대 초중반을 지나며 젤리 슈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매출은 급증했고 패션 잡지에서도 젤리 슈즈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나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컬렉션에도 등장합니다. 젤리 슈즈는 패션 아이템이 되기 시작했고 파리 패션의 영향력 속에서 전 세계에서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시장이 세계적으로 넓어지면서 프랑스의 젤리 슈즈 브랜드는 이름을 지키고자 했지만, 여러 나라에서 법적 소송을 진행할 자원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젤리 슈즈 브랜드는 1986년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고 젤리 슈즈는 이 비슷한 신발을 통칭하는 보편적인 이름이 됩니다. 간혹 ‘플라스틱 피셔맨 샌들’ 등으로 부르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해변에서는 ‘메두사’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립니다. 프라다는 ‘피셔맨 샌들’, 보테가 베네타는 ‘레이스 업 젤리’ 같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저렴이 시장템부터 명품 브랜드까지, 젤리 슈즈의 화려한 변신 🛍️✨

젤리 슈즈는 1980년대 패션으로 자리를 잡은 후, 일상적인 아이템과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 사이를 계속 오고갑니다. 일상적 아이템일 때 젤리 슈즈는 해변가를 찾아온 관광객들이 물에 젖든 말든 아무런 상관 없이 편하게 신을 저렴한 신발로 소비됩니다. 관리가 쉽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아이들 용으로도 꾸준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재래시장에서 판매하는 중장년층의 신발로도 자리를 잡았죠.
패션 아이템일 경우는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힘이 크게 작용합니다. 1980년대에 뮈글러와 고티에 등과 파트너십을 가지고 젤리 슈즈를 만든 곳은 브라질의 그렌데네(Grendene)라는 제조업체였습니다. 이 브랜드도 창립자인 페드로가 1979년 프랑스에 갔다가 어부들이 신고 있는 PVC 스트랩 샌들을 보고 제품을 만들게 됩니다. 이후 디자이너와 파트너십 등으로 계속 성장을 하면서 멜리사(Melissa) 같은 젤리 슈즈 브랜드도 런칭하게 됩니다. 지금도 가장 유명한 젤리 슈즈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멜리사는 2008년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와의 협업 제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디젤(Diesel), 텔파(Telfar),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와 언더커버(Undercover) 등의 패션 디자이너를 비롯해 DDP 설계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 같은 건축가와도 협업하며 젤리 슈즈의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2010년대에 젤리 슈즈를 내놓은 샤넬도 있습니다. 스포츠용 옷감으로 사용되던 저지로 드레스를 만든다거나, 베이클라이트나 루사이트 같은 플라스틱으로 쥬얼리를 선보이는 등 샤넬은 저렴하고 대중적인 소재로 고급 제품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브랜드입니다. 마찬가지로 로고나 코사지, 리본, 트위드 등으로 장식한 다양한 젤리 슈즈를 선보였습니다. 이외에도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지방시(Givenchy), 씨 바이 클로에(See by Chloe), 토리 버치(Tory Burch) 등등 많은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젤리 슈즈를 선보였죠.
젤리 슈즈는 이런 고급 브랜드 바깥에서 대중적 패션 트렌드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현역이면서도 동시에 Y2K나 밀레니엄 등 레트로 패션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죠. 1995년 MTV 어워드 때 젤리 슈즈를 신고 등장한 당시 10대 초반의 커스틴 던스트처럼 젤리 슈즈가 트렌드의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회고되는 몇 번의 모멘텀도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기술의 발전도 있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 간의 유사 플라스틱의 발전 덕분에 젤리 슈즈는 예전에 비해 부드럽고 유연해졌습니다. 냄새 방지 기능을 넣기도 하고 심지어 향을 주입하기도 합니다. 재활용 폴리에스터 등을 사용해 친환경 측면도 개선해 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저렴한 젤리 슈즈를 신고 다니다가 발이 긁히거나 찢어지고, 물집이 잡혔던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겁니다.
