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는 결정론, 운명론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본다. 인간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의 영역과 새로운 가능성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운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강한 애착을 통해 이 관계를,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비극적 상황 자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상한선을 긋는 꼴이라면,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운명으로 여기는 건 하한선을 긋고 함께 위로 도약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