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부터 ‘흑백요리사’까지, 우리는 왜 요리 예능에 푹 빠진 걸까? 🥘

‘냉장고를 부탁해’부터 ‘흑백요리사’까지, 우리는 왜 요리 예능에 푹 빠진 걸까?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냉장고를 부탁해’부터 ‘흑백요리사’까지, 우리는 왜 요리 예능에 푹 빠진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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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JTBC

JTBC 요리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가 5년 만에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게스트의 냉장고에 든 재료들로 두 셰프가 제한시간 15분 내에 먹을 만한 음식을 내어놓는 프로그램인데요. 기존에 냉부해에 출연했던 셰프들과 올해 가을 모든 화제성을 휩쓸었던 넷플릭스 요리 예능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상위 순위권에 올랐던 셰프들이 참여했죠. 시즌2는 첫 화부터 시청률 5.2%를 기록하며 익숙한 웃음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요리 예능을 즐겨보는 걸까요? 오늘은 요리 예능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펴봅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심사하다

2012년 올리브TV에서 방영된 ‘마스터 셰프 코리아’는 BBC ‘마스터 셰프(MasterChef)’의 판권을 수입해 제작한 프로그램입니다. 2012년은 Mnet ‘슈퍼스타K’가 시즌 4를, MBC ‘나는 가수다’ 시즌 2가 방영되며 대중들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법을 온전히 받아들인 시기였어요. ‘마스터 셰프 코리아’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초가 되었고 첫 시즌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듬해인 2013년, 올리브TV는 이 기세를 이어 또 다른 음식 경연 프로그램인 ‘한식대첩’을 방영합니다. 마셰코에 국경을 넘나드는 음식들이 등장한 것과 달리, ‘한식대첩’에는 대한민국의 팔도를 대표하는 팀들이 출연해 오직 한식만을 다루며 차별점을 더했죠. 총 네 개의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전라남도 팀이 3시즌 연속 결승에 진출하며 저력을 보여주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전라남도만의 고유한 지역 특산물과 그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명인들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또한, 두 번째 시즌부터는 북한팀도 참여하면서 북한에는 평양냉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톡톡히 알려주었고요. 

경연 프로그램 제1의 원칙은 언제나 공정성입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참가자만큼이나 심사위원이 중요한 이유인데요.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김소희, 강레오, 노희영, ‘한식대첩’의 심영순, 백종원, 최현석 등은 모두 심사하는 역할로서 이름을 알린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요리를 익힌 배경과 맥락은 모두 다를지 몰라도 경연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은 전문성과 예능감을 동시에 갖추어야 합니다. 

경연 프로그램의 역사가 쌓여갈수록 시청자는 심사위원을 심사하게 됩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레전드 시즌으로 회자되는 시즌 2에서는 심사위원들이 전 시즌 대비 더욱 냉철한 심사를 하면서 참가자들을 향해 독설을 건네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었는데요. 프로그램의 긴장감이 더해졌지만 심사위원들이 가지고 있는 예능감이 그것을 상쇄시켜 준 덕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는 감상이 다수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2024년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두 심사위원 안성재와 백종원은 전문성과 예능감을 두루 갖춘 캐릭터이기에 큰 주목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반부터 같은 음식을 두고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두 사람의 차이가 부각되었는데요. 2라운드에서는 여기에 기상천외한 심사 방식이 더해졌습니다. 조리 과정과 완성된 요리의 플레이팅을 보지 않은 채 오직 맛에만 집중해서 평가하기 위해 두 사람이 안대를 두른 것이죠. 안대 심사는 색상과 모양이 똑같은 음식들을 일렬로 늘어놓고 순위를 매기던 기존 블라인드 테스트 포맷의 새로운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한계와 가능성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은 언제나 ‘블록버스터물’을 지향했습니다. 2024년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지옥’에 참여한 촬영, 오디오, 편집, 보조 등의 스태프는 300명 내외로 추정됩니다. 특히 촬영 인원만 100명 이상에 달하고요. 또한 1000평 규모의 세트를 갖춘 경기도 파주의 모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2012년 마셰코가 총제작비 40억 원, 300평 규모의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것과 견주어보자면 몸집이 엄청나게 커졌죠.

그러나 스케일을 키우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세트를 철거하는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물 쓰레기가 대거 발생하기 때문이죠.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제작진은 “쓰이지 않은 식재료는 버리지 않도록 노력했다”며 논란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히기도 했습니다.