젤리 슈즈 유행은 2025년에 왜 다시 돌아왔을까? ⏰

이렇게 대중성과 일상성, 그리고 패션 트렌드와 디자이너의 선택 사이를 오고가던 젤리 슈즈가 최근 들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유행일 뿐만 아니라 세계 패션 트렌드와 거의 실시간 동기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스를 보면 29CM에서는 지난 6월 한달간 젤리 슈즈 키워드가 포함된 상품의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66% 성장했고, 패션플랫폼 에이블리에서도 최근의 젤리슈즈의 거래액은 79%, 검색량은 69% 폭증했고, 무신사에서도 같은 기간 젤리슈즈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런 유행의 이유를 살펴보면, 일단 최근 몇 년 간의 패션 디자이너 쪽의 변화가 있습니다. 2024년 조용한 럭셔리로 인기를 끌던 더 로(The Row)가 젤리 슈즈를 선보였습니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세련된 테일러링, 절제된 미니멀리즘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더 로와 젤리 슈즈는 그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강렬한 컬러의 납작한 젤리 슈즈에 블랙 트렌치 코트나 맥시 드레스 같은 시크한 옷과의 매칭을 통해 더 로는 이 신발을 신는 방식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연예인들도 있습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몇 해째 여름만 되면 알라이아(alaia)의 젤리 슈즈(사실은 메쉬 플랫입니다만)를 꺼내 신는 모습의 사진이 찍히고 있습니다. 더 로에서 마라 젤리 슈즈를 내놓자 갈아탔죠. 2023년 테일러 스위프트는 앨범 ‘1989’의 재녹음판을 발매하면서 인스타그램에 워싱된 스키니 청바지와 화이트의 슬리브리스 톱에 핑크 젤리 슈즈를 매칭한 80년대 감성을 담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서서히 달궈지기 시작한 젤리 슈즈 유행은 틱톡과 릴스, 쇼츠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퍼져 나갑니다. SNS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킴 카다시안도 주로 바디 쉐이프 속옷 의류를 내놓던 자신의 브랜드 스킴스(Skims)를 신발로 확장해 가며 젤리 슈즈를 선보였습니다. 이외에도 2025년 컬렉션에 젤리 슈즈를 넣는 브랜드는 많이 늘어났습니다.
클로에와 지암바티스타 발리 같은 고급 브랜드와 제이크루와 리안나의 퓨마 펜티도 신제품을 내놨죠. 멜리사 같은 대표적인 브랜드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젤리 슈즈 브랜드인 헤븐리 젤리나 슈콤마보니 같은 브랜드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젤리 슈즈를 내놨습니다. 젤리 슈즈의 전체적인 디자인뿐 아니라 장식의 방식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죽 트림이나 코르크 인솔, PVC 대신 그물 직물을 사용하는 등의 고급화도 볼 수 있죠.
젤리 슈즈가 이렇게 유행하는 이유가 그저 SNS용 바이럴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의 패션에서는 재미와 장난기, 의외성이 중요하지만 편안함과 실용성, 다재다능함도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른 장마와 찜통 더위, 갑작스러운 폭우 등 변화무쌍한 여름 날씨 속에서 장마철 신발로 답답하고 무거운 레인 부츠 대신 젤리 슈즈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젖든 말든 상관없고 플라스틱 신발치고는 묘하게 고급 패션처럼 보이는 제품도 많아 과감한 매칭을 시도해 볼 수도 있고, 도시의 열기를 견딜 만큼 통기성도 있죠.
이렇게 해서 이 컬러풀하고 반짝거리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신발은 약간의 우아함을 더하거나 매칭 방식이 다채로워지거나, 혹은 흘러가고 있는 패션 트렌드에 약간의 파동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며 다시 패션 트렌드의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고 있으면 현대 패션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기억의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스쳐 지나간 유행 속 수많은 패션 아이템 속에서 패션의 흐름과 유행,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적절한 아이템을 찾아내고, 여기에 현대적 감성을 더해 수면 위로 꺼내 올리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잊혀졌던 기억을 자극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본 적이 없던 신선함을 제공하면서 패션의 층을 조금씩 더 두텁게 만들어 가는 거겠죠. 과연 앞으로는 또 누가 무엇을 기억 속에서 찾아내 우리 앞에 내놓게 될까요. 그런 기대가 패션의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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