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엘입니다. 이번에는 합리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봤죠.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여우와 신포도"의 일화처럼 "자기합리화"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죠. 자기 자신을 위로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고요.🤔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이라는 건 언어를 새롭게 정의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재미있는 철학적 주제'에 대해서 올릴 때 "~란 무엇인가?"처럼 언어의 정의를 묻는 질문을 많이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일단 우리가 "자기합리화"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을 모두 걷어내고 "합리화"라는 단어를 한 번 봐봅시다.🫡 합리가 뭘까요? 리(이치)에 합(부합)하는 걸 말하죠. 합리화는 그럼 뭘까요? 이치에 부합하게 만드는 거겠죠. 그러면 무엇을 이치에 부합하게 만드는 걸까요? 이치에 포섭되지 않는 것들을 이치에 부합하게 만드는 거겠죠.😒 조금 더 쉽게 접근해보죠. 외부로부터 온 낯선 감각 자료들을 내가 갖고 있는 익숙한 이치에 부합하게 만들어 가는 것을 "합리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어떠한 정보들을 받아들여 나의 기존의 정보들과 연결시키는 것도 "합리화"라는 거죠. 다만 이는 분명 주관적인 활동일지도 몰라요. 나의 '관점'에서 정보들을 쌓아가는 거니까요. 그렇기에 나의 관점이 견고하다면 합리화는 나의 기존의 관점들을 더욱 강화시키겠죠. 이러한 부분에 조금 더 주목한다면 여러분들이 우려하시는 것처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현저히 낮을 것으로도 보이죠.🤨 다만 "합리화"라는 개념만을 놓고 봤을 때, 아직은 윤리적으로 그르다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할 것 같아요. 우리는 늘 합리화를 하니까요.🤔 이제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죠. 일상언어(정신분석학 등)에서 자기합리화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기제로도 쓰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뼈저리게 반성을 한다면 자기합리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요? 아주 섬세하게 접근한다면 내가 반성을 하는 상황에도 내가 충분히 반성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합리화가 이루어지진 않나요? 누군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충분히 애도를 했다는 것이 자기합리화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자기합리화는 매순간 일어난다는 거예요.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합리화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내가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서겠죠. 그리고 합리화는 일종의 "의미 부여"라고 말할 수 있겠죠. 내가 받아들이는 정보들 중에서 나한테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의미 부여"를 하는 거죠. 그게 합리화의 작업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의미 부여를 하며 살잖아요 ㅎㅎ😚 그러면 이제 우리가 정말로 우려하는 것에 대해서 논해볼게요.😊 인간은 분명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에요. 의미를 부여하면서 인간은 생기를 얻고 살아갈 이유를 얻게 되고요. 다만 그 의미 부여가 자꾸 지금의 나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겠죠. 아까 이야기했듯이 여기선 변화와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의미 부여 역시 계속 자기 반성을 통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았나?',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나?' 등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의미 부여를 시도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조심스럽게 합리화를 해간다면 변화와 개선의 가능성이 생기겠죠.🫢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면서 의미 부여를 하며 살겠죠. 자기 반성이 없는 의미 부여는 그저 방어기제에 불과한 이기적인 자기정당화에 국한될 것이고, 자기 반성을 계속 하면서 내가 능동적으로 부여하는 의미 부여는 더 나아가 삶에서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 두 가지가 저는 "합리화"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고요. 우리가 후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ㅎㅎ 다음 주제에서 만나요. ㅎㅎ😋 +) 우리가 주장을 하고 이에 대해서 근거를 대는 것도 일종의 합리화일 겁니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내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생각에 대한 이유를 머리로 생각해낼 테니까요. 이것도 일종의 내 생각을 합리화하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겠죠 ㅎㅎ