요리 예능이 육식 위주라는 점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수는 2019년 150만 명에서 2024년 25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채식을 선택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대다수의 요리 예능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육식중심적으로 미션을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연출합니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의 저자 보선이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불완전한 100명의 비건 지향인이 더 가치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설령 100% 비건은 아니더라도 비건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미디어가 더 많이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채소를 창의적으로 쓰는 메뉴나 현재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식품들을 활용한 신규 미션을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을 테고요. 

선례가 없지는 않습니다.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셸럽의 셰프’ 임희원 셰프는 자신의 시그니쳐 메뉴인 베지테리언 사시미와 후토마키를 선보이며 첫 번째 라운드를 통과했습니다. 당시 안성재 셰프의 심사평은 “땅에서 자라는 채소들을 예의를 갖춰 다룬 게 느껴진다”였는데, 채식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죠. 유튜브 ‘요정재형’의 정재형 또한 게스트를 초대해 요리를 내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요정식탁’ 시리즈에서 배우 임수정, 뮤지션 이효리를 초대했을 때 게스트 맞춤형으로 비건 메뉴를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정재형은 2021년, EBS의 요리 경연 파일럿 프로그램 ‘채소가지구’에도 진행자로 함께하며 ‘채식 = 샐러드’라는 편견을 깨고 채소 요리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 적이 있고요.


셀럽의 유튜브, 그런데 이제 음식을 곁들인

이미지 출처: ‘걍밍경’ 유튜브‘나래식’ 유튜브

유튜브에서는 ‘먹방’을 넘어 요리라는 소재에서 예능적 요소를 이끌어내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리 예능은 더 다채로워지고 있어요. 지난 6월, 방송인 최화정은 27년간 자리를 지킨 SBS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 하차한 후 유튜브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를 개설했습니다. 첫 에피소드부터 자신의 주방을 공개했고, 거기에서 순식간에 오이 김밥을 말고, 여름 국수를 해 먹었죠. 모두 쉽고 간단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음식들이었고 SNS에서는 최화정표 레시피로 완성된 요리 인증이 이어졌어요. 그동안 최화정의 연관 검색어에는 ‘동안’, ‘관리’ 같은 키워드가 올라 있었지만, 유튜브를 통해 드러난 그는 자기가 만든 음식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보고 건강한 삶을 꾸리는 60대 여성 최화정의 모습을 보여준 이 채널은 유튜브가 발표한 2024 올해의 최고 인기 크리에이터 리스트에서도 7위에 올랐죠.

요리가 주를 이루는 채널은 아니지만, 가수 다비치 멤버 강민경이 운영하는 유튜브 ‘걍밍경’의 차밥 열끼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강민경은 대학 축제 등 지역 공연이 많은 시즌에 다비치가 카니발을 타고 전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멀미 없이 가뿐하게, 마치 식당에 앉아 있는 것처럼 전국 각지의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봅니다. 특히 먹는 취향이 겹치지 않는 다비치 두 멤버의 서로 다른 리액션을 교차해서 보여준다는 것도 이 콘텐츠의 차별점이고요. 2022년 가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꾸준히 조회수 150만 회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것처럼 수년간 이사를 거듭했던 코미디언 박나래는 지인을 집에 초대해 음식을 내어주는 공간인 ‘나래바’가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박나래는 음식을 만들어 지인들과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는 인물인데요. 이제 그는 자신의 강점인 ‘큰 손’을 십분 살리는 방식으로 유튜브 ‘나래식’을 통해 게스트를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고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박나래는 첫 에피소드부터 목포에서 7kg짜리 민어를 공수해 직접 회를 뜨는 묘기부터 보여주는 정공법을 택합니다. 이처럼 박나래의 음식 토크쇼는 호스트가 그동안 음식과 어떤 관계를 맺어온 사람인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음식과 술을 곁들인 토크쇼 포맷의 유튜브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가 유행에 편승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죠.

여러분은 왜 요리 예능을 즐겨보시나요? 그건 단지 군침이 돌고 도파민이 폭발하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요리 예능을 통해 다양한 음식 문화를 배우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즐거움을 깨닫고, 나와 음식이 맺는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경연이든, 토크쇼든, 브이로그든, 음식을 소재로 하는 예능은 결국 ‘더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고요. 여러분은 어떤 요리 예능을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